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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이 Aug 21. 2021

엄마를 닮는다는 것

 #단어이야기

* 단어 '엄마'에 대한 이야기


어릴 때야 엄마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녔지만, 이제는 엄마 옆에 서서 걷는 날이 늘었다. 모르는 곳에 가면 내가 먼저 엄마 손을 잡고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는 일도 일상이다. 엄마와 키가 비슷해졌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거울 앞에 서면 엄마보다 한 뼘은 더 큰 모습이 어색하기도 하다. 엄마는 평생 '슈퍼우먼'일 줄 알았던 나의 눈에도, 스무 살이 넘으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의 어깨에 놓여 있던 수많은 짐과 부담감들, 딸 하나 아들 둘을 키워오며 가끔은 홀로 짊어져야 했을 그 삶의 무게가 말이다.


어렸을 땐, '엄마와 딸은 닮는다'는 말이 실감되지 않을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누구보다 엄마를 많이 닮아가는 내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난다. 언제 이렇게 닮아버린 걸까? 강한 주장, 불 같은 성격, 한다면 하는 불도저 같은 진행력까지. 누가 봐도 엄마 딸이라고 할 만큼 우리는 모든 것이 닮았다. 어릴 적 엄마가 내게 써주던 편지의 글씨체까지 모든 게 엄마와 판박이다.


엄마는 오랜 기간 학습지 교사로 일했다. 아마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부터였던 것 같은데, 그때 엄마는 모든 일을 잘 해내는 말 그대로 슈퍼 우먼이었다. 학습지 방문을 하며 바빴을 때에도, 잠시 짬을 내 집에 들러 우리가 먹을 간식을 준비해두곤 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만들어져 있던 따끈따끈한 주먹밥이 그 당시엔 당연한 건 줄로만 알았다. 엄마의 노고가 담겨 있는 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 대학 졸업반이 된 지금까지 학습지 교사로 일하신다. 하지만 한 번도 우리에게 무관심했던 적이 없다. 오히려 매번 더 꼼꼼하게 우리의 스케줄을 챙기셨고, 해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대부분 빼놓지 않고 들어주셨다. 엄마는 이제 하늘의 뜻을 깨닫는다는 지천명을 지나고 있다. 하지만 끊임없이 공부하며 더 나은 곳으로의 이직을 준비 중이다. 내년이면 막내 동생이 스무 살이 된다. 이제 그 기나긴 여정의 육아가 끝났으니, 엄마의 삶을 즐기며 살라고 말하고 싶다. 엄마는 정말 치열하게 살았다.


"엄마처럼 살고 싶어." 이제는 내가 먼저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면 엄마는 '나보다 더 잘 살아야지.' 하며 웃는다. "엄마처럼 살고 싶어"에 담긴 말의 의미는 엄마처럼 치열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후회 없이, 내 주변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내 어깨에 얹혀질 그 많은 짐을 견뎌내며 살고 싶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잘 살아도 엄마만큼은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가 헤쳐 나온 삶의 무게의 반의 반이라도 견뎌낼 수 있기를, 그리고 엄마가 해나간 삶의 발자국 위에서 엄마를 조금 더 닮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예전에는 엄마를 닮아가는 것이 엄마의 발자국을 밟으며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보다 엄마의 발자국 위에 같이 서서, 동행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의 발자국 위에 함께 서서 나아갈 때, 나는 비로소 엄마의 미소를 바라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엄마가 지금까지 혼자 책임져 왔을 짐들을 나눠질 수 있다.


엄마를 닮아간다는 건, 묵묵히 그 길에 동행한다는 것이다. 그 길이 앞으로 평탄하리라는 보장은 해줄 수 없지만, 발걸음을 조금 더 가볍게 만들어줄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엄마의 길에, 엄마를 꼭 닮은 딸 하나가 항시 동행하고 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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