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시험지고 스스로 선택한 것들이 답안지라면 내 점수는 과연 몇 점일까. 시험문제를 풀다 보면 답을 맞혀 보기 전에 내 점수가 감이 올 때가 있다. 보통 그 과목을 수도 없이 반복해 외울 정도가 되었거나, 운 좋게 공부한 범위 내에서 시험문제가 나왔을 때가 그렇다.
내 나이 열일곱, 윤리 시험 마지막 문제를 풀기 전까지 스스로 만점을 예상했다. OMR카드에 마킹하기도 전에 문제가 술술 풀려 한창 들떠 있을 때, 마지막 문제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Q. 우리 고등학교 화단에 피어있는 꽃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이 문제가 윤리 과목과 대체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그 고민의 답을 찾기 이전에 이 문제는 꼭 맞혀야만 하는 문제였다. 고작 이런 문제로 '만점의 기운'을 망칠 수는 없었다. 그때부터 머릿속이 바빠졌다. 배점 2.5점의 문제였는데, 교실 내 분위기를 보아하니 이 문제는 다른 아이들에게도 난관인 듯했다. 그렇다면 이 문제의 정답 여부에 따라 점수 변별력이 생긴다는 말인데….
1. 개나리
2. 진달래
3. 왕벚꽃
4. 무궁화
5. 나팔꽃
'아, 이런 개나리….'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우리 학교 교목은 왕벚꽃나무였다. 그러니 교문 앞에도 그 꽃을 심어놓지 않았을까. 게다가 객관식의 정답은 대부분 3번일 확률이 높으니까 가장 유력한 답이 아닐까. 일단 개나리는 확실히 아니다. 교문에 꽃이 있는지도 모르기는 했지만, 보통 개나리는 무리 지어 피어있는 경우가 많으니 왔다 갔다 하며 분명 눈에 띄었을 거다. 내 나름의 검증을 거쳐 최종 답을 3번으로 찍었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다.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윤리 마지막 문제는 아이들 사이에서 단연 '뜨거운 감자'였다. 문제의 답도 답이지만, 이 문제가 윤리 시험 범위 단원과 대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에 대한 이의제기가 있었다. 거의 모든 아이들이 이 문제가 무효화되기를 바랐고 마지막 문제를 제외한 점수를 점치며 희로애락이 갈렸다.
그러나 이 문제는 이의제기에도 무효화되지 않았다. 선생님은 마지막 문제는 엄연한 시험 범위 연관문제라며 이의신청을 거절했다. '인간의 삶과 윤리의 필요성'. 그 단원의 핵심이 담긴 문제라며 복수정답 인정이나 정정 없이 시험을 마무리 지었다. 개중에는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울거나, 고작 2.5점짜리 없는 셈 치면 된다며 시험지를 구겨버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정답은 진달래였다.
오답으로 나의 만점도 물거품이 되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인간의 삶과 윤리의 필요성'이라는 단원에 들어가며 선생님이 교정에 핀 꽃 이름을 아는지 물은 기억이 있었다. 물론 그때 당시 대부분의 아이들은 국어, 수학, 영어 같은 주요 과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귓등으로 흘렸다. 그게 뭐가 중요하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윤리는 국어, 영어, 수학에 비해 눈에 띄지 않는 학문이다. 그러나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과목은 아니다. 윤리는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질서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약속 같은 것이다. 우리 삶과 가까이 있으나, 매 순간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대충 찍어버린 마지막 문제와 닮았다.
옛말에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다. 다른 곳을 보느라 정작 가까운 곳은 살피지 못한다는 뜻인데, 장소를 뜻하는 '곳'을 '-것'으로 바꿔 다시 읽어 보면 사람이 보는 시선이나 행동반경이 얼마나 좁은지 쉽게 알 수 있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된 지금은 시험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나, 어른이 되고 나서 학창 시절의 기억을 가만히 더듬어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늘 제대로 보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시절과 다를 바 없이 눈앞의 일들이 술술 풀리면 여전히 방심하고 쉽게 완벽한 하루가 될 거라고 단정한다. 모든 일은 뒤통수치듯 예기치 않게 오며 대부분 지척에서 벌어진다. 주의 깊게 살피지 못하고 무심히 던진 말들이나, 대충 넘겨버린 것들이 '대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돌아온다는 것을 모를 나이도 아닌데 여전히, 내게는 그 모든 일들이 늘 별스럽다.
