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밭 위의 아이들

by cha

전교생이 장화를 신고 집합한 아침, 우리는 용달차에 실려 논밭으로 옮겨졌다.
그렇다. 그곳은 고3을 포함한 전교생이 동원되는 모내기 현장이었다.


우리 전날 보이지 않던 고3들은 이미 밑작업을 위해 하루 먼저 현장에 투입된 상태였다. 학교에는 이런 특별한 행사가 연 2회 있었는데, 바로 모내기와 김장이었다. 태어나서 김장은 물론, 모내기라는 걸 직접 해본 적도 없던 나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사회책에서나 보던 장면 속에 내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친구들은 종아리까지 차오른 물을 가르며 거침없이 논으로 들어갔다. 고학년 선배들이 못줄을 잡고 “어이!” 하고 외치면, 우리는 손에 쥔 모를 줄에 맞춰 심어야 했다. 다시 “어이!” 하는 소리가 들리면 일어나 다음 줄로 넘어갔다. 단순한 작업이었지만 하루 종일 허리를 숙였다 들었다 하다 보면 곡소리가 절로 나왔다. 타이밍을 놓치면 작업이 지연되기 때문에, 은근한 협동심도 필요했다.


모내기에는 타이밍과 호흡이 필요하다면, 김장은 분업과 순서가 중요하다. 소금물에 절인 배추를 옮기는 팀, 양념에 들어갈 채소를 손질하는 팀, 양념을 만드는 팀,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는 팀.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분명했다. 노작은 이렇게 교실에서는 배우기 어려운 협업을 자연스럽게 가르쳐주었다.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자기 몫을 해내는 경험은 특별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 김장철마다 하루에 800포기 이상의 김장을 했고, 차가운 소금물에 손을 담그다 보면 동창이 드는 것도 예삿일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빅 이벤트’들을 은근히 기다렸다. 모든 일이 끝나면 늘 수육이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막 담근 김치와 함께 먹는 수육은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처음 모내기나 김장을 했을 때는 옷이 더러워지고 손에 닿는 진흙과 양념의 감촉이 불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사춘기 특유의 짜증과 복잡한 생각들이 흙을 만지고 반복적인 손동작을 하는 사이 잠시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이런 큰 행사 외에도 우리 학교 시간표에는 주 2회 정도의 노작 시간이 있었는데,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오히려 이 시간이 기다려지곤 했다. 단순한 반복 작업과 자연이 주는 어떤 힘이 분명히 있었다고 생각한다.


주 2회의 노작시간에는 학년별로 맡은 작물밭을 키우는 일을 했다. 홍삼밭에 들어가 홍삼을 캐고, 고추를 따거나 고추대를 심기도 했다. 그 외에도 반 회의를 통해 꽃과 감자, 고구마, 당근, 배추를 심어 길렀고, 식목일엔 나무를 심었다. 처음엔 티도 나지 않던 것들이 가을이 되자 묵직한 열매로 돌아오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추수의 계절이 되면 모내기 때 심은 모도 쌀이 되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한철의 기다림과 한철의 고생, 그리고 그 끝에 수확이 있다는 사실은 어린 나이에도 분명한 성취감으로 남았다. 내가 키운 작물이 내 밥상에 오르는 경험은, 어디에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뿌듯함이었다. 노력은 곧바로 결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익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서 이후로는 당장 결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렇게 모내기나 김장, 작물을 기르는 시간은 내게 ‘일을 한다’는 감각을 처음으로 선명하게 남겼다. 그 일은 성적이나 순위와는 상관없다. 흙은 누구에게나 같은 속도로 반응하고, 작물은 거짓 없이 결과를 내놓는다. 정성 들인 만큼 자라고, 방치한 만큼 시든다. 그 단순하고 정직한 세계 속에서 나는 삶이란 누군가 대신 책임져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돌보고 견뎌야 하는 것임을 배우게 되었다.


노작은 내게 성공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대신, 살아가는 법을 체득하게 했다. 지금 당장은 의미 없어 보여도 묵묵히 걸어가면 언젠가 열매를 맺는다는 믿음이, 성실함이라는 유일한 무기로 오늘까지 살아온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믿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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