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리는 1년 간의 필리핀 생활을 마쳤다. 자신감만 가득한 영어 회화 실력과 제법 그럴듯한 필기체, 그리고 오지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수 있는 생활력을 장착한 ‘고딩’이 된 것이다.
우리의 필리핀 생활은 학문의 시야를 넓혔다기보다는 인생의 시야를 넓힌 시간에 가까웠다. 어디 가서 현지인들과 어울려 지내고, 쓰레기 마을에서 자 보고, 마당에 둘러앉아 기타를 치며 자작곡을 불러 보겠는가. 남들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중학교 마지막 1년을 그렇게 보내고도 다들 꿈꾸던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면, 그 시기를 책상 앞에서만 보내지 않았다고 해서 인생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한국 본교와 필리핀 분교의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Absolute Obedience. 선생님께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한다는 교칙이었다. 그래야 학교가 학생들을 훨씬 수월하게 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필리핀에서는 이 교칙 아래에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본교에서는 의외로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다. 필리핀 분교가 기본적인 생활 여건조차 부족한 곳이었다면, 한국 본교는 시스템이 갖춰진 상태에서 규율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통제는 아이들에게 질서와 규칙을 가르치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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