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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쟁이캘리 Oct 29. 2020

마음도, 빨래가 필요해

빨래는 볕에 널어 잘 말려야 끝난다



살다 보니 울음도
울어본 놈이 잘 운다.




참는 게 습관인 사람들은 참을 수 있을 때까지 꾹꾹 눌러 참느라, 막상 터트리고 나면 그칠 줄 모르고 여운이 길다. 울음에도 건강한 울음이 있다는 것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수없는 일탈과 자유를 꿈꾸지만 발 딛고 선 현실로부터 도망쳐 본 적 없는 내 마음에게 그리 좋은 주인은 아니었다. 쉬지 않고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서둘러 괜찮아지려고' 했다. 때문에 주말을 지날 때도 몸은 쉬어도 마음은 늘 평일이었다. 편안히 앉은 적 없는 마음이라 스스로를 돌보는 일이 서툴렀다. 덜 움직이고 게으르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쉼'이라고 착각했다.



정말, 살다 보니 울음도 울어본 놈이 잘 운다. 별안간 잘 다니던 회사에서 퇴근 10분 전에 해고 통보를 받았을 때도 나는 제대로 울지도 못 했다. 스스로 내 마음의 안녕을 살피는 일은 늘 어려웠다. 넘어진 마음을 안고 다독이는 일보다 당장의 해결책을 찾아 움직이는 것이 익숙했다.




핸디캡을 안고 사는
삶은 온통 뜀틀의 연속 같았다




넘어진 자리에 오래 앉아 있을 시간이 없었다. 무한 경쟁 속에 '친선'은 없었으므로 일단 털고 일어나야 했다. 눈앞에 놓인 장애물을 어찌 넘을지 고민하는 것이 습관이었다. 남들보다 불리한 출발선에 섰으니 쉴 틈이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머무는 그 잠깐 사이, 몇 번이고 남들에게 따라 잡힐 것 같았다. 물리적으로도 비길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니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나를 멈추게 한 것은 '일단 잠시 멈추고 네 마음부터 살피라'라고 말하던 친구의 조언이었다. 그 말을 가만히 곱씹다가 나 혼자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로 결심했다. 가만 보니 이제껏 홀로 떠난 여행은 대부분 '나 자신에게 주는 시험'이었다. 과연 혼자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스스로의 한계를 가늠하기 위함이었다. 매번 나를 뛰어넘어야 하는 뜀틀 같은 시간의 연속이었다. 나를 위한 시간이니 뭐든 혼자 하기로 마음먹었다. 말동무가 있으면 심심함은 덜겠지만, 내 마음이 하는 말은 듣지 못하겠다 싶었다.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고 싶어 관광지가 아닌 도심으로 여행을 떠났다. 어렵지 않게 지나는 일상의 공간에서 다름을 찾고 싶었다. 멀리 도망쳐야 겨우 터놓는 마음 말고, 익숙한 거리에서 넌지시 꺼내놓는 마음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래야 나 자신에게 언제, 어디서나 좋은 주인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익숙하고 평소에 좋아하던 것부터 찾았다. 가만히 앉아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금세 행복을 느끼며, 연극이나 뮤지컬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좋아하는 것들을 하루에 몰아주기로 다. 오늘 하루는 꼭 행복해지기로 마음먹고 움직였다.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는 늦잠을 자고, 점심을 먹을 즈음 서점에 들렀다. 발길이 닿는 대로 걸었고 눈길이 멈추는 대로 책을 들어 펼쳤다. 아무 계획 없이 잡고 펼친 책 속에서 예기치 않은 위로를 받기도 했다.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한 이 글귀가 예기치 않게 나를 위로했다




스스로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비는 그치려고 내리는 거고 바람은 지나가려고 부는 거라고. 그러니 이 시간을 너무 아파하지 말고 잘 보내주라고. 이 또한 지나갈 거고 이미 지나가는 중이니 다 괜찮다고. 덕분에 서둘러 괜찮아지려고 아등바등하던 마음이 저 문장을 읽는 내내 느린 걸음을 걸었다. 마음에게 하는 말처럼 가만히 문장을 읊조렸다. 마음도 내 목소리를 아는 걸까. 내가 나에게 하는 위로는 확실한 울림이 있었다. 스스로에게 읽어주는 위로의 문장은 지금 막 넘어진 나에게 생전 처음 내 목소리로 '괜찮다' 해주는 토닥임이었다. 생경하지만 따뜻한 경험이었다.





혼밥 했던 스테이크 맛집 인증샷




허기진 마음을 달래고 난 뒤, 내가 향한 곳은 스테이크 맛집이었다. 자고로 몸과 마음이 모두 배불러야 뒤탈이 없다.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당장 죽을 것 같은 마음이라도 '행복하게 배부른 순간'도 중요하다. 평소 즐겨먹는 한식이 아닌 양식을 선택한 이유는 하나였다. 대부분 익숙한 것들은 대강 넘기지만, 낯선 것들은 평소보다 조심히 대하는 버릇이 있으므로. 음식이든 마음이든 꼭꼭 씹기 위해 스테이크를 골랐다. 



