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쟁이캘리 Aug 23. 2020

코로나 때문에, 완벽한 길치가 되었다

코로나가 바꿔버린 일상 속 풍경



나는 길치다. 방향감각이 없어 초행길에는 진로방향이 우측인지 좌측인지 헷갈려 무수히 헤매기를 반복한다. 길을 잃었다가 되돌아가기를 몇 번 반복하면서 몸으로 터득한다. 한 번도 아파트에 살아본 적 없어, 어릴 때 친구네 아파트에 놀러 갈 때도 동이나 호 수가 아닌, 기억으로 길을 찾았다. 때문에 출발점이 다르면 늘 헤매기를 반복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뒤늦게 아파트 동마다 적힌 라인의 의미를 깨쳤다. 태생이 길치라 초행길을 익히기까지 시간이 드는 나에게, 코로나는 '낯익은 길마저 순식간에 낯설게' 만들었다.    



익숙한 것들이 건재한 상태에서 경험하는 낯섦은 '환기'이지만, 익숙한 그 무엇에 균열이 생겼을 때 접하는 낯섦은 '위기'로 읽힌다. 더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익숙한 풍경을 하나둘씩 바꿔 놓기 시작할 때 삶은 경보를 울리기 시작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리는 재난 알림 문자를 시작으로 당연했던 것들을 삼키기 시작하면서 코로나가 '팩맨'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코로나가 쫓아와요,
얼른 퇴근하세요.



지난 금요일, 근무지 근처에서 확진자가 나왔으니 방역을 위해 즉시 조기 퇴근하라는 문자가 다. 함께 일하는 직원에게 이 말을 들었을 당시에는 코웃음 쳤으나 다들 다급하게 짐 챙겨 퇴근하는 모습을 보며, 순간 출구 없는 영화 '부산행' 기차를 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코로나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만일 코로나가 눈에 보였다면 '부산행'보다 더 무섭고 혼비백산했을 것이 분명했다. 본래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허구 같은 것이 우리 삶이므로. 혼란한 풍경 속에서 무사히 살아남을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보이지 않으니 도망치거나, 허둥대는 걸음을 걸을 일이 없어 다행이라며 불행 중에도 안도하고 있었다.









근처에서 발생한 코로나 확진자로 인한 세 번째 방역이자, 두 번째 조기퇴근이었다. 전사 알림 문자가 도착하고 황급히 퇴근하는 사람들 위로 보이는 하늘은 말도 안 되게 맑았다.



점심때까지만 해도 하늘에 구멍 난 것처럼 폭우를 내리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낯을 바꿔 뙤약볕을 내리쬐고 있었다. 땅에서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꿈에도 모르고 너무 아름다워 뻔뻔하다 싶을 정도였다. 집 근처에 도착해 오랜만에 좀 걸을까 싶었지만 장마와 코로나 그리고 폭염까지.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고통에 정처 없이 걷다가 택시를 잡아 세웠다.  




손녀를 못 본 지도 몇 달째예요.
밥 먹으러 온다는 거 내가 못 오게 했어요.



택시기사님이 마스크를 쓴 채 백미러 속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집에서도 겸상을 한 지 오래라면서 코로나가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린다고 말했다. 무급휴직으로 무기한 쉬거나 일자리를 잃는 사람에 비하면 자기는 행복한 거라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을 쉴 수는 없고, 대중교통 특성상 사람을 가려 태울 수도 없으니. 하루에도 수십 명을 만나야 하는 자기를 스스로 가족들과 '거리 두는 것'으로 지켜주고 있다고 했다. 



도란도란 마주 앉아 밥 먹는 일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이었던가. 언젠가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은 한국인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구체적인 날짜를 잡지 않으면 그냥 흘려야 하는 인사말이라고. 언제, 어디서 먹을지 모르는 기약 없는 약속 앞에 코로나까지 가세하니 진짜 우리가 맘 편히 마주하고 밥 먹을 수 있는 게 대체 언제쯤 일지 까마득하기만 하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까지는 '무엇으로 먹고 사는지'가 고민이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가 고민이다. 먹고사는 일이 퍽퍽하기는 해도 갑자기 일터를 잃는 일은 없었건만 '사회적 거리두기'는 친구나 가족뿐만 아니라 일자리와도 멀어지게 만들었다. 밥 먹는 일이야 마주 보지 않고 일렬로 앉거나 가림막을 두고 먹으면 되지만, 먹고사는 일은 어떤 것으로도 대체가 안 된다. '밥 한 번 먹자'라는 말을 시작으로 진짜 생계를 고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사님은 일자리를 잃어 밥 먹을 고민하는 것보다, 손녀 얼굴을 못 보는 것이 낫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더 많이 보고 싶은 쪽은 자신이니 자기만 참으면 되는 일이고, 일을 해야 장난감이나 옷도 맘껏 사 줄 수 있지 않겠느냐며 생계를 이어갈 수 있음에 안도했다.




덕분에 스마트폰을 배우고 있어요.
영상통화도, 자동결제도…
역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하나 봐요.



기사님의 말을 듣는데, 오래도록 폴더폰만 고집하던 아빠가 어느 날 갑자기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카카오톡을 배우기 시작하던 때가 떠올랐다. 나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며 내 또래 친구 아빠들보다 훨씬 빨리 스마트폰 사용법을 익혔고, 아빠는 스스로를 '신세대'라고 칭했다.



핸드폰보다는 삐삐가, 삐삐보다는 공중전화가 더 익숙한 아빠가 카톡 친구 추천에 떴던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나이 지긋한 기사님이 난생처음 영상통화와 자동 결제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을 보니 각자의 방법으로 교감하며 끈끈하게 얽히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만들어낸 '언택트(Untact)'라는 낯선 풍경이 아이러니하게도 각자의 방법으로 세대를 연결하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처음 스마트폰을 쓰면서 아빠가 가장 많이 한 말



여전히 코로나는 기승을 부리고 있고, 누군가는 이제 우리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고도 말한다. 바이러스 확산이 약해질 수는 있어도, 감기처럼 계속 우리를 따라다닐 거라고 말하며 코로나 이후의 삶에 대비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제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살아야 하는 걸까. 일터가 있든 없든 '무엇을 먹고 사는지'에 대한 생계 고민은 끝이 없다. 심지어 언젠가는 키오스크나 AI인공지능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을 것이고, 기사뿐만 아니라 시와 소설까지 집필이 가능해 '너무 위험한 도구'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예고 없이 찾아온 코로나와 '언택트(Untact)'문화로 인해 만들어진 기계들이 매일 습관처럼 출근하던 사람들의 일터를 어디까지 삼켜버릴지 모두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코로나로 인해 익숙하고 당연하기만 했던 일상의 풍경들이 자취를 감추고, 낯익은 거리에서 길을 잃어 점점 더 길치가 돼 가는 기분은 지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온 XYZ세대가 주어진 현재를 잘 살아내기 위해서 각자의 방법으로, 곁에 있는 서로를 지켜가는 중인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코로나 이전, 우리가 누리던 ‘일상의 소중함’이 어떤 것이었는지 마지막으로 가수 이적의 <당연한 것들>의 노랫말을 옮겨 적는 것으로 대신해 끝맺으려고 한다.



그때는 알지 못했죠.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거릴 걷고 친구를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 주던 것.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잊지는 않았잖아요. 간절히 기다리잖아요.
서로 믿고 함께 나누고 마주 보며
같이 노래하던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