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호른스가탄’에서의 첫 아침은 조식을 먹는 일부터로 시작되었다. 규모가 작은 호텔이기 때문에 키친 룸 또한 소박하지만 냉장고에 가득 채워져 있는 음료들, 테이블에 정갈히 놓인 메뉴들은 조식으로 충분했다. 빵과 햄, 치즈, 토마토와 오이 슬라이스, 삶은 계란, 각종 잼들, 계절 과일들, 차와 커피까지. 이만하면 조식으로 손색없지 않은가? 접시에 호밀빵 한 조각을 올린 후 순서대로 모든 재료를 집어 담았다. 컵에 오렌지 주스를 따라 테이블로 가져왔다. 키친 선반을 보니 접시와 컵이 눈에 익는 디자인이다. 온통 이케아 제품들이었다. 스웨덴에서 보는 이케아 제품은 왠지 반갑기도 하면서 본래 자신의 집에 있는 아이들을 보듯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만큼 우드를 사용한 인테리어와 잘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내추럴한 우드를 참 좋아하는데 나중에 내 집을 장만한다면 부엌에 꼭 사용하고 싶다.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느낌이 좋다.
접시에 담긴 재료로 오픈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으며 주변을 둘러보니 온통 북유럽 사람들이었다. 신문을 읽으며 아침을 먹는 사람, 가족과 통화를 하는 사람, 일행과 대화를 하는 사람들. 소소하고 평범하기 그지없는 호텔의 조식 풍경이었다. 사실 호텔이라고 칭하기도 뭐한 아주 작은 곳이라 그냥 호스텔의 부엌 정도 같은 느낌이 맞다. 부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따스하고 친근한 공간이라는 뜻이다. 처음엔 이 공간이 어색했지만 금방 편안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날씨를 미리 확인했더니 어제보다 확실히 낮은 기온이라 옷을 단단히 껴입고 캐시미어 재킷을 입었다. 그리고 베레모까지 썼다. 영락없는 멋 부린 관광객 차림 같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은 게 스웨덴 사람들의 패션 스타일이 대체로 좋기 때문이다. 북유럽 감성은 인테리어 뿐만 아니라 패션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평균 신장이 높은 국가 중 하나라 그런지 모두들 길쭉하니 옷발을 잘 받기도 한다. 며칠간 스톡홀름에서 사람들을 관찰해본 결과, 초겨울이라 경량 패딩과 데님을 즐겨 입는 사람들도 많지만 젊은 사람들은 재킷과 코트를 레이어드 하거나 숏비니에 롱코트를 매치하기도 한다. 각자 자신에게 어울리는 룩을 주로 입는 것 같다. 스톡홀름 어디에서나 스웨덴 사람들을 관찰하면 스타일이 꽤 좋다는 것을 금세 알 수가 있다.
내가 묵는 호텔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정거장을 가면 ‘슬루센’ 역이다. 이 역은 쇠데르말름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 중 하나다. (물론 나에게만 그럴 수도 있지만) 다음 역이 감라스탄이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다. 슬루센 역에서 내리면 근처에 한창 커다란 공사가 진행 중이라 꽤 복잡하게 보인다. 구글맵에 의존하며 공사 중인 길을 걷는데 갑자기 앞에서 자전거가 빠르게 달려오며 나에게 경적을 울렸다. ‘헉, 웬 자전거가 이렇게 빨리 달려?’ 하고 생각하며 발아래를 봤는데 자전거 그림이 있었다. 공사 중이라 잠시 작은 터널로 길이 두 갈래가 되었는데, 인도와 자전거 도로가 나뉜 것이었다. 그리고 하필 나는 자전거 도로를 걷고 있었다. 순간 창피한 마음에 빨리 걸어 터널을 나와 인도로 얼른 옮겨갔다. 다시는 민폐 끼치지 않도록 발아래 그림과 표지판을 잘 살펴야겠다. 당황한 마음에 심장이 쿵쿵거려서 호흡을 가다듬고 주변을 둘러보며 길을 걸었다. 10분 정도 걸었으려나, 어느새 높은 지대를 걷다 보니 경치가 눈 앞에 시원하게 펼쳐졌다.
잠시 멈춰 사진을 찍고 다시 걷는데 이상하게 자꾸 언덕길이다. 점점 지대가 더 높아지는 것 같다. 내 목적지는 저 아래쪽인데, 내려가는 길이 있겠지. 뭔가 잘못 온 것 같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려서 차마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목적지 바로 위에 도달했다. 내려갈 수 있는 계단이 있는 것 같았지만 계단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잠겨있었다. 더 이상 올라갔다가는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았다. 바로 옆에서 경치를 감상하는 여자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나는 저 아래쪽으로 가고 싶은데 어떻게 가는지 아니?’ 내 질문에 여자는 귀에 꼽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잠겨있는 계단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생각엔 저 계단으로 가지 못한다면 다시 슬루센 역까지 가야 해.’ 10분 넘게 걸어왔는데 허망하게도 다시 온 길을 되돌아 가야 한다니. 믿을 수가 없어서 ‘리얼리...?’라고 물었으나 그녀는 어깨를 으쓱였다.
긴 한숨을 내쉬며 다시 온 길을 되돌아갔다. 오전이라 온도가 꽤 낮아서 코가 시렸다. 설상가상 콧물이 나오기 시작해서 훌쩍이며 길을 걸었다. 그래도 다시 슬루센 역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오면서 보지 못했던 것들을 관찰하며 ‘왔던 길’ 같지 않아 보였다. 언덕 위 가파른 절벽, 귀여운 간판의 가게들, 자전거 주차장. 도로에서 노상 자전거 주차장 자체도 처음 보지만 아기 보조 의자가 달린 자전거가 많은 것 또한 신기했다. 그만큼 아이를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언젠가 스웨덴에 다시 온다면 자전거를 빌려 타고 스톡홀름 곳곳을 누벼볼 생각이다.
슬루센 역에서 맥도널드가 있는 큰 빌딩을 끼고 공사 중인 도로는 처음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헤맬 수밖에 없어 보인다. 나름 길을 잘 찾는 나도 이번 여행에서는 부주의하게 다니다가 실수한 것이 참 많았다. 그 실수 덕분에 에피소드도 생기지만. 여하튼 다시 공사 중인 터널의 안내판을 보니 내가 가야 하는 곳의 방향을 알려주고 있었다. 벌써 시간이 오전 11시가 다 되어 발걸음을 서둘렀다. 하늘에는 비를 잔뜩 머금은 회색빛 구름이 가득했고 강변이라 바람이 차갑게 불었다. 추워서 빨리 걸으려고 했지만 건너편의 작게 보이는 인형의 집 같은 건물들을 보면 자꾸만 걸음이 더뎌졌다. 그러다가 나는 어느 한 곳에 멈춰 서서 잠시 어떤 모습에 시선이 갔다. 그 모습을 고이 사진으로 남겨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