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에서 첫 피카(Fika)!

100년 가까이 된 카페

by 수니




아침 7시 반쯤 눈이 떠졌다. 커튼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니 한참 해가 뜨고 있었다. 씻고 나갈 채비를 마친 후 나가기 전에 구글맵으로 첫 목적지를 가는 법을 찾아보았다. 아직 유심칩을 갈아 끼우지 못해서 집 밖으로 나가는 순간 인터넷과는 바이 바이 해야 하기 때문에 길 찾기를 해보니 'T'라는 알파벳의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가는 방법이 나왔다. 경로를 보니 느낌상 지하철이구나 싶었다. 경로를 캡처해두고 문 밖으로 나섰다.


입김이 나오는 초겨울 날씨에 아직 적응이 덜 되었다. 추운 건 싫은데 기분은 좋았다. 차가운 공기가 상쾌하게 느껴져 코가 아프도록 잔뜩 들이마셨다. 어제 저녁에 오면서 본 건물들이 밝은 아침에 보니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나 정말 스웨덴에 왔구나!



어제 버스에서 내렸던 방향으로 쭉 걸어가니 'T'라고 쓰인 간판이 보였다. 입구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니 예상대로 지하철이 맞았다. 알고 보니 'T'는 'Tunnelbana(툰넬바나)'의 약자로 스톡홀름의 지하철을 의미한다. 스웨덴에는 스톡홀름에서만 지하철이 운영되는데 특이하게도 스톡홀름의 지하철은 홍콩의 MTR에서 운영을 맡고 있다고 한다.


지하철을 타려면 교통권을 사야 하는데 스웨덴은 교통비가 비싼 걸로 유명하다. 1회 이용권이 4~5,000원 정도. 어마어마한 가격이기 때문에 72시간 교통카드를 구매하기로 했다. 역무원에게 가서 “하이! 나 3일짜리 카드를 사고 싶어.” 라고 하자 “72시간짜리 말하는 거지? 거기에 카드를 꽂아서 결제해.” 라고 말하며 카드 단말기를 가리켰다. 우리나라도 요즘 셀프로 카드를 직접 꽂아 결제하는 방식이 많아졌는데, 스웨덴이 원조인가 싶었다.


72시간 교통카드는 280 크로나(한화로 약 34,000원)인데 아무래도 다른 나라의 교통비와 비교하면 꽤 비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열심히 돌아다녀야겠다고 생각하며 지하철을 타러 내려왔는데 엄청나게 오래된 것 같은 탑승장은 지하동굴 같은 느낌이 나면서 벽 곳곳에 미술작품들이 걸려있었다. 우리나라처럼 깔끔하고 현대적인 느낌과는 전혀 달랐다. 영화에서 본 유럽 지하철 느낌 그대로였다. 지하철을 타고나서 본 또 다른 점은, 스톡홀름의 지하철 내부는 의자가 일자로 있지 않고 버스처럼 2인 좌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 뒤로 마주 보고 앉아서 간다. 이 구조를 어디에서 봤더라 생각해보니 대만에서 탔던 지하철도 이런 구성이었던 것이 생각났다. 지하철은 아침이라 사람들로 꽉 차있었는데 동양인은 나뿐이어서 사람들이 흘깃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어딜 가나 출근시간의 대중교통은 붐비는구나.



스톡홀름 중앙역인 T-Centralen역에 도착했다. 중앙역이라 공항으로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굉장히 혼잡했다. 첫 목적지로 찾아가는데 스톡홀름은 건물들이 정갈하게 잘 지어져서 길을 찾는 데에 어려움이 없었다. 가는 길은 대로변으로 쭉 가면 되지만 일부러 골목을 통해서 갔다. 낯선 건물들 사이에서 색다른 디테일을 찾으며 구경하는 재미에 발걸음이 더뎌졌지만 아침부터 걷느라 배가 꼬르륵 대는 통에 못 견디고 목적지를 향해 다시 빠르게 걸었다. 드디어 반가운 간판이 보이고 고픈 배도 잊어가며 내 손은 핸드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Vete-Katten

내가 아침부터 찾아온 곳은 바로 'Vete-Katten'이라는 카페이다. 1928년에 생긴 이 카페는 스웨덴 왕실의 공주가 즐겨 찾았던 곳으로 매우 유명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스웨덴 사람들 뿐만 아니라 관광객 또한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즐겨 찾는다. 평소 커피를 즐겨마시는 사람이거나, 즐겨마시지 않더라도 이 카페는 꼭 들러보기를 권한다.


