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에 맞춰둔 알람이 울려서 눈이 번뜩 떠졌다. 씻고 조식을 먹으러 2층으로 내려갔는데 이렇게 볼품없는 조식은 또 처음 봤다. 빵조각과 잼, 치즈, 햄, 우유 정도가 놓인 기다란 테이블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순서도 없이 마구 집어가 난장판이었다. 대충 로비 소파에 앉아 빵을 집어먹고 짐을 챙겨 나왔다.
나오기 전에 구글맵으로 찾아놓은 경로대로 가기 위해 근처 트램 정류장까지 걸었다. 흐린 하늘에서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난 멍청하게도 스톡홀름에서 샀던 접이식 우산을 어제 공항 락커룸 안에 넣어두고 왔다. 비가 그치거나 이대로 부슬거리는 정도이길 바랄 뿐이었다.
헬싱키는 주변에 보이는 건물이나 도로가 스톡홀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좀 더 미니멀하다고 해야 할까? 하필 비가 오는 바람에 차가운 이미지로 보였다.
트램만 봐도 확실히 스톡홀름에 비해 미니멀한 느낌이다. 내부의 의자나 손잡이 디자인 또한 그렇다.
스톡홀름에서 지내다 와서 그런지 모든 것을 비교하며 보게 되었다. 그 점이 사실 재미있기도 하다. 스웨덴어는 듣기에 그다지 거슬린다거나 그런 적이 없었는데, 트램에서 한 아주머니가 통화하는 소리에 깜짝 놀랐다. 우선 목소리가 컸고, 처음 제대로 듣는 핀란드어는 굉장히 깨랑깨랑했다. 내가 듣기에는 너무 어려워서 약간 외계어를 듣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북유럽인들이 대게 영어를 잘하는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트램에서 내려서 배를 타는 선착장으로 갔다. 수오멘린나 요새에 가려면 배를 타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약 15분이면 도착하는 짧은 일정이라 당일치기에도 둘러보기 가능하다.
수오멘린나 요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1748년 핀란드를 지배하고 있던 스웨덴이 팽창주의 정책에 맞서기 위해 만든 요새로 알려져 있다. 헬싱키를 찾는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 중 하나이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빗줄기가 더더욱 굵어졌다. 게다가 바람까지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머플러를 머리에 두르고 걸어 나갔다. 추워서 이가 덜덜 떨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마지막 날에 이러기냐고!
너무나도 예쁜 색감의 건물 입구로 들어가기 전 찍은 사진과, 들어와서 찍은 사진인데 상당히 마음에 든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사람이 정말 없었다. 혼자 낯선 길을 꿋꿋하게 걸었다.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그냥 발 닿는 대로 걸었다. 그러다 결국 비바람에 지고 말았다. 어떤 다리에 다다라서야 별 수 없이 다시 선착장 근처로 돌아왔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지만 포기할 만큼 춥고 시렸다.
결국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배를 기다리며 안내소에 들어가 비바람을 피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안내원이 출근을 안 한 건지 모르지만 텅 비어있었다. 곧 두 명의 여자가 안내소로 들어왔다. 나처럼 배를 기다리는 건지 모르지만 그녀들은 화장실을 사용하고 내 옆에 앉아 잡담을 나눴다. 그러다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여행을 왔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배를 기다리는지.
질문에 천천히 대답을 해주고는 오늘 정말 춥다고 덧붙였다.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는 헬싱키에 산다고 했다.
잠시 적막이 흐르고 배가 왔는지 확인하러 문 앞으로 갔다. 다행히 금방 배가 돌아와서 사람들이 내리고 있었다. 짐을 챙겨 선착장으로 갔다.
지하철처럼 교통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방식이 참 마음에 들었다. 뱃멀미가 없는 나는 이 섬에 올 때처럼 창가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았다. 비바람이 거센 탓에 바다가 심하게 출렁거렸다.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누구나 눈이 마주치면 빙긋 웃어주었다.
아까 전에 트램에서 내린 곳이 바로 헬싱키 루터란 대성당 앞이었는데 돌아오자마자 둘러보기로 했다. 궁전같이 예쁘고 웅장한 건축물이다. 올라가는 계단은 날씨가 좋으면 누구나 앉아서 쉬기 좋아 보였다. 바로 앞이 광장인데 비가 오는 통에 텅 비어있었다.
성당의 내부는 정말 예뻤다. 난 비종교인이지만 해외의 유명한 사찰이나 교회, 성당은 종종 들러본다. 종교 건축을 보며 그 나라만의 종교 문화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 또한 관광의 재미 중 하나인 것 같다. 비수기인 겨울인 데다 비바람 부는 날씨라 사람이 없어 편하게 구석구석을 관찰할 수 있었다. 날씨 운이 굉장히 나쁘다고 생각했는데 나름 장점도 발견해서 다행이었다.
그리고 헬싱키 당일치기 관광에서 내가 제일 오만했던 점은 유심칩 구매를 하지 않은 것이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지만 단 하루만 와이파이에 의존하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유심도 없이 시내로 덜렁 와버린 것이었다. 그 덕에 구글맵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무료 와이파이가 되는 곳을 찾을 때만 다음 경로로 이동하는 길을 파악할 수 있었다.
거리가 꽤 먼 카페를 찾아가려고 했다가 궂은 날씨와 유심 덕에 포기를 하고 다음 경로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