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되기 직전, 우리 학교는 축제를 한다. 전학을 오기 전, 친구들이 강낭콩모양 부직포를 뒤집어쓰고 요상한 춤을 추는 것을 봤던 바로 그 축제다. 그때 받았던 신선한 충격 때문일까. 나는 1년 중 축제기간이 가장 기대가 되었다.
축제가 다가오면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전교생이 각자의 역할을 맡는다. 학교 전체를 꾸며야 했기에 누구 하나 빠질 수 없다. 사실 나는 어떤 역할을 맡는 것에 적극적인 편은 아니었다. 일반학교에 있을 때도 축제 아이디어를 내는 시간이면 괜히 연필만 굴렸다. 의견을 냈다가 분위기를 망칠까, 엉뚱한 소리를 해서 웃음거리가 될까 늘 노심초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결국 리더가 시키는 대로 장식물을 자르고 붙이는 수동적인 조수역할에만 머물러 왔었다.
그런데 이곳에선 모두가 '의무적으로' 역할을 가져야 한다. 그렇게 되니 나처럼 소심한 아이들도 '역할을 맡을까 말까'를 고민하는게 아니라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지'를 고민하면서 축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처음으로 참석하는 축제의 전교생 회의시간. 우리는 전시 공간을 꾸밀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다. 문득 사물함이 눈에 들어왔다. 높낮이가 제각각이고, 뒷면은 판판했다. ‘저걸 전시물 받침대로 쓰면 어떨까.’
쉬는 시간, 반장에게 슬쩍 말을 꺼냈다.
“그냥 내 생각인데... 사물함을 전시대로 쓰는 건 어때? 뒷면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
혹시나 비웃음을 살까봐 ‘내 생각’이라는 쿠션어를 앞에 붙였다. 반장은 내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 끝나자마자 아이디어는 전교회장에게 전달됐고, 뜻밖에도 모두가 그 아이디어를 좋아해주었다. 심지어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아이디어에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그럼 사물함 뒷면은 종이를 붙여서 그림을 그리자."
"아니면 스티로폼 장식품을 만들어서 달아도 좋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두루뭉술하던 아이디어가 여러 사람을 거치며 명확한 형태로 다듬어지기 시작했다. 혼자였다면 생각에서만 그쳤을 아이디어가, 함께하니 현실이 되었다. 이 경험은 복도 공간을 디자인할 때도 반복됐다. 복도에 미로처럼 벽을 세워, 사람들이 그 사이를 지나며 전시를 보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준비기간 내 벽을 만드는 작업이 어려웠고 마땅한 재료도 떠오르지 않던 차였다. 그때 후배 중 한명이 아이디어를 냈다.
“아래에서 세우기 힘들면, 위에 천을 달아서 길을 만들어보면 어때요?”
그렇게 하늘에서 내려온 길이 만들어졌다. 우리가 의도한대로, 사람들은 천 사이를 지나며 차근차근 전시를 구경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꼭 처음 떠올린 방식만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그리고 그 방식은 여러 사람들의 협력을 통해 찾아낼 수 있다는 것도.
이런 경험이 쌓이자 나는 점점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는 반 내부를 꾸미는 리더를 맡았다. 아이들이 기숙사로 내려가 쉴 때도 교실에 남아 축제준비를 할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열선으로 스티로폼을 자르다 보면 손이 따끔거렸고 사다리 위에서 타카질을 할 때면 괜히 겁도 났다. 글루건 입구에 손이 데여 피부가 벗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간이 좋았다.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을 꺼내 조금씩 형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내심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축제를 준비하다보니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곽티슈와 나무봉을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 청소기를 만들고, 옷걸이에 박스를 연결해 ‘접히는 옷걸이’라며 들고 다니던, 생활 쓰레기들을 적극적으로 생산해내던 기억이었다. 그땐 그저 놀이였는데, 지금 보니 그때도 나는 뭔가를 만들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아, 나 이런거 좋아하는구나.'
머릿속에서 불 하나가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축제에 꾸미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산골짜기까지 푸드트럭이 올 수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간식과 식사를 만들었고, 학부모들 앞에서 선보일 공연도 준비해야 했다.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공연 준비 하는 것을 좋아했다.
일반 학교에 다닐 땐 늘 공연을 구경하는 쪽이었다. 무대는 ‘인싸’들의 것이었고, 나는 아래에서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쪽이 더 익숙했다. 하지만 이 학교에서는 전교생이 모두 무대에 올라야 했다. 마지못해 준비를 시작했지만, 하다보니 내 몸에 관심종자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소심한 성격에 눌려 제대로 꺼내보지 못한 새로운 열정이다.
나는 그동안 봐왔던 공연들을 떠올리며 춤을 만들고, 연극을 짰다. 친구들을 세워두고 동작을 맞추다 보면 시간이 금세 흘렀다. 친구들도 적극적으로 따라와 주었다. 30~40명이라면 감당하지 못했을 부족한 리더십이었지만, 넓은 아량을 가진 9명 남짓한 아이들 사이에서는 나름 역할을 해냈다. 준비에 열중한 나머지 본가에 갈 때마다 문화센터 댄스강사에게 1대1 과외를 받기도 했다. 누가 시킨 것도, 꼭 해야 할 일도 아니었지만 전에 없던 책임감에 마음이 불타올랐다.
그 시기는 내가 가장 나답게 움직이던 때였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던 시기. 밤이 길어도 괜찮았고, 계획이 틀어져도 다시 일어나 방법을 찾았다.
청소년기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건 큰 자산이다. 결과보다 과정을 즐기는 법, 실패해도 다른 대안을 찾는 법, 혼자보다 함께일 때 더 멀리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 것. 이런 것들은 성적표에는 남지 않았지만, 사회적 존재로서 '나'를 만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해주었다.
지금도 가끔은 그 봄의 축제를 떠올린다. 생각이 실체가 되고 그것이 누군가에게 닿는 순간의 설렘을 알게된 이후로, 내가 만든 무언가가 누군가의 가슴에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지금의 나를 글 앞으로 데려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교실에서 축제준비를 하며 풀 냄새가 그득한 공기를 마시던 밤과, 책상 앞에서 글을 쓰는 시간이 어쩐지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