카페로 들어서니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Fika(피카)'를 즐기고 있었다. 스웨덴에서 가장 대표적인 문화 중 하나인 '피카'는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문화이다. 스웨덴 사람들은 이 문화를 굉장히 중요시 여기며, 직장에 '피카 룸(Fika room)'이 따로 있을 정도라고 한다. 나 역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을 굉장히 즐기기 때문에 스웨덴에서의 '피카'를 당연히 경험해보고 싶었다.


북유럽인들로 가득한 이 공간에서 익숙한 언어가 들리고 한국인 두 명이 보였다. 먼 낯선 땅에서 한국인을 보니 참 반가웠다. 나도 카페 한편에 자리를 잡고 옆 자리에 앉은 여자가 먹고 있는 빵이 맛있어 보여 같은 걸로 주문을 했다. 이 곳에서는 먹고 갈 사람과 포장할 사람의 줄이 다르므로 참고할 것.



내가 주문한 라떼와 빵을 들고 와서 자연스럽게 테이블에 세팅을 했다. 알다시피 현재 한국에서는 카페 투어가 유행인데 나도 예전부터 카페에서 커피를 즐겨마셨기 때문에 커피나 디저트 사진을 찍는 것이 어느새 버릇이 되어있다. 내가 이 곳에 다녀왔다는 사진 기록은 SNS에서 자랑을 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모아 보면 큰 추억이 된다. 수많은 카페를 다녔지만 인플루언서들처럼 사진 기술이 고급스럽거나 글을 요목조목 잘 써가며 카페를 소개하는 데에는 딱히 취미가 없었던 것이 요즘은 살짝 후회되기도 한다. 대신에 여행을 시작하며 하던 블로그에 카페 목록을 만들어 기록해두었는데 나중에 보면 참 재미있다. 뭐든지 기록으로 남기면 미래의 나에게 재미와 영감을 주기도 한다.


사진을 몇 장 찍고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라떼. 사실 한국에서는 거의 아메리카노만 마시는데 왠지 이 곳의 라떼아트를 보고 싶어서 라떼로 주문을 했다. 그리고 빵을 한 입 먹었는데, 헬싱키에서 먹은 빵이 생각났다. 분명 커스터드 크림빵 같은데 뭔가 이상한 향이 나면서 식감이 별로였다. 나의 메뉴 선택이 이렇게 실패한 적이 별로 없는데 북유럽은 좀 어려운 것 같다. 옆 자리의 빵을 보고 주문한 터라 자연스레 옆으로 눈길이 갔다.


옆 자리에 앉은 노란 머리의 여자도 혼자 여행을 온 것 같았다. 부스럭거리며 여행 책을 열어 지도를 보고 있었다. 순간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다. "혼자 여행 왔니?" 한 마디 묻자 그녀는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응. 혼자 여행 중이야." 나도 그렇다고 하자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묻기에 대답했다. "코리아. 아, 사우스 코리아." 내 대답에 그녀는 웃으며 "당연하지!"라고 한다. 내가 북한 사람처럼 생기진 않았나 보다.


그녀는 핀란드인 대학생인데 가까워서 여행을 왔다고 한다. 나도 마지막 날 헬싱키에 간다고 했다. 그녀가 워낙 영어를 유창하게 해서 부족한 나의 영어 실력이 부끄러워졌다. 뭔가 더 대화를 하고 싶었지만 내 짧은 영어 탓에 매끄럽게 이어나갈 수 없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내가 사진을 보여주며 다시 말을 건넸다. “내가 서울에서 운영하는 카페야!” 뜬금없게도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와우! 멋져!"라고 리액션해주는 그녀에게 고마웠다. 잠시나마 이어진 짧은 대화에 만족하고 각자 할 일을 했다. 다음에 가야 할 곳을 구글맵으로 길 찾기. 그리고 그녀에게 설레는 마지막 문장을 건네고 카페를 나섰다.


해브 어 굿 트립!
(Have a good t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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