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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니 Jun 07. 2020

이스탄불 걷기

* 2014년 11월 터키 여행 시 쓴 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됩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화장실에 가려고 보니 화장실 문 옆에 순서대로 순번을 적어 사용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적혀있었다. 이미 1번부터 3번까지 적혀있었고 나는 4번에 내 이름을 적었다. 차례를 기다리며 다시 침대에 누웠다.


내 차례가 되어 씻고 난 뒤 조식을 먹기 위해 기다렸다. 원래 주인인 남자 사장님께서 잠시 한국에 볼일을 보러 가셔서 대신 주인 언니가 조식을 준비해주셨다. 그냥 언니라고 부르라고 하셨다.


조식은 간단한 뷔페 스타일로 차려졌다. 햄, 치즈, 버터, 야채, 과일들, 빵, 잼 등등.

접시에 고루 담아 테이블에 앉았다. 처음 보는 여러 여행자들과 인사를 하고 함께 먹었다.

빵에 크랜베리 잼과 생크림을 발라 먹고 요거트에 꿀을 넣어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마무리로 사과, 오렌지, 청포도까지 클리어! 배가 많이 고팠어서 그런지 기억에 오래 남도록 맛있었다.


설거지는 다 같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한 명이 몰아서 하기로 정해졌다.

여기서 제일 어린 나는 그들의 말에 그냥 끄덕였다.


가위 바위 보!


우리는 모두 주먹을 냈는데 A 언니가 혼자 가위를 냈다. 한 판에 끝이 났다.

A 언니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모두들 나갈 준비를 마치고 주인 언니가 이스탄불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고 해서 모두 듣고 나가기로 했다. 이스탄불의 역사적 배경부터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숨겨진 명소들, 유명 관광지에 대한 솔직한 개인 의견 등등. 몇 년째 이스탄불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여행객인 우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여럿 알려주었다.


사실 여행 일정을 유명 관광지 위주로 꼼꼼히 계획해왔는데 주인 언니의 설명을 듣고 나니 생각이 좀 바뀌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함께 이 숙소에서 묵는 사람들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난 이스탄불에서 묵는 동안 언니 오빠들과 함께 관광하기로 했다.


건물을 나서 밝아진 이스탄불에 처음 발을 내디뎠다. 밝은 햇살이 비추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골목길에 세워진 오래된 클래식 자동차들, 우수수 떨어진 나뭇잎들, 처음 실제로 보는 유럽식 건물들은 내 발걸음을 더디게 만들었다. 걸음을 멈춰 카메라로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을 기록했다. 이국적인 풍경에 가슴에 설렜다.


탁심 광장에 도착하자마자 환전소로 갔다. 환전을 마치고 뒤를 돌자마자 어린아이들이 기다렸단 듯이 손바닥을 내민다. "원 리라! 원 리라 플리즈!" 난 뭣도 모르고 한 아이에게 동전을 하나 집어서 줬다. 근데 한국 동전이 섞여 있었는지 50원짜리를 준 것이었다. 그 아이는 "노! 원 리라!"라고 외치며 따라왔다. 무시하고 걸었다.

언니 오빠들이 절대 동전을 주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주었다.


우린 탁심 광장에서 이스티클랄 거리로 나섰다. 이스티클랄의 첫인상은 이스탄불의 명동이라고 해야 할까?

여러 숍들이 즐비해 쇼핑하기 좋은 거리다. 가다가 랄랄라 카페에서 소개된 맛집이 있어 찾아갔다.

뵤렉이라는 음식을 파는 곳인데, 패스츄리 같은 반죽 안에 치즈나 고기, 감자 같은 속 재료를 넣고 구운 음식이다. 우리는 치즈, 감자, 고기 맛으로 한 접시씩 주문을 했는데 감자 맛은 솔드 아웃이라고 해서 대신 스위트 어쩌고 하는 맛으로 바꿨다. 정확히 뭐라고 하는지 못 들어서 무슨 맛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스위트 어쩌고 맛은 그냥 밀가루 덜 익은 이상한 맛이었다. 주인아저씨가 무슨 파우더를 줘서 뿌려먹어 보니 슈가 파우더였다. 어쩐지 주변 테이블 사람들이 모두 파우더를 엄청나게 뿌리고 있었다. 우리도 마약 가루인 듯 엄청나게 뿌려먹었다.

현지 맛집인 듯 가게 안이 굉장히 바빴다. 레모네이드도 한 잔 시켰는데 엄청나게 싱거운 밍밍한 맛이었다.


이스티클랄 거리를 쭉 걸어 내려오다 어떤 바자르(시장)에 잠시 들어가 구경하고, 악기 골목을 지나 갈라타 다리가 보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마포대교 같은 다리인데, 이스탄불에도 한강과 비슷한 큰 강이 지나간다.

