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스웨디시 미트볼

by 수니


스톡홀름의 버스

오후 3시쯤이 되었는데, 어디에 가볼까 고민하다가 버스를 타러 나왔다. 지하철 역과 버스정류장이 가까운 집을 빌린 것은 여행에 정말 도움이 된다. 아무래도 여행지에서 숙소를 정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교통'이 아닐까. 낯선 곳에서 익숙하지 않은 교통수단을 이용하려면 그나마 만만한 지하철 역이 가까운 것이 제일 좋다. 지하철에 비해 버스는 조금 고난도랄까. 우리나라와 도로가 반대일 수도 있고 버스에 목적지가 적혀있어도 외국어라서 빠르게 알아보기 힘들다. 물론 요즘은 구글맵이 다 알려주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웬만한 도시의 교통편은 금방 익숙해진다.


같은 버스나 지하철이어도 한국과 다른 점들이 있기 때문에 그 다른 점들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스톡홀름에서 처음 버스를 타게 되니 문득 긴장이 되었다. 승차할 때는 앞 문으로 타는 건지, 뒷 문으로 타는 건지. 교통 카드를 타면서 찍는 건지, 내리면서 찍는 건지. 아무것도 모른 채로 버스를 기다리다가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정류장으로 다가왔다. 버스는 천천히 내 앞으로 서서 앞 문이 열렸고 기사가 나를 쳐다보는 모습에 앞문으로 자연스럽게 올라탔고 카드를 찍는 기계가 보여서 조심스럽게 교통 카드를 가져다 대었다. 삑- 소리와 함께 버스 요금이 숫자로 보였고, 그동안 살면서 눈칫밥을 괜히 먹은 것이 아니었구나 싶었다.



스톡홀름에서 처음 탄 버스는 중간이 지하철처럼 연결되어있다. 아주 기다랗고 넓었다. 그래서 유모차나 휠체어를 쉽게 태울 수 있다.

목적지를 향해 달리던 버스는 어느 정류장에 서더니 갑자기 인도 쪽으로 기울어졌다. 순간 나는 오른쪽 바퀴가 터진 줄 알고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둘러봤는데 아무도 아무렇지 않았다. 나 혼자서 눈을 꿈뻑이며 어리둥절하는데 뒷문으로 휠체어가 버스로 올라타고 있었다. 알고 보니 버스가 휠체어나 유모차, 노약자가 승하차를 할 때 버스를 인도 쪽으로 기울여주는 것이었다. 말도 안 된다며 혼자 입을 틀어막았다. 스톡홀름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당연한 배려, 나에겐 낯설 수밖에 없었다.


한국의 대중교통, 특히나 버스를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저어진다. 난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을 하는 입장인데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대다수의 한국 버스 기사님들은 과속, 신호 무시가 특기인 것을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도한 끼어들기, 급정거, 불친절함 등등의 문제가 많다. 그렇지 않은 기사님들도 계시지만 10년 넘게 버스를 이용해 보고 느낀 점은 대부분 부정적인 점들이 비교적 많았다. 가장 중요한 승객들의 안전이 우선이 아닌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더욱 스톡홀름의 버스는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주 긍정적인 충격이었다.



스톡홀름 아크네 아카이브

버스에서 내려서 찾아온 곳은 바로 아크네 아카이브 매장이다. 아크네의 본고장인 스웨덴에 왔는데 아카이브 매장을 들르지 않을 수 없었다. 해가 비춰서 건물 색감부터가 예술인 아크네 아카이브 매장은 B급 상품이나 세일 상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스톡홀름에 여행 오는 한국인들이 무조건 쇼핑 코스로 들르는 곳이라고 한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내가 묵고 있는 지역인 쇠데르말름이나 지하철, 버스에서 한국인은커녕 동양인을 한 명도 못 봤는데, 아크네 아카이브에서는 손님들 중 한국인이 네 명이나 있었다. 그만큼 스톡홀름을 돌아다니면서 아직까지 한국인을 몇 명 보지 못했기 때문에 비교적 많이 본 것이었다.


매장을 꼼꼼히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데님 재킷을 하나 입어보았다. 핏도 가격도 괜찮았고, 온 김에 하나 사자고 마음속에서 속삭임이 들렸다. 옆에서 친절한 직원이 먼저 말을 걸었고 난 어느새 직원에게 이걸 사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남자 친구의 선물로 재킷을 하나 더 구매했다. 시원하게 긁힌 내 카드를 고이 지갑에 넣고 커다란 쇼핑백을 받았다. 아쉽게도 내가 기대하던 아크네 스튜디오의 핑크색 쇼핑백은 아니었다. 그래도 무언가를 득템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쇼핑은 항상 기분을 짜릿하게 해 준다. 소비에 대한 죄책감과 물건을 쟁취한 기쁨이 공존하는 것 같다.


매장 앞에서 기념사진을 하나 남기고 싶은데 혼자여서 이럴 때 참 난감하다. 망설이다가 다시 매장으로 들어가서 직원에게 사진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찍어주었다. 어색하고 수줍은 내 표정이 사진에 그대로 찍혔다.



