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감라스탄’

맑아진 기분

by 수니


3일간 편히 내 집처럼 지낸 곳은 스톡홀름에서 처음 만난 숙소라서 뭔가 특별한 감정이 들었다. 나라는 사람이 다녀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어 배낭에 달고 온 태극기 와펜을 두고 나왔다. 그 사이 늘어난 짐 덕분에 캐리어의 무게는 덩달아 늘었고, 배낭 외에 보조 가방이 하나 더 늘었다. 총 세 개의 짐을 가지고 새로운 숙소로 출발했다. 새 숙소는 지하철로 두 정거장 밖에 안 걸리는 곳이다. 오늘은 다행히 날씨가 맑아서 무거운 짐을 옮겨가기 수월했다. 만약 어제처럼 비가 많이 내렸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지하철에서 내려 새로운 동네에 오니 왠지 모르게 색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스톡홀름에서 나에겐 어딜 가든 처음이라 느낄 수 있는 새로움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짐은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고 발걸음은 춤을 추는 듯이 신난 모양이었다.


Hotel Hornsgatan

새로 옮긴 내 방은 아주 오래된 스웨덴 백작 부부의 침실 같은 모습이다. 어쩌면 이번 여행을 시작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해준 ‘호텔 호른스가탄’. 무려 트리플 룸을 특가로 예약한 바람에 혼자서 3일을 이 큰 방에서 자게 되었다. 대신 화장실과 샤워실이 공용이라 조금 불편한 점이 있다. 호텔의 사장님은 나에게 스톡홀름 지도와 박물관 정보가 적힌 종이를 주며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방에 짐을 정리한 후 밖으로 나왔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이 너무 예뻐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제와 느끼는 점은 쇠데르말름 길거리에는 사람이 참 없다는 것이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기 위해 모여있는 것 말고는 길거리에서 많은 사람을 보기 힘들었다. 카페나 음식점, 지하철에는 많은데, 왜 이리 사람이 없을까 싶었다. 다들 출근해서 회사에 있느라 그런 걸까? 나도 한국이었으면 출근하고 가게 오픈 준비를 하느라 바빴을 시간이다. 하루 종일 가게 안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하늘에 어떤 구름이 떠있는지도 모르고 해가 저무는 색깔도 알지 못한다. 이렇게 마음껏 하늘을 올려다보며 구름 모양마다 이름을 붙이고 해 질 녘의 색깔도 알 수 있는 시간은 나에게 특별해졌다. 바깥공기를 힘껏 들이마시고 깊은 호흡을 하는 순간이 좋다. 나를 환기시켜줄 좀 더 자주 가졌으면 하는 순간들. 여행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즐길 수 있다. 그래서 난 역시 여행을 하면 행복하구나.



감라스탄 역에서 나오자마자 보인 모습. 햇빛이 쨍하게 쏟아져 눈이 제대로 안 떠졌다. 역 앞에 나오자마자 꽃 상점이 있는 것은 상당히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맑은 날씨는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보이게 해 준다. 어제 비 오는 날 둘러본 곳들을 똑같이 둘러보기로 했다. 문득 비 오는 날과 맑은 날을 둘 다 볼 수 있다는 사실이 행운처럼 느껴졌다. 비가 와서 추웠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따스했다. 한숨 푹 쉬고 나서 제대로 충전된 느낌이다. 배터리 빵빵한 나는 감라스탄의 골목 속으로 들어갔다. 감라스탄 골목을 걸으면 어느 동화마을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다. 어제는 급히 지나쳤던 상점들과 골목들을 천천히 살펴보고 사진도 남겼다. 감라스탄에서는 단체 여행객들도 꽤나 보였다. 가이드와 함께 감라스탄의 역사를 들으며 골목골목을 돌아보는 것 같았다. 가이드를 따라 정해진 길로 다니는 그들과 달리 나는 자유롭게 오래 머물기도 하고 빠르게 지나가기도 하며 곳곳을 누볐다.



스토르토리에트 광장


이른 오전이었지만 사람들을 언제나 이 광장에 모여있는다. 마치 감라스탄의 종착지 같다. 여러 사람들이 알록달록한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고 노벨박물관에서 관람을 즐기기도 한다. 나도 이 유명한 장면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고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다 바로 앞 레스토랑 테라스에서 테이블을 닦던 직원에게 부탁했다. 그는 친절히 나를 이 광장 안에 담아주었다. 어쩐지 주변 사람들 모두가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을 보는 내 얼굴도 행복해졌다. 또 다른 행복한 얼굴을 발견하기 위해 계속해서 골목골목을 돌아다녔다. 어느 골목에 잠시 멈춰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건물들은 비슷한 높이로 서있고 새파란 하늘엔 하얀 구름이 곳곳에 흩뿌려져 있었다. 크게 공기를 들이마셨더니 뿌옇던 머릿속이 환기되었다. 그리고 허기가 느껴졌다. 점심을 먹기 위해 미리 찾아둔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오픈 시간 10분 전이라 테라스에 앉아 기다렸다. 나 말고도 오픈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이 집 잘하나 본데?’



Stockholm Gustabud

내가 주문한 메뉴는 바로 ‘연어 버터구이’였다. 잘 구워진 연어와 함께 동글동글한 미니 알감자들, 타르타르소스가 곁들여져 나왔다. 딱 봐도 먹음직스러운 자태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뿐만 아니라 버터 향이 스멀스멀 코를 자극해서 얼른 사진을 찍고 나이프와 포크를 들었다.

나이프가 필요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연어는 입 안에 넣자마자 고소한 버터의 풍미가 퍼지며 살살 녹았다. 타르타르소스를 찍어 먹으면 시너지 효과가 나면서 느끼함을 잡아준다. 버터 덕분인지 연어에서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았다.

내가 감라스탄의 맛집을 제대로 찾아왔구나 싶었다. 어느새 레스토랑은 만석이 되었다. 여러 테이블이 미트볼을 먹고 있었다. 나도 혼자가 아니었다면 여러 메뉴를 주문해서 맛볼 수 있었을 텐데,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이 레스토랑의 직원들은 마치 내가 단골손님인양 친절하고 유쾌하게 대해주었고, 위장뿐만이 아닌 마음까지 가득 채워주었다.


가끔 삶이 드라마틱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이런 순간이 바로 그 때다. 창가로 쏟아지는 햇빛이 비추는 음식. 나를 향해 웃어 보이며 음식 맛은 괜찮냐고 세심하게 챙겨주는 그들. 누군가에게는 그저 작은 친절이지만 받는 이에게는 큰 감동, 또는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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