갈라타 다리를 오르기 전에 석류 주스를 파는 상점이 보여 한 잔씩 마셔보기로 했다. 주문하자 바로 석류를 짜서 담아준다. 진짜 생 석류만 들어가서 진짜 셨다. 혓바닥이 오그라들정도로 시고 끝 맛은 써서 한 두 모금 마시고 다 버렸다.


갈라타 다리를 걷는데 낚시꾼들이 굉장히 많아서 놀랐다. 지나가며 낚시꾼들의 통발을 보니 물고기가 잘 잡히는 모양이다. 다리 중간에는 빵을 잔뜩 쌓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판매하는 빵 아저씨도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데도 그대로 내놓고 파신다.


걷다가 지쳐서 어떤 카페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자리에 앉아 주문하니 직원이 견과류가 올라간 빈대떡 죽 같은 것을 주었다. 주문하지도 않은 것을 주어서 손도 대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무료로 주는 것이었다. 화장실이 무료여서 이용하고 나왔다.


이집션 바자르 옆의 도매시장도 둘러보고 슐레이마니예 자미로 갔다.

슐레이마니예 자미는 이스탄불에서 두 번째로 큰 이슬람 사원이라고 한다.

내부를 구경하려면 무료로 배치된 히잡을 둘러야 한다. 사원답게 엄숙한 공간이었다.

발을 씻고 정성스레 기도하는 남자들이 보였다. 여자들은 바깥쪽에 따로 기도하는 공간이 있었다.


우린 자미에서 나와 다시 갈라타 다리를 넘어와 고등어 케밥을 먹으러 카라쾨이 수산시장으로 갔다.

갈라타 다리에서 물고기를 잡아 이 수산시장에서 파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강 앞의 수산시장이라니 굉장히 신선해 보였다.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찔렀지만 활기찬 풍경은 정말 재밌었다. 한강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 아닌가.


시장을 쭉 지나가면 고등어 케밥을 파는 상점이 꽤 많은데 고등어 케밥에서도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유명인이 따로 있었다. 바로 예민 아저씨라는 분인데, 우리는 그분이 계시다는 곳으로 찾아갔다. 예민 아저씨가 있다는 자리로 가보니 사진으로 본 분과 다른 분이 계셨다. 그분은 한글로 '환영'이라고 써진 카드를 보여주며 여기가 예민 아저씨네가 맞다고 하셨다. 자신은 예민 아저씨의 브라덜이라고 소개했다. 예민 아저씨네 고등어 케밥은 빵 종류를 두 가지로 고를 수 있다. 서브웨이를 먹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쫄깃한 플랫 브레드, 부드러운 화이트.

그리고 예민 아저씨네가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특별한 이유는 바로 매운맛! 고추를 넣어주는 강렬한 매운맛이 비법이었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나는 맵지 않은 맛으로 주문했다. 가시는 어떻게 하려나 궁금했는데 제조하는 과정을 보니 고등어의 모든 가시를 한 번에 발라버렸다. 브라덜은 완전 프로였다.


사실 고등어 케밥이라는 단어를 보고 처음엔 '엥? 고등어와 케밥이라니. 좀 별로일 것 같은 조합인데?'라고 생각했다. 생선 비린내를 싫어하기도 하고 빵에 생선 조합은 처음이기도 했다. 반신반의하며 한 입 먹었다. 그리고 또 바로 먹었다. 예상외로 정말 고소하니 맛있어서 모두들 놀랐다. 내일 또 먹고 싶다고 바로 생각이 들었다.


다들 너무 맛있었다며 신이 나서 다시 탁심 방향으로 걸었다. 그리고 이스티클랄 거리 맨 아래쪽에서 튀넬(Tunel)이라는 교통수단을 처음 탔다. 한 정거장 정도 가는 작은 트램인데 너무 귀여웠다. 엄청 천천히 가서 사실 걷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였다. 트램이 천천히 이스티클랄 거리를 지나며 우리는 반짝거리는 상점들을 눈 구경했다. 탁심에 도착하고 트램에서 내려 다시 숙소로 걸어갔다. 저녁에는 엄청 깜깜해서 아까 걸었던 그 골목이 달라 보였다. 숙소에 가면서 작은 마트에 들러 맥주와 간식거리를 샀다. 숙소에 도착해서 맥주를 마시며 다 같이 오늘 하루에 대해 대화했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모두들 원래 알던 사이처럼 친해졌다.


이 날이 이스탄불에서 마지막 날인 사람들도 있었고, 내일까지인 사람도, 모레까지인 사람도 있다. 모두들 일정은 달랐지만 짧은 만남이라도 기억에 남았다.


이스티클랄 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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