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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Sep 19. 2020

퇴근길, 반려견이 나를 마중 나왔다

나의 무사 귀가를 기다리는 존재가 있다는 것



퇴근길 저녁, 로또가 마중을 나왔다. 로또는 우리 집에서 동고동락한 지 4년 된 반려견의 이름이다. 편도로만 2시간이 걸리는 먼 통근 시간 때문에 가끔 퇴근길 아빠가 차를 끌고 마중 나올 때가 있는데, 언젠가부터 로또도 당연하게 조수석에 앉아 나를 마중하러 온다.




누나 데리러 갈까?



눈치가 백 단이라 말을 알아듣는 건지, 귀신같이 알아듣고 따라 나와 차에 올라타면서 녀석의 마중이 시작됐다. 아빠의 말에 의하면 나와는 다른 언어를  쓰는 저 조그만 녀석은 아빠의 물음에 우렁차게 짖더니 당장 나가자며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더라고 했다. 그렇게 아빠와 함께 나를 마중 나와 조수석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던 녀석은 '아는 얼굴'의 내가 보이기 시작하자,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짖어댔다. 매일 집에서 보는 얼굴인데 그렇게 반가울까. 녀석은 참 한결같이 나를 반긴다.  




이제는 너한테 전화만 해도 아는지  
빨리 나가자고 짖어.



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로또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모습을 직접 볼 수 없어 참 안타깝다. 한데, 요즘은 아빠가 퇴근길에 내게 전화만 해도 수화기 너머까지 우렁차게 짖는 소리가 들려 직접 보지 않아도 어떤 모습일지 눈에 선하다. 말귀를 알아듣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나를 마중하러 나온 녀석은 만났다 하면 좋아서 꼬리를 흔들고 얼른 와서 타라고 짖고 난리다.



아침, 저녁으로 매일 보고 같은 공간에서 살 부대끼며 사는데 내가 뭐라고 이리도 반길까. 녀석이 꼬리를 흔들며 왜 이제야 왔느냐며 짖어대는 목소리를 들을 때면 하루의 피로가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녀석은 내가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바로 거실 소파로 달려가 자기를 안아줄 때까지 기다린다. 혹여 자기를 발견하지 못하고 내 방 문을 먼저 열면, 쏜살같이 달려와 불 꺼진 내 방 침대 위로 올라가 겅중겅중 뛰며 안아줄 때까지 성화다.



'안아줄까'라는 말 한마디에 이렇게 신나 하는 존재가 또 있을까. 덜하거나 모자람도 없이 늘 한결같이 반겨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거짓말 조금 보태 말하자면, 방전된 하루가 단숨에 충전되는 기분이다. 저 녀석의 행동을 보고 있자면 '내가 뭐라도 되는 느낌'이랄까. 으스대고 싶은 감정이 아니라, 꾸준하게 나를 바라봐 주는 진득한 시선과 행동이 주는 벅찬 감정이 든다. 오늘 하루 내게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사람을 만나고 돌아왔건 간에, 그 무엇도 상관하지 않고 그저 나라는 존재 자체를 좋아해 준다는 것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야속하게도 삶에서 내 뒤통수를 치거나 상처를 줄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은 생판 남이 아닌, 아는 사람이고 나와 가까운 존재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웃는 낯을 하고 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다른 낯을 하고서 내 등에 칼을 꽂기도 한다. 꿈만 같은 하루가 있으면 그 하루를 단번에 망쳐버릴 어떤 순간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 인생이다. 때문에 삶 속에 문제는 늘 있고 산 하나 넘었다고 마냥 좋아할 수도 없다. 굴곡은 어디에나 있고 곳곳에 골짜기가 패인 것이 이다.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어.
그러니 일희일비하지 말고,
아무리 네 인생이라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봐.



대학생 때, 멘토처럼 따르던 선생님에게 처음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있다. 기분 좋아도 좋은 척 말고 슬퍼도 슬픈 척하지 말라는 건가. 그때는 이 말이 참 어려웠다. 감정에 솔직하지 않은 것이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인 건가 싶어서 어른이 되어간다는 사실이 마냥 싫을 때도 있었는데, 시간이 흐르니 그게 무슨 말인지 절로 이해되는 날도 온다. 너무 기뻐할 것도 또 너무 슬퍼할 것도 없다. 정말 선생님 말대로 살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다. 그 별일들이 내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위로가 될 때도 있다.







매일매일 그 하루 동안 주어진 에너지를 몽땅 소진해 버린 것 같을 때. 여전히 나는 어리숙한 어른임을 깨닫고 너덜해진 마음으로 불 꺼진 집에 들어설 때. 정신없이 흘러간 하루 속에서 까맣게 잊고 있던 어떤 존재가 나타나 '나의 등장만으로도 즐거워해 준다는 것'이 새삼스레 벅찬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말도 안 통하는 저 조그만 것이 영특하게도 내 말의 의미를 깨치고, 심지어 그 날의 기분이나 태도에 따라 내 감정을 살펴가며 '손' 달라고 하지 않아도 선뜻 자기 손을 내밀며 응석을 부리는 모습을 볼 때면 언어가 달라도 말이 통할 수 있다고 절로 믿게 된다.



처음 로또를 만나 인연을 맺은 건 강아지 분양 샵에서였다. SBS <동물농장>을 통해 강아지 공장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우연히 들른 그곳에서 만난 녀석은 다른 아이들에 비해 활달하지도 씩씩하지도 않았다. 생후 3개월이 지나도록 팔리지 않아 곧 강아지 공장으로 가게 될 거라는 주인의 무미건조한 말에, 녀석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생후 2개월 된 또래 푸들에 비해 몸집이 크지도 않았다. 너무 크면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사료를 자주 거르기 때문이란다. 안타깝기는 해도 어쩔 수 없다는 말에 자꾸만 녀석에게로 시선이 갔다. 그 날 저녁 결국 집으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계획에 없던 분양을 해왔다. 그리고는 앞으로 좋은 일만 있으라는 뜻으로 '로또'라고 이름을 지어주었다.







강아지는 본래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동물이라 사람이 굳이 용변 훈련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가린다는데, 로또는 너무 오래 강아지 분양 샵의 좁디좁은 유리관에 갇혀 위생관념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생전 처음 애견 훈련사를 부르고 한 달간 교육시켜 가며 시간을 들였다. 그 후 지금은 용변은 물론 시키지 않은 애교까지 알아서 부려가며 집안 분위기를 띄우는 분위기 메이커가 되었다.



고단한 하루 끝에 나를 마중 나오는 존재가 있다는 것. 돌아가 두 발 뻗고 쉴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 나의 귀가를 목 빠지게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은 언제 생각해도 참 뭉클한 일이다. 그 존재가 꼭 반려견이 아니더라도 한결같은 온기로 마음의 온도를 같이 해 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다.



식구가 되고 가족이 된다는 것은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 이상으로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는 '고속 충전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제 나는 언제고 또 이어질지 모르는 이 녀석의 별난 퇴근길 마중이 기다려진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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