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스톡홀름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한가로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날이 되었다. 그동안 일주일이 굉장히 여유로운 시간이라고 느껴지는 바람에 난 어느 때보다 천천히 느슨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이 다가오자 경솔한 생각이었음을 깨닫고 부랴부랴 가고 싶던 곳과 먹고 싶은 것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체력이 떨어진 채로 온 여행이라 저녁 6시만 되면 피곤이 온몸을 지배하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며 이끌고야 말았었다. ‘힘들어도 조금 더 견뎌볼걸, 그 시간을 소중히 사용할걸.’하는 뒤늦은 후회는 소용없었다. 이미 지나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으니 스스로를 꾸짖기보다는 이 완벽하지 않은 여행은 다음을 위함이라는 문장을 새겨보았다.
그리고 스톡홀름에서 마지막 식사를 하기 위해 선택한 곳으로 갔다.
비 내리는 오후의 거리는 어둑하지 않고 운치 있었다. 처음 가보는 길을 익숙한 듯 걸으며 이 곳에 꽤 적응한 나를 발견하고 이내 곧 마녀의 모자가 그려진 간판을 발견했다.
커다란 화덕이 보이는 작은 내부의 피자 가게는 이른 저녁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피자의 종류가 굉장히 많아서 뭘 먹어야 할지 메뉴를 찬찬히 읽다가 순간 ‘KIMCHI’가 보여서 놀랐다. 스웨덴에서 김치가 들어가는 피자라니! 심지어 불고기도 들어가는 피자였다. 괜스레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간단한 피자가 먹고 싶어 마르게리따를 주문하고 가게 주인의 추천으로 무알콜 진저 맥주도 한 잔 시켰다. 그리고 맞은편 가게가 훤히 보이는 창가에 앉았다.
어느 정도 기다리자 진저 맥주가 나오고 잔에 따라 한 모금 마신 나는 처음 맛보는 맛에 흠뻑 빠져버렸다. 솔직히 진저비어라는 말을 듣고는 꽤나 맛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나 매력 있는 맛일 줄이야! 그냥 술술 들어갔다. 알코올이 없다니 아쉬울 정도였다.
곧 피자가 나왔는데 귀엽게도 셀프로 잘라먹을 수 있도록 피자 커터도 함께 주어졌다. 화덕에 잘 구워진 피자는 쫄깃하고 맛있었다. 비 오는 날 창가에서의 피맥은 상상외로 운치 있었다. 그렇게 분위기를 즐기며 피자를 먹고 있는데 어디서 누군가가 자꾸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몇 없는데 이상하다 싶던 순간, 맞은편 건물의 창가에 누군가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항상 나처럼 창가에 앉아 피자를 먹는 사람들을 구경할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그 정체는 바로 새까만 턱시도를 입은 고양이.
만족스러웠던 마지막 식사를 마치고 다시 호텔로 돌아가는 길, 지하철역 입구를 오갈 때마다 눈에 띄던 한 가구 숍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빈티지 가구와 조명을 판매하는 이 곳은 어떤 할아버지가 혼자 지키고 계시는데 내가 들어가서 구경하는 데에도 쳐다보지도 않으셨다. 덕분에 자유롭게 물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만져보기도 했다. 테이블 조명이 몇 개 눈에 띄어서 요리조리 살펴보고 가격표를 훑어봤다. 예상보다 가격대도 착해서 한국으로 가져가고 싶은 욕심이 훅 솟아났다. 이 충동적인 소비를 누군가 부추겨줬으면 하는 심정에 남자 친구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보여주었다. 그 또한 북유럽 조명을 좋아하기에 긍정적인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거 살까?”하는 나의 물음에 그는 한국까지 가져올 수 있겠냐며 되물었다. 그래서 조명을 들어보니 도저히 가져가기 힘든 무게여서 아쉽게도 포기하였다. 이미 캐리어는 쇼핑한 옷들로 꽉 차 버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 숍을 첫날 왔다면 아마 한국까지 배달해줄 택배를 알아봤을지도 모른다. 곧 공항으로 가야 해서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밖으로 나왔다.
호텔로 돌아와 맡겨둔 캐리어와 배낭 짐을 찾고 첫날 공항버스를 타고 와서 내렸던 Hornstull 역으로 갔다. 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처음 탔는데, 굉장히 놀랐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엘리베이터처럼 수직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대각선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약간 오줌 지린내가 났다!
버스정류장일 것이라고 예상한 곳은 정류장이 아니었다. 구글맵이 정확한 정류장 위치를 알려주지 못했다. 바깥에는 비가 쏟아져내려 정신이 없었다. 당황한 나는 우선 다시 역 입구로 들어왔다. 별 수 없이 지나가던 여자를 붙잡고 공항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의 위치를 물어보았다. 그러자 고맙게도 그 여자는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었고 나는 배낭과 보조가방을 메고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무사히 버스정류장으로 찾아왔다. 정류장에는 안심되게도 공항버스인 Flygbuss 시간표도 붙어있었다. 버스 티켓은 아침에 미리 어플로 구매해놓아서 여유가 있었다.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가 도착 시간이 다 되어 일어났지만 도착 시간이 지나도 오지를 않았다. 불안해진 나는 목이 빠져라 버스가 오는 방향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몇 분이 지나자 마침내 내가 탈 공항버스가 저 멀리 보였다. 아무래도 비가 와서 차가 밀린 모양이다.
도착한 버스가 정차하고 짐칸이 열렸다. 짐을 실은 후 QR코드를 카드기에 찍고 탑승했다. 좌석에 앉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똥줄이 타들어간다는 말이 아주 적합한 순간이었다. 해가 저무는 스톡홀름을 창 밖 너머로 흘려보내며 일주일간 참 여유롭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노라고 생각했다.
공항까지 가는 길 내내 벌써 그 시간들이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