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
2019년 방영된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는 국가적 재난 상황 속에서 펼쳐지는 국정 상황을 그린다. 이 드라마보다 '정치'를 잘 그린 드라마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대부분의 내용이 적나라하고 사실적이다. 여당과 야당, 진보, 보수 간의 정치 싸움은 흥미롭고, 일부분은 현재의 대선 정국과 겹쳐보이기까지 한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권한 대행'이다. 대통령의 정상적 직무 수행이 불가능해졌을 때, 그 자리를 승계하는 사람의 이야기.
이 드라마는 '대통령의 죽음'으로 문을 연다. 국회가 붕괴되고, 그곳에 있던 대통령과 각 부의 장관들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정치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던 '환경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 대행을 수행하게 된다. 드라마는 16부 내내 그런 질문을 던진다. 과연 '좋은 사람은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없는 걸까?'
환경부 장관 박무진은 좋은 사람이다.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좋은 교수. 언제나 성실하고 솔직하며, 진실된 사람. 그게 그가 일평생 자신의 신념이라 믿어왔던 것들이다. 하지만 최고 결정권자 자리에 오르자, 그가 믿어온 그 신념들은 한순간에 쓸데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좋은 아빠이고자 싶어서 했던 선택은 때때로 자신을 나쁜 정치인으로 만들어버리고, 군인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자 했던 선택은 그를 군의 작전을 실패로 이끈 무능한 정치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는 혼란스럽다. 솔직한 것이 독이 되어 돌아오고, 믿음의 대가가 손가락질로 다가오는 이곳에서 그는 자신이 믿어온 가치들을 두고 오랫동안, 혼란스러워한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정말 '좋은 사람은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없는 걸까?' 라는 질문에 대해 고민해보았지만, 답은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정치가 복잡다단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나라 정치판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이건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그저 색깔 싸움이 아닌가? 하는. 진보냐 보수냐의 정치적 성향을 가지고 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와 다르니까 틀린 거야'라는 식의 흑백논리가 정치판을 지배한 것 같다는, 그런 암울한 생각 말이다. 그러니 유의미한 정책 토론이 이루어질 리 없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논의가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대다수의 정치인은 서로의 가정사나 개개인의 흠집을 가지고 논할 뿐, 국민들의 목소리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그러니 이러한 정치판에서 좋은 사람이 '좋은 정치인'일 수 없다. 좋은 사람이 '바보 같은 정치인이 되는 세상'. 나는 왠지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실은 잘 모르겠다. '-것 같다'라는 식의 끝맺음은 확정적이지 않아서 언제나 번복의 여지를 남기니 명확하지 않은 의견을 표현할 때 적절한 것 같다. (또 '같다'를 썼군!) 아무튼, 생각하는 사람에 따라, 그리고 개개인의 정치 성향에 따라 '좋은 사람이 좋은 정치인이었던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나의 기준에선 좋은 사람이자 좋은 정치인이었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저도 꼭 보고 싶어 졌습니다. 좋은 사람이라서 이기는 세상.
좋은 사람이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싶다. 좋은 정치를 하면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킬 수 있는 세상, 그리고 그 신념이 삐뚤어지지 않아도 자신의 정치를 온전히 할 수 있는 세상. 드라마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기는 또 오랜만이다. 이번 주말, 시간이 여유로우신 분들께, 이 드라마를 흔쾌히 추천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