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막바지가 되었을 무렵, 우리는 1년간 필리핀에 갈 준비를 해야 했다. 어학연수이자 해외봉사활동으로, 학교에서 정해진 주요 커리큘럼 중 하나였다. 다만 우려되는 점이 있었다. 우리가 고작 ‘필리핀 유스 아카데미 2기’였다는 사실이다. 바로 윗학년인 중3 언니, 오빠들이 처음으로 필리핀에서 1년을 생활했고, 그들의 귀국 시기와 우리가 출국해야 하는 일정이 엇갈리면서 제대로 된 후기를 들어볼 시간조차 없었다.
나는 한 번도 부모님 없이 해외에 나가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1년이라니. 우리 학교가 기숙학교이긴 했지만, 2주에 한 번씩은 주말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에 가서 엄마 밥을 먹고, 집 냄새가 밴 이불을 덮고 자는 시간. 그 짧은 귀환이 늘 버팀목이었는데, 1년은 그 어떤 틈도 허락하지 않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필리핀이라는 나라는 내게 덥고 위험한 곳으로만 그려졌다. 영어도 자신 없었고, 곤란한 일이 생기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 앞섰다. 머릿속에는 뉴스에서 보던 장면들만 둥둥 떠다녔다. 그런데 의외로 친구들의 반응은 긍정적인 편이었다.
“재밌을 것 같아.”
“어차피 가야 하면 빨리 가는 게 낫지.”
나도 괜히 겁난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어차피 친구들도 함께고 선생님들도 같이 가니 괜찮을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항으로 가기 전날 밤 나는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다. 어두운 집안 곳곳을 서성거리며 괜히 가구를 쓸었고, 그러다 눈물을 흘렸다. 마치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는 사람처럼 청승을 떨었다. 그만큼 두려움이 컸다.
정작 출국하는 날은 너무 바빠서 울 틈조차 없었다. 수속을 하고, 비행기에 타고, 기내식을 먹고, 잠깐 눈을 붙였다 뜨니 이미 필리핀이었다. 첫 필리핀의 감각은 ‘뜨겁고 습하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 공기가 피부에 달라붙는 느낌이었다. 밤에 도착한 우리는 현지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선생님의 봉고차에 올라탔다. 차는 한 시간가량 어두운 도로를 달렸다. 놀라울 만큼 어두웠다. 한국처럼 가로등이 촘촘히 설치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갑자기 파란 지붕의 큰 2층 집이 나타났다. 대리석 외벽의, 생각보다 꽤 근사한 집이었다. 앞으로 우리가 1년 동안 살아야 할 아카데미였다. 가드가 철문을 열어주었고, 커다란 개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맞이했다.
‘아, 정말로 여기서 살게 되는구나.’
아카데미의 구성은 단출했다. 한국인 선생님 셋, 현지 선생님 셋, 그리고 아이들 15명. 우리보다 학년이 높은 선배들 중, 필리핀 유스 아카데미를 경험하지 못했던 몇 명도 함께였다.
지금까지 내가 대안학교의 ‘좋은 점’들만 이야기해왔다면, 이 필리핀에서의 1년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뒤엉킨, 쉽게 정리되지 않는 시간이다. 때로 즐거웠고, 때로는 교훈이 되었으며, 어떤 순간들은 분명 상처로 남았다.
그 1년을 지나온 뒤, 나는 대안학교를 더 이상 ‘이상적인 공간’으로만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장점과 한계를 함께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객관적인 시선을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만큼은 이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선의만으로 운영되는 공동체가 어떤 한계에 부딪히는지, 체계가 없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가혹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동시에 어른의 판단과 책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사라질 때 누가 감당하게 되는지를 묻고자 한다.
제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다만, 이후의 이야기는 멤버십으로 운영하고자 합니다. 저의 경험이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게 편견을 심어줄 위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안학교에 대한 고민을 함께 읽어주실 분들과 보다 책임감 있게 나누고 싶습니다.
그럼 다음 이야기는 조금 더 깊은 곳에서 만나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