Systrarna Andersson

아크네 아카이브에서 나와 건물 코너를 돌자마자 있는 카페에 갔다. 오후 피카를 즐기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나도 잠시 쉬며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원두커피 한 잔과 크럼블을 주문했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짐을 내려놓으니 한결 편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남자 친구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 주변을 둘러보니 카페 내에 사람들은 모두 둘 이상이 모여 피카를 즐기는데 나만 홀로 커피를 홀짝이니 뭔가 외로운 느낌이 들었다. 여행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지만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도 참 좋았기 때문에 문득 외로움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 외로움은 가까이에서 보이지 않던 현실에 서있는 나를 멀찌감치서 둘러보기도 하고 그 내면을 더 깊숙한 곳까지 들여다보게 해 준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는 시간을 보낸다. 반성하고 칭찬하고 다짐한다.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가 뭘까,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단순히 다른 나라에 대한 호기심? 익숙하지 않은 새로움에 대한 갈망? 현실도피? 모두 다 맞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점은 한 곳으로 모인다. 나 자신의 행복. 어떤 이유로든 상관없이 여행은 나를 즐겁고 행복하게 해 준다. 그리고 현실의 나에게 소소한 현실의 행복을 깨닫게 해 준다. 여행은, 행복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알려준다.






우리가 흔히 아는 스웨덴의 대표적인 브랜드 ‘이케아(IKEA)’. 1943년에 설립된 세계 최대의 가구 업체로 6년 전 한국에도 입점되어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가구 못지않게 인기 많은 이케아 레스토랑에서는 스웨덴의 전통 음식인 스웨디시 미트볼(쇠트불레)을 맛볼 수 있다. 그레이비소스와 링곤베리 잼, 감자 퓌레를 곁들여 먹는 스웨디시 미트볼은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도 잘 맞는 편이다. 미트볼 먹으러 이케아에 간다는 말도 있다.

이처럼 유명한 미트볼은 당연히 스웨덴이 원조인 것 같지만 사실 스웨덴의 미트볼은 터키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8세기 초 스웨덴 국왕인 칼 12세가 터키에서 레시피를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스웨덴의 미트볼은 터키의 쾨프테와 재료나 곁들여먹는 음식이 다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스웨덴에서 어떤 음식을 가장 먼저 먹어볼지는 고민할 틈도 없이 ‘미트볼’로 결정했다. 가장 유명하기도 하고 호불호가 크게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난 고기를 좋아하니까! 그래서 첫날 저녁으로 미트볼을 먹으러 갔다. 미리 서치를 해둔 미트볼 맛집이라는 곳으로 찾아갔다.



NOMAD

미트볼 맛집이라는 레스토랑을 찾아왔다. 멋진 건물에 자리 잡은 이 곳은 바와 몇몇의 테이블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난 벽 쪽의 작은 테이블에 앉았다. 젊고 멋진 스웨덴 직원이 웃어주며 주문을 받았다. 스웨디시 미트볼과 콜라를 주문했다. 아직 이른 저녁 시간인데도 소문난 맛집이라 그런지 안쪽 테이블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가게 유리창 쪽엔 밴드 공연도 하는지 드럼과 악기가 놓여있었다. 주변을 가만히 둘러보며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졌다. 어쩌면 혼자여서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인 것 같다. 가끔 필요한 혼자만의 시간, 그리고 혼자가 아닌 나 자신과의 시간.



스웨디시 미트볼

스웨덴의 전통 음식인 스웨디시 미트볼의 크기는 이케아에서 먹었던 것과 다르게 거의 주먹만 했다. 포크로 잘라보니 부드럽게 잘 잘렸다. 입에 넣고 맛을 천천히 음미했다. 미트볼 소스가 예상치 못하게 엄청 짰다. 짠맛이 부담스러워서 부드러운 감자 퓌레를 바로 이어 떠먹었다. 금세 고소한 맛이 감돌았다. 새빨간 링곤베리 잼은 우리가 흔히 아는 잼과 다르게 과일이 그대로 살아있는 ‘절임’에 가까운 형태이다. 미트볼에 웬 과일 잼인가 싶겠지만 미트볼과 함께 맛보면 그 조합은 앞으로 잊기 힘들 것이다.


미트볼이 조금 물릴 때쯤 얇은 오이절임을 입에 넣고 씹으면 시큼 새콤한 맛이 입안에 맴돌면서 다시 입맛을 돌게 해준다. 먹다 보니 나도 영락없는 한국인이구나 싶은 생각이 절로 났다. 여기에 따끈한 쌀밥 한 수저 입에 떠 넣고 미트볼 한 입 먹으면 정말 최고일 텐데. 20대 중반에는 어디로 여행을 가도 밥 생각이 안 났는데, 20대가 끝나가는 지금 이 무렵에는 밥과 김치가 너무나도 간절하게 생각났다. 첫날부터 이러면 안 되는데. 역시 한국인에게는 어딜 가나 한식이 최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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