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이 없는 시험장

by cha

학교에 조금씩 적응하다 보니 어느덧 기말고사 시기가 찾아왔다. 이 학교에서 치르는 첫 시험이었다.


시험 날, ‘무감독 시험’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경험하게 됐다. 시험시간 동안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컨닝도, 잡담도 없었다. 감시가 없는데도 아이들은 스스로 규칙을 지켰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무감독 시험임에도 컨닝을 하고 싶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몇 문제 본다고 점수가 잘나오면 안보고 시험쳐도 잘 봤겠지."


어른들이 먼저 아이들을 믿어줄 때, 아이들은 그 믿음에 걸맞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그 교실에서 배웠다. 때로 통제보다 신뢰가 아이들을 더 바르게 이끄는 것이다.


시험이 끝나고 성적이 나올 때가 되니 괜히 긴장이 되었다. 일반 학교에 다닐 때는 전교생 600명 중 100등 안팎의 성적을 받아오던 터라, 이번에도 중상위권만 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과는 예상 밖이었다. 학년 1등.

물론 소수정예인 이곳에서는 9명 중 1등이다. 그래도 기뻤다. 무언가에서 ‘1등’이라는 자리에 서 본 것이 처음이었다. 그 작은 경험은 생각보다 큰 변화를 가져왔다. 한 번 해보니 욕심이 생겼고, 더 잘하고 싶어졌다. 방학이 되어도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방학이 끝날 때마다 캐리어 한가득 공부한 책들을 챙겨 돌아왔다.


학교에서 수여하는 상도 나를 움직이게 한 중요한 동기였다. 학교에는 성적오름상, 배려상, 다독상, 이끔장상 등 다양한 상이 있었는데, 상이 많아서 가치가 떨어진다기보다 오히려 ‘나도 받을 수 있겠다’는 가능성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매학기 이번엔 이 상, 다음엔 저 상을 목표로 삼아 공부와 생활방식을 조금씩 조정해갔고 그때마다 찾아오는 즉각적인 당근(상)이 나를 계속 앞으로 밀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학교에서의 '상'은 우수한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다수를 향한 격려의 의미였다. 칭찬과 확신이 필요했던 사춘기 시절의 내게 “너 잘 가고 있어.”, “너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라는 말을 제도적으로 대신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입시라는 하나의 문을 향해 달려간다. 옆에서 겅중겅중 뛰어가는 친구들과 발 맞추기도 버겁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에 대한 의심과 회의, 두려움이 쌓인다. 성적표로 종종 자신을 확인받지만, 쟁쟁한 아이들 사이에서 좋은 성적을 얻는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확인받는 경험’을 통한 자기확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아주 작은 상 하나, 작은 인정 하나가 그 나이의 아이에게는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성적에 대한 것이 아니어도 좋다. 과정, 태도, 배려, 성실함처럼 다양한 기준으로 아이들을 바라봐 주어야 한다. “너는 이런 점이 참 좋다”는 말 한마디가, 그때 누군가가 인정해준 ‘나라는 존재’가, 아이를 실제로 그런 사람으로 자라게 만든다.


사실 처음 1등이라는 성적표를 받았을 때는 오히려 숨기고 싶었다. 이전 학교에서는 시험을 잘 보면 곧바로 “어렵다고 징징대더니 혼자만 공부했네” 같은 질투 섞인 반응이 돌아왔고 견제의 대상이 되곤 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도 "뭐야, 열음이가 1등이야?" 소리를 들었을 때, 반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친구들은 내 시험지를 빼앗다시피 가져가 유심히 살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을 기다리며 긴장하던 순간,


"와 너 국어 100점이야? 짱이다."

"아, 이 문제 답이 이거야? 왜?"

"아니 나 먼저. 수학 35번 어떻게 풀어?"

"아~ 난 언제쯤 이 점수 받아보냐. 평균 점수가 몇점이야?"


스스럼없이 나를 인정해주며, 자신들이 틀린 문제를 물어봐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러다보니 시험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함께 문제를 다시 풀어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공부 노하우도 알게 됐다. 나는 눈으로 책을 읽으며 외우는 편이었는데, 어떤 친구는 연습장에 계속 써 내려가며 외웠고, 또 어떤 친구는 이야기를 만들어 암기했다. 그 방식을 따라 해보니 이전보다 공부내용이 훨씬 오래 기억에 남았다. 서로 같은 문제를 풀어보며 더 쉬운 풀이를 찾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어느새 반 전체가 하나의 스터디 모임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아이들이 서로를 견제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인원이 적어 경쟁의 압박이 크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는 학년 꼴등을 해도 9등이었고, 누군가 등수를 물어볼 때 “저 9등이에요”하면 으레 놀라는 반응이 돌아오니 적은 인원이 되레 자존감을 지켜준다며 서로 우스개소리를 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분위기를 온전히 설명하기 어렵다. 나 역시 처음에는 이 작은 집단 안에서도 중상위권을 목표로 공부했기 때문이다. 이 교실에 과도한 긴장이나 날 선 경쟁이 없었던 건, 아마 아이들 대부분이 이미 공부가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자신에 대한 확신과 신뢰를 가지고 있었기에, 누군가의 성취를 위협으로 받아들이기보다 긍정적인 자극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요즘 학교에서는 다른 아이들의 기가 죽는다는 이유로, 아이들 앞에 불러 상장을 주는 시상식이 사라졌고 교무실에서 조용히 상장을 전달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교내 대회 역시 “왜 우리 애는 떨어졌느냐”는 민원이 이어지면서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초등학교 운동회도 무조건 무승부로 끝난다고 한다. 달리기 시합에서 손등에 등수를 찍어주던 것도 이제는 사라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를 배려하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정작 아이들은 누군가의 성취를 축하하는 법도, 스스로의 패배를 받아들이는 법도 배울 기회를 잃은 것이다. 그러면서 입시는 여전히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아이들은 경쟁을 겪지 않은 채 경쟁의 한복판에 던져지고, 인격과 사회성, 그리고 감정 조절 능력까지 함께 하향평준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십 년이 훌쩍 넘은 나의 작은 모교가 떠오른다. 그곳에서는 누군가의 성취를 숨기지 않았고, 그렇다고 패배를 부끄럽게 만들지도 않았다. 지금의 학교들이 아이들을 보호하고자 애쓰는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때로는 아이들을 지나치게 연약한 존재로만 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쟁이 없는 교실이 아니라, 경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버텨낼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교육일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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