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에서 헬싱키로!

by 수니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은 인천공항과 다르게 한산한 분위기였는데 체크인 카운터에 수속 중인 사람이 딸랑 한 명뿐이길래 잘못 찾아왔나 싶었다. 앞사람이 끝나고 내 순서가 되었는데 캐리어를 보더니 체크인 직원이 나에게 어디에서 받을 거냐고 물었다. 스톡홀름부터 인천까지 직항이 없어서 헬싱키를 경유해야 하는 일정이라 캐리어를 헬싱키에서 받을 건지, 최종 목적지인 인천에서 받을 건지를 결정해야 했다. 난 이 사실을 미리 알고 필요한 짐은 배낭에 넣어두었다. 캐리어는 인천에서 받기로 했다. 경유하는 일정이라 캐리어를 분실하면 어쩌나 살짝 걱정도 되었지만 아주 드문 사고일 테니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의 라운지 중에서 내가 갈 수 있는 곳이 있는지 검색해보았다. 라운지 키 입장이 가능한 신용카드를 가져왔기 때문에 써먹고 싶었다. 늦은 저녁 시간이라 운영되는 곳이 몇 없었다. 찾아보니 다행히 딱 한 군데 입장이 가능한 곳이 있었다. 스낵과 음료만 취급하는 시간이라 좀 아쉬웠지만 공항에서는 라운지만큼 편히 쉬어갈 만한 곳이 없다. 비행시간까지 남은 시간 동안 안락한 소파에 앉아 한가로이 노트북이나 두드렸다. 노트북은 일러스트 작업을 하려고 가져왔는데 사실 여행 중엔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저녁마다 예능 프로 보는 데에 유용하게 썼다. 여행에 쓸데없는 일거리와 짐을 가져오지 말자고 다짐했다.


알란다 공항에서 헬싱키 반타 공항까지는 약 한 시간이 걸린다. 반타 공항에서 내려 와이파이를 잡고 짐을 보관할 수 있는 락커 위치를 검색했다. 하지만 이 공항에 왔던 한국인들 중 락커를 이용한 사람이 너무 없어서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헬싱키 공항 홈페이지에서 'Locker'를 검색해보니 위치가 나와있었다. 어떤 버거 패스트푸드점 옆에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락커가 보였다. 그런데 락커는 코인으로 여닫는 것이라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북유럽은 노캐쉬를 지양하는 곳이니 혹시 카드가 되지 않을까 싶어 우선 짐을 넣고 보니 PINCODE라고 써져있는 것이 보였다. 핀코드라면 카드 사용에 필요한 단어가 아닌가? 정말 카드결제가 되었다. 이렇게 마지막 날까지 환전을 한 장도 하지 않고 여행 중인 것이 감격스러웠다.



헬싱키 반타 공항의 락커


필요한 물품은 배낭에 있어서 노트북과 불필요한 짐이 담긴 가방을 락커에 보관하고 아까 예약해둔 호스텔로 가는 길을 구글맵으로 검색했다. 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가면 되길래 우선 버스 정류장을 찾아 나섰다. 어느 표지판이든 영어와 핀란드어, 스웨덴어 이렇게 3가지 언어가 함께 써져있어서 정말 알아보기 힘들었다. 겨우 버스 정류장을 찾아 나왔는데 스웨덴과 차원이 다르게 추운 날씨에 온몸이 얼어붙었다. 덜덜 떨면서 버스 티켓 자판기에서 'Day Ticket'을 구매했다. 어떤 여자가 다가오더니 티켓 구매 방법을 물어보길래 내가 한 대로 알려주었다.



헬싱키 반타 공항의 버스 정류장, 티켓 자판기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을 알려주는 전광판에서 아직 몇 분 남았길래 다시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유심칩을 따로 구매하지 않고 와이파이에 의존하며 다닐 계획이라 구글맵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호스텔까지 가는 길을 캡처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유심칩을 사지 않은 것이 이렇게 무모한 계획인지 몰랐다.


내가 탈 버스가 도착해서 반가운 마음에 버스 앞으로 가려는데 순간 캐리어를 끌고 나타난 무리가 버스 앞에 섰다. 족히 스무 명은 되어 보이는 굉장히 시끄러운 젊은이들은 나와 같은 버스를 탔다. 나보다 먼저 올라타서 많은 자리를 차지했고 나는 남은 자리에 껴 앉았다. 에어 팟을 귀에 꼽고 소음에 묻혀가는 노래를 들으며 어두컴컴한 바깥 풍경을 보려 애썼다. 다행히 버스에서 와이파이가 잡혀서 내려야 하는 정류장을 지나치지 않기 위해 구글맵으로 중간중간 확인할 수 있었다. 가는 내내 시끄럽게 떠드는 무리들 때문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어느새 내릴 정류장이 다와 가서 배낭을 매려는 순간 그 시끄럽던 무리들이 다들 자신의 캐리어를 잡고 일어서는 것이다. 설마 내가 예약한 호스텔에 묵는 것은 아니겠지... 하고 잠시 생각하긴 했으나 절대 아니길 바랐는데.

절망스럽게도 그들은 나와 함께 내렸다. 호스텔 가는 길 내내 난 그들보다 빨리 체크인하고 싶은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갔지만 나보다 먼저 도착한 무리의 일행이 먼저 체크인을 하는 바람에 난 가장 꼴찌로 체크인을 하게 되었다. 거의 12시가 다 된 시간이라 굉장히 피곤하고 예민했다. 소파에 털썩 앉아 그들이 제발 나와 가장 먼 곳에서 묵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내 방은 그 무리와 다른 층이었다. 4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었는데 오락 시설이 있는 커다란 거실이 보였는데 큰 소파에 남자 무리들이 잔뜩 앉아서 술을 마시며 떠들고 있었다. 그들은 동양인을 처음 보듯이 날 신기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애써 웃어 보이며 내가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더니 모두 잠에 들었는지 불이 다 꺼져있었다. 내 침대는 문 바로 앞 아래층이었다. 휴대폰 플래시를 비춰 가방 안에 있는 세면도구를 꺼내었다. 누군가의 숙면을 방해하기 싫어 최대한 조용히 나왔다. 거실을 가로질러 화장실이 있었다. 빠르게 양치와 세수를 하고 내 침대로 와 누웠다. 가방을 그냥 발 밑에 두고 휴대폰은 머리맡에 두고 눈을 감았다. 방 바깥은 여전히 소란스러웠다.


그동안 혼자 여행할 때나 짧게 자야 할 때 종종 호스텔을 이용하곤 했는데 이렇게 최악의 호스텔은 처음이었다.

잠만 잘거라 저렴한 호스텔을 선택했는데 10 베드룸인 호스텔도 처음이지만 이렇게 규칙 없는 시끄러운 곳은 정말 처음이었다. 게다가 호스텔 치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 아니었다. 10 베드룸에 4만 원 정도를 주었는데 헬싱키에서는 이게 가장 저렴한 가격이다. 그냥 저렴한 호텔로 갈 것을 너무나도 후회했다. 체크인할 때 왜 귀마개를 주나 했는데 이렇게 시끄러운 환경이라서 주는 것이었나 보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어느새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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