왜 항상 곁에 두고 발견하지 못해 놓치고 나서 후회하는 것인지. 스스로의 아둔함을 반성하며 ‘아차!’하는 탄식을 내뱉는 일이 적지 않다. 종종 별것 아니라 생각해 지나친 것들이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때가 있다. 너무 사소하고 별것 아니라서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에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경우가 있다. 시력이 좋다고 해서 더 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시선을 둔 것에 대한 관심'에서 오는 차이일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다 문득 떠오른 학창 시절의 기억이 이제와 커다란 의미로 닿는 것을 보면 나 역시도 이제야 어른이 되어가는 미숙의 과정을 지나고 있나 보다.
진달래 꽃말은 '사랑의 희열'이란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가 얽힌 삶 속에서 행복을 논할 수 있는 감정의 시발점이 사랑인데, 진달래 꽃말이 '사랑의 희열'이라니.
교정에 자리하고 있던 하고 많은 꽃 중에 굳이 진달래 꽃이 답인 문제를 낸 이유를 뒤늦게 헤아려 보았다. 어쩌면 각각 문제의 합으로 점수를 채점하는 오지선다형 시험지의 답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일상 속에서 수없이 지나치는 사랑의 대상이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혹은 ‘그런 일’을 뜻하는 명사다. 또 희열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감정’이다. ‘사랑의 희열’이라는 말이 가진 의미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이 드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말이 된다. 한 번이라도 사랑에 빠져 본 사람이라면 안다.
사랑은 그 대상이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마음만으로도 마음을 풍족하게 하는 힘이 있다.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 속 수많은 '진달래'를 발견하고, 사랑하는 대상에게 '시선'을 주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삶을 대하는 자세 하나, 또 배워간다.
내 삶의 영역 안에 어떤 꽃이 심겨 있는지 혹은 씨앗이 심겨 흙 아래에서부터 싹이 움트는 중인 줄도 모르고 눈길 줄 새도 없이 바쁘게만 살아가는 삶일지 모른다. 시험지를 받고 나서 깨닫고 후회해도 때는 늦는다.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을 때 실컷 봐 두어야 한다. 그래야 시한부 인생을 사는 누구든지 마음으로나 인생으로나 그 대상을 놓치지 않고 쟁취할 수 있다.
삶은 시험과 달라서 찍지 말고 풀어야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들이 있다. 대충 찍은 문제들은 그 순간을 잠시 넘길 순 있어도, 제대로 풀어 해결할 때까지 언제고 되풀이된다. 답을 알아도 답안을 쓰지 않으면 맞출 수 없듯이 빈칸을 채우지 않으면 결국 마지막 문제는 또다시 틀릴 수밖에 없는 것이 숙명이다.
대개 시험은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어떤 문제가 출제됐는지 알 수 없고 내 처지가 괜찮든지 나쁘든지 상관하지 않고 불시에 온다. 이때 스스로 찾은 문제의 답을 바로 쓰도록 돕는 것이 바로 마음이다. 익히 알고 있는 문제라도 시험 때만 되면 답이 헷갈리거나 생각나지 않아 망칠 것 같을 때. 그 순간 상황에 흔들려 틀린 답을 적거나 대충 찍지 않을 수 있도록 중심 잡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마음이다. 아무리 킬러 문항이라도 마음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여 대처하느냐에 따라 문제풀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러니 삶의 시험을 다 치르기도 전에 섣불리 망친 것 같다는 불행으로 기우는 생각일랑 접고 지킬만 한 것 중에 마음을 지켜, 앞으로 마주하게 될 수많은 삶의 문제 앞에서는 당황해서 대충 찍어버리는 일 없이 스스로 찾은 나만의 답을 적어낼 수 있기를 부디, 기도한다.
나빌레라
/ 담쟁이캘리
간밤 반쯤 열어둔 창
그 너머로 들어온 바람이
겨우 넘긴 책장을 되돌려놓고
소리 없이 집을 빠져나갔다
담 넘는 것쯤이야
바람에게는 일도 아니라
겨우 닫은 빗장을 헤집어놓고
말도 없이 방을 빠져나갔다
흔들린다는 것은
저 불어오는 바람처럼
고요한 중에도 흔적을 남기고
당연하게 나부끼는 일이다
크든지 작든지
이는 바람에 모두가
흔들리며 움직이나니
무엇이든 나풀거린다고
너무 낙담하지 말고
이는 바람에 몸을 맡겨
적당히 나빌대다
제자리로 오너라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