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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Aug 21. 2020

인생도 안전운전이 되나요?

유사고 '초보어른'입니다만….



학교를 졸업하고 오지선다형에서 겨우 벗어났다는 쾌감을 만끽하기도 전에, 인생은 눈 뜬 순간부터 선택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깨쳤다. 정해진 시간표에서 벗어나 수강신청을 하는 일부터 공강 시간에 점심을 먹을 건지 말 건지, 어느 회사에 지원할 건지, 퇴사를 할 건지 말 건지, 심지어 밥은 무얼 먹을지까지 수없는 선택지 앞에 놓여야 했다.



선택하는 일은 때마다 울리는 배꼽시계와도 같아서 그냥 거르거나 대충 때우고 나면, 감당할 수 없는 허기로 돌아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거나 다 늦은 밤에 무엇으로든 꼭 채워야만 잠잠해졌다.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라고 고르는 선택지마다 무게 추가 아래로 가라앉는 것처럼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내가 고른 선택지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랐다. 학생 신분을 벗어나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제 앞가림을 한다는 것 이상으로 자기 인생의 운전대를 잡는 일이었다. 조수석에 다른 누군가를 앉힐 수는 있어도 그들이 대신 브레이크를 잡아주거나 운전해 줄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 어른이 된다는 의미였다.









뒷좌석과 조수석을 전전하던 시간을 뒤로하고 운전석에 앉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인지 깨닫기도 전에,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호기롭게 운전대를 잡았다. 도로에 들어서는 순간 뒤로 물러설 수도 멈출 수도 없었다. 좌로든 우로든 무조건 앞을 향해 나아가야만 했다. 물론 신호에 따라 달리던 이들이 일제히 멈춰 설 때도 있었으나, 초록불이 켜지기 전까지 목적지를 정하고 그곳을 향해 속도를 높여야 했다.



혹여 늦으면 주위에서 경적을 울리기 바빴고, 길 몰라 허덕이는 나를 기다려 줄 리 만무했다. 곧 멈춰야 한다는 경고처럼 주황 불이 켜졌을 때도 그대로 직진을 할지, 그 자리에서 멈출지 결정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아래를 보지 말고 앞을 봐야죠.
그 좁은 데로 뭘 보려고 그래요.
바로 옆 창문으로 보면
애쓰지 않아도 잘 보이는데.
차가 아니라 '내'가 가는 거예요.
어디로 갈지 목적지를 정하고
그 끝을 봐요, 멀리.



브레이크를 너무 꽉 잡아도 액셀을 마냥 밟고 있어도 안 될 일이었다. 가고 멈추는 일에도 적당한 힘이 필요했고, 그 힘이 넘치거나 부족해도 사고 나기가 쉬워 뭐든 적당해야 했다. 우습게도 큰 고민 없이 시작한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더는 미성년자가 아닌 어른'임을 깨쳤다.



운전 강습을 받으며 들은 말을 곱씹으며 인생의 의미를 곱씩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운전이 미숙한 내게 운전대가 무섭듯 삶도 마찬가지였다.









"바퀴벌레가 뭐가 무서워. 사람이 무섭지."



내게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귀신이고 바퀴벌레였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 대신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를 맨 손으로 때려잡아 주시던 재능교육 선생님의 혼잣말을 기억한다. 그 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혼잣말이 귀에 잘 들릴 만큼 컸거나, 저 말 뒤에 덧붙이던 '너도 어른이 돼 보면 알 거야.'라는 그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컸다는 뜻일 테지.



유치원과 학교에서 낯설거나 이상한 사람이 말을 걸거나 쫓아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는 배웠어도, 낯익고 믿었던 사람이 말로 상처를 주거나 뒤통수를 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미리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교과서 속 철수와 영희는 늘 서로의 안부를 묻기 바빴고 다툰 적 없으니 간접 경험이 부족한 것은 어쩌면 아주 당연한 일이었다. 열감기처럼 호되게 겪고 난 뒤에 절로 나오는 탄식으로 하나씩 익혀갈 뿐.



이번 생이 처음인 건 모두가 마찬가지라 누가 누구를 위해 미리 훈수를 두거나 점치는 일은 신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했다. 삶은 '그럴 줄 알았다'라는 예상이 아닌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라고 놀라고 마는 이상의 영역이었으므로 '알 수 없음'을 낙법처럼 수도 없이 넘어져가며 배웠다.




아무리 내가 조심한다고 해도
사고는 막을 수가 없어요.
좌우, 후방주시를 잘해야 하는 이유예요.
특히 사각지대는 운전자한테도
잘 안 보여서 사고 나기 쉬워요.
방심하는 순간 사고 나는 거예요.



하마터면 엉겁결에 어른이 될 뻔했다. 내 시선은 어디 있는지, 가려는 목적지는 어디인지 제대로 살피지도 못한 채로 덜컥 운전대부터 잡은 탓이었다. 그렇게 아찔했던 운전 연수를 끝으로 면허를 땄으나 현실은 여전히 '장롱면허'에 뚜벅이다. 어른이 되는 일에도 '초보운전' 딱지를 붙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 일순간 그러면 오히려 얕보일지 모른다는 생각부터 드는 것을 보니 나도 이제 '사람이 무섭다'는 그 말을 이해할 나이가 되었나 보다.



아직까지 제대로 운전대를 잡지 못하는 내게 시작이 무섭지, 몸에 익고 나면 다 하는 게 운전이라고들 말한다. 시간이 들뿐 못 할 것은 없다고. 한데, 운전과 달리 삶은 평생토록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 삶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숙명을 지녔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이미 사고니까. '무사고 운전'은 있을 수 있어도, '무사고 인생'은 있을 리 만무하니 말이다.







네모의 꿈

/ 담쟁이캘리




우리네 인생이
사각 링 위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승부 보는 거라면 좋을 뻔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을 부적처럼 외면서
스파링 상대와 샌드백에 수없는
펀치 날려가며 실전을 연습할 수 있다면



다 잘 될 거라 의기양양했던 마음도
철없던 객기였음을 깨닫고
종일 눈물 가득한 잔 꺾어 마시느라
고전을 면치 못할 때,

수건 던질 수 있었다면 좋으련만



왜 하필 지구는 둥글어서
코너에 몰린 줄도 모르고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하는 건지



왜 하필 세상은 요지경이어서
적을 알고 나를 알았다 싶을 때에도
가차 없이 뒤통수를 때리는 건지



숨 가쁘게도 생(生)은 매일이 실전이라
오늘을 무사히 넘겨도, 예측조차 불가한
내일과 미리 싸울 수조차 없건만



내몰린 자리가 코너인지 아닌지
짐작할 수 있었다면, 조금은 쉬울 뻔했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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