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말, 진도를 다 마친 수업 시간에 나는 사연 라디오를 진행했다. 학생들이 익명으로 사연과 함께 듣고 싶은 노래를 신청하는 활동이었다.
대부분의 사연은 예상대로 귀여웠다.
"친구들아, 내년에도 친하게 지내자!"
"중학교 1학년, 정말 행복했어."
발랄한 열네 살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글들이었다.
그런데 한 사연이 내 마음을 멈추게 했다.
"나는 지금 정말 행복합니다.
교복을 입고 등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학교에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합니다.
체육복을 입을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합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상이, 이 사연의 주인공에게는 특별한 행복이었다. 이름은 적혀있지 않았지만, 이 글이 봄향이의 것임을 나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교복을 입는 것, 급식을 먹는 것, 체육복으로 갈아입는 것.
나는 한 번도 이런 것들을 행복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너무나 당연했기에 그 소중함을 잊고 살았던 것들.
봄향이는 그것들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주고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교사는 가르치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교학상장(敎學相長).
교사와 학생이 서로 배우며 함께 성장한다는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봄향이는 나의 스승이었다.
행복의 기준을 다시 세워준 스승.
당연함 속에 숨은 감사함을 일깨워준 스승.
지금도 가끔 일상에 지칠 때면, 봄향이의 사연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나는 지금 얼마나 많은 행복을 누리고 있는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