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학 전에 학교를 가요?

by cha

학교의 독특한 커리큘럼 중 하나는 ‘계절학기’이다. 마치 교회 여름수련회처럼, 여름방학 중간에 2주 동안 학교로 돌아와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 시간을 은근히 기다렸다. 외부에서 계절학기 학생으로 참여한 또래 친구들과 함께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한 기숙사 생활이나 핸드폰 반납 규칙이, 그 아이들에게는 처음인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초반에는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있었고, 대안학교에 대한 편견을 안고 들어온 아이들도 있었다.


"여긴 공부 못하는 애들만 있는 거 아냐?"

"문제아들만 모여 있는 줄 알았어."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함께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뛰어다니며 놀다보니 처음의 내가 그랬듯 다들 긴장을 풀거나 색안경을 벗게 되는 것이다. 그 아이들은 우리가 산나무 열매를 모두 맞추는 것과 스스럼없이 팔을 걷어붙이고 화장실 청소를 척척 해내는 것을 놀라워 했다. 우리도 그들에게서 다양한 대안학교 밖 이야기를 들었다. 핸드폰을 쓰지 않는 우리에게는 유행 아이돌 그룹이나 최신 드라마 이야기도 신기했고, 학원을 여섯 개씩 다닌다는 이야기와 내신 때문에 잠을 못 잔다는 이야기는 먼나라 얘기 같았다.


"너희는 하루 종일 책상 앞에만 앉아 있는 게 안 힘들어?"
"난 너네가 성적 스트레스를 안받는 게 더 신기한데?"


서로의 생활을 신기해하며 웃던 우리는, 계절학기 마지막 날 아쉬운 마음에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계절학기에 참여한 아이들 중에는 그 기억이 좋아 다음 학기에 실제로 전학을 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계절학기는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 뿐 아니라,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 기간 학교를 찾은 선생님들 중에는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예비 교사도 있었고, 해외에서 자원해 온 선생님들도 있었다. 실습 인정도, 보수도 없는 2주를 오롯이 아이들과 보내기 위해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 역시 아이들과 함께하는 합숙 생활은 처음이었는데, 오히려 몸을 맞대고 생활하다보니 더 쉽게 깊은 라포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짧은 시절인연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선생님들도 있다.


선생님들 중엔 졸업생 선배들도 있었다. 1기 졸업생부터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한 선배들까지, 다양한 얼굴들이 학교에 모였다. 짧은 치마도, 염색도 금지였던 우리에겐 화려한 머리에 예쁜 옷을 입고 온 선배들이 그저 부러웠지만, 어른이 된 지금 돌아보면 친구들과 놀기에도 바빴을 시절에 모교로 돌아와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내준 마음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것 같다. 선배들은 '보조교사'라는 이름으로 각 반에 배치되어 보충 공부를 도와주고 묵학 시간을 지켜주었으며, 땡볕 아래에서 화단을 정리했다. 야외활동이 있을 때는 운전도 맡아주었다.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선배들과 나누던 진로에 대한 대화였다. 자기 전에, 밥을 먹으면서, 설거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진로상담이 이어졌다. 우리가 목표로 하던 대학에 다니거나, 이미 꿈꾸던 일을 하고 있는 선배들은 우리의 고민을 듣고 자신의 경험을 솔직하게 들려주었다.


"학교 홍보대사를 해보니까, 우리 대학은 이런 경험을 자소서에 넣는 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

"이 일을 하고 싶으면 방학 때 이런 경험을 해보는게 도움이 되거든?"


선배들의 조언은 담백했지만 그만큼 현실적이었다. 그 덕인지, 우리 학교는 유독 선배들이 간 대학으로 진학률이 높은 편이었다.


계절학기의 수업은 일반 학기처럼 시간표는 있었지만, 보통은 주요 과목을 중심으로 보충 수업이 이루어졌고 야외활동과 공동체 프로그램도 많았다. 체육대회나 물놀이처럼 하루를 통째로 쓰는 활동도 있었는데, 이런 시간을 통해 선생님들과 선배들, 새로운 친구들까지 모두 어울려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서로 얼굴만 알던 서먹한 사이에서, 이름을 부르고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일반학교를 벗어나 대안학교를 통해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만 머물렀다면, 이곳 역시 나의 또 다른 ‘우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계절학기는 그 벽을 허물어 준 시간이었다. 학교 밖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을 자연스럽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작은 학교에서 십대의 대부분을 보내면서도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과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해마다 찾아온 계절학기 덕분이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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