타지 여행에서의 혼밥은 즐겨도 도심에서는 굳이 시도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분명 어색한 일이었지만 싫지는 않았다. 가게는 오픈형 주방이었고 이른 저녁 시간이라 손님이 별로 없어 가게를 통째로 빌린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 좋았다. 소란스럽지 않은 장소에 기분 좋게 깔리는 음악소리, 잘 익은 스테이크 냄새만으로도 마음은 충분히 너그러워졌다.



마지막 코스는 앞서 예고한 대로 뮤지컬 관람이었다. 처음에는  <몬테크리스토>를 보려고 했으나 원하는 배우의 캐스팅 일정이 안 맞았다. <스위니 토드>를 볼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무서운 것은 혼자 보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빠르게 포기했다. '무섭지 않고 혼자 봐도 혼자인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것'으로 선택의 범위를 좁혔다. 소극장에서 하는 뮤지컬을 보기로 결정하고 이미 본 것들을 소거하고 나니 뮤지컬 <빨래>가 남았다. 



기회가 되면 봐야겠다 생각하고 잊었던 작품이라 큰 고민 없이 예매를 마쳤다. 평일 저녁 예매라 소극장 맨 앞좌석에 앉는 행운까지 생겼다. 공연 중간에 극 속의 서점에서 사인회가 열리는 장면에서는 선착순으로 관객을 무대 위로 올려 연극배우의 사인을 받을 기회도 있었는데, 앞자리에서 바로 나간 덕에 추억도 제대로 남겼다. 처음 계획한 대로는 아니지만 오늘 하루는 순조롭게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 자꾸 웃음이 났다.




뮤지컬 <빨래> 커튼콜 중 찍은 사진



울고 싶으면 울어야지.
울고 싶을 때는 울기라도 해야지.



이렇게 울 생각은 없었는데… 극 중 대사를 듣자마자 울음이 터졌다. 처음에도 말했지만 역시, 울음도 울어 본 놈이 잘 운다. 웃든지 울든지 하나만 해야 되는데, 꽉 붙들고 있던 마음이 고작 그 두 마디에 속절없이 눈물을 쏟았다. 꼭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했던 사람처럼 부여잡고 있던 감정의 고삐를 풀고 마음 가는 대로 두고 한참을 울었다. 스스로의 감정에 솔직해진다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어려웠다. 어릴 때 소리 내 울던 울음처럼 쉬운 감정이 아니어서 더 그랬다. 갖고 싶던 장난감이 다 팔려서 속상하고, 길가에 놓인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아프고, 백점인 줄 알았던 받아쓰기를 틀려서 슬픈 단순한 감정이 아니었다.



살다 보니 행복한데 불안하고 기쁘다가도 공허하고, 신나는 마음이었다가도 외딴 방에 있을 때면 축 처지는 마음을 마주하기도 했다. 마음 편히 울고 웃는 일조차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잔뜩 힘주고 버티는 중인 마음을 잠깐 놓으면 완전히 놔 버릴까 봐 하는 수없이 안간힘 쓰며 꼭 붙잡은 마음이었다.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겠지만 울고 싶을 때 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감정 회복에도 골든타임이 있다. 비워야 할 때 제대로 비워내지 못하는 것은 제 때 수문을 열지 못하는 댐과 같다. 덮어놓고 무작정 참는 동안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난 울음은 안전펜스마저 순식간에 무너뜨려 홍수를 일으킨다.



그 날에야 알았다. 마음에도 무게중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적당한 비와 바람이 먼지를 씻어내는 것처럼 마음도 건강하게 울음을 울어야 감정도 체하거나 막히는 일 없이 비우고 채우기를 반복할 수 있다. 환할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는 것처럼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어둠이 있다. 웃고 떠드는 행복한 지간 뒤로 젖은 빨래처럼 축 늘어진 마음을 마주할 때, 얼른 꺼내 볕에 널어 제대로 말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평생 함께 데리고 살아야 할 내 '마음'이므로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제때 말려줘야 한다. 잘 말리지 않으면 축축한 그것이 다 마를 때까지 내내 눅눅한 마음을 견뎌야 한다. 적당히 말랐다 생각해 대강 걷어들일 때가 가장 위험하다. 완전히 마르지 않은 마음을 섣불리 걷어들여 괜찮은 척하면 내내 습하고 꿉꿉한 냄새가 진동하는 마음을 감내해야 한다.     



이제껏 빨래는 '세탁하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얼룩이 남지 않도록 때를 지우는 일에 몰두했다. 가만 보니 세탁은 빨래의 시작이고, 볕이 잘 드는 곳에 널어 잘 마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개는 것이 마무리였다.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시간이 흘러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네 눈물도 마를 거야.

깨끗해지고 잘 말라 기분 좋은 나를 걸치고
하고 싶은 일 하는 거야.

- 뮤지컬 <빨래> 중에 발췌



談담쟁이캘리

: 이야기하는 글쟁이입니다. 

무심코 지나치는 찰나,
별 것 아닌 일상이 별 것이 되는 순간을
에세이와 시로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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