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의 위대한 건축물들

김치가 먹고 싶을 때

by 수니
Fotografiska

스톡홀름의 사진박물관인 ‘Fotografiska (포토그라피스카)’에 돌고 돌아 드디어 도착했다. 스톡홀름의 수많은 박물관 중 평가가 꽤 높은 곳이라 상당히 기대가 되었다.


이 건물은 원래 1906년 아르누보 양식으로 건축된 세관 건물이었는데, 스톡홀름 시에서 3000만 달러를 투입해서 박물관으로 리뉴얼했다. 붉은 벽돌의 외관은 그대로 유지했다고 한다. 그 후 스웨덴에 사진 문화를 선도할 목적으로 2010년 5월 21일에 문을 열었다.


평소 한국에서도 미술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일이 바빠서 요즘은 통 못 갔었는데, 스톡홀름에서는 나만의 시간이 생기다 보니 전시도 마음껏 볼 수 있어서 참 좋다. 한편으로는 한국에서도 이런 여유가 좀 생겼으면 싶다.


박물관 매표소에서 표을 구매하자 QR코드가 있는 티켓을 주었다.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출입구에 QR코드를 찍고 들어가는 방식인데, 스톡홀름은 무인으로 운영되는 것이 참 많다고 느껴졌다. 그만큼 인건비가 비싼 탓이겠지만 무인화가 되었다고 해서 그다지 차가운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무인화가 된 곳들에는 언제난 직원들이 상주하고 그들은 따뜻한 미소로 사람들을 맞이해준다.




제일 인상 깊었던 전시는 현재 지구에 사는 원주민들을 보여주는 전시였는데 연출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멋진 사진들이 많았다. 자세히 알 순 없지만 그들의 표정에서 보이는 감정들이 어느정도 와닿았다. 부족들마다 의상이나 장식, 무기가 다 달랐다. 지금 21세기에도 아시아부터 아프리카까지 수많은 원주민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내가 사는 환경과는 무척이나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들은 행복할까? 자신들만의 문명을 지켜내기 위해 얼마나 힘들까? 대단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 이 전시를 보는 우리들과 전시된 그들의 모습이 대조되어 기분이 이상했다.



포토그라피스카 3층에 있는 레스토랑 겸 카페인데, 통유리창 밖으로 건너편의 풍경이 보이는 멋진 공간이다. 자연 액자라고도 부르는 통유리창 덕분에 이 곳은 인기 만점이다. 앉을자리가 없어서 둘러보고 그냥 내려왔는데 다음에 오면 저 창가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싶다.



매표소 앞에는 수많은 사진 및 디자인 관련 서적들이 있어서 잠시 구경하기도 좋았다. 기념품으로 한 권 사고 싶었는데 스웨덴어로 쓰여있어서 좀 무리인 것 같아 내려놓았다. 하지만 역시 살까 말까 할 때에는 사야 하는 것 같다. 돌아보면 후회하니 말이다.


다시 슬루센 역으로 돌아가 지하철을 타고 ‘Radmansgatan’ 역으로 갔다. 어제 너무나도 먹고 싶었지만 일요일이라 모두 문을 닫아서 먹지 못했던 한국인의 소울푸드를 먹기 위해 찾아온 곳. 이름하야 ‘Kimchi’! 스톡홀름의 한국 식당 중에 굳이 이 곳으로 온 이유는 김치찌개가 맛있다는 평가 때문이었다. 자극적인 맵고 칼칼한 맛은 상상만 해도 침이 고인다.


가게에 들어가니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장님과 직원이 있었고 손님들은 대부분 유럽인들이었다. 메뉴판을 보고 사장님과 눈이 마주쳤는데 그가 나에게 영어로 물었고 나도 영어로 대답했다. 내가 한국인처럼 안 보이나? 싶기도 했지만 스웨덴은 한국인 입양률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았던 나라이기도해서 이해가 되었다. 그가 한국어를 못 하거나 내가 못 할 것 같거나 그랬겠지. 설레는 마음으로 음식을 기다리는데 직원과 그가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이 들렸다. 타국에서 듣는 한국어는 정말로 반갑다.



김치레스토랑의 김치찌개 (195크로나)


내가 주문한 김치찌개가 나왔다. 무려 2만 5천 원짜리 김치찌개다. 공깃밥과 함께 나왔지만 반찬은 한 개도 없다. 이 곳에서는 반찬을 먹으려면 추가해서 돈을 내야 한다. 한국 식당이 얼마나 푸짐한지 깨달을 수 있다. 비주얼은 제법 그럴듯한 스웨덴에서 먹는 첫 한식, 김치찌개. 수저로 국물을 떠서 호호 불어 입에 넣었다. 기름기가 있는 달달한 맛의 국물이었다. 물론 매콤함도 적당히 느껴져서 위장이 반가워할 맛이었다. 두부와 김치를 건져 밥에 얹었다. 비바람 부는 추운 날씨에 스톡홀름에서 김치찌개를 먹는 일은 나에게 잊지 못할 낭만적인 기억이다. 옆에 앉은 유럽인들은 낙지볶음 덮밥을 먹고 있는데 젓가락으로 밥을 떠먹고 있었다. 수저로 편하게 먹으면 되는 것을 아무고 알려주지 않았는지 빼빼 마른 젓가락 사이로 밥풀들이 도망쳤다. 밥을 먹고 있는 도중 한국인 몇 명이 가게로 들어왔고 아는 사람인양 반가웠다. 이토록 스톡홀름에서 한국인을 보는 일은 드물었다. 겨울이라서 더 그런 걸 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속이 든든한 식사를 해서 얼굴이 부드럽게 펴진 느낌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갔다. 버스 정류장이 여러 개라 방향이 헷갈려 두리번거리다가 어느 건물이 눈에 띄었다.



구글맵을 보니 눈에 띈 주황색의 건물은 바로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이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건축물 중 하나인데 ‘군나르 아스플룬드’의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으로 기능적이면서도 모던한 것이 특징이다. 뛰어난 건축과 인테리어로 워낙 유명해서 관광객들도 많이 들러보는 장소이다. 잠시 둘러보고 가기로 했다.



사방이 책으로 가득한 원통형 디자인을 실제로 마주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빽빽하게 꽂힌 책들을 허 계단으로 올라갈수록 기분이 묘했다. 스웨덴어를 읽을 수 없어서 제목을 알 수 조차 없었지만 마음에 드는 색을 가진 책을 한 권 집어 책장을 넘겨보았다. 이 곳에는 오래되거나 오래되지 않은 다양한 책들이 있고 층마다 혹은 간간히 분류되어있다. 맨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반대편 쪽도 둘러보고 나서 이 공간이 얼마나 멋진 곳인지 깨달았다. 나는 평소에 어떤 물건을 색상 별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 도서관에서는 그저 주제로만 분류되어 갖가지의 색상과 크기가 뒤섞인 책들이 빽빽이 꽂혀있는 모습임에도 오히려 예술 같이 보였다. 영어나 스웨덴어를 몰라도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한 권 꺼내어 번역해가며 읽으면 참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도서관 내에는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조용히 걸어 나왔다. 위대한 건축물을 방문하는 것이 나에게는 어쩌면 평생 동안 한번뿐일 수도 있는 특별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은 정말 재미있다. 나에게 평범한 일상도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일이 될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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