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은 정말이지 건너뛰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짧게 느껴졌다.
햇살이 좀 뜨겁게 느껴질 즈음 거센 빗방울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곤 했다. 장마와 기상이변이 겹쳐 국내 이곳저곳이 피해를 입는 사태가 발생했다.
안타깝게도 큰 맘먹고 계획해둔 늦은 여름휴가의 휴가지도 집중호우에 큰 피해를 입었다. 숙소 예약을 취소하자 잠시 실망감이 밀려왔지만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은 곳이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커졌다. 무사히 복구되는 것이 급선무였다.
여행을 좋아하던 마음이 좀 무뎌지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의 연속으로 계속 포기하게 되면서 이제 여행은 정말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는 나아질 상황을 기대하기도 하지만 막연한 기다림에는 기대가 나약하다.
모든 것을 쓸어갈 것처럼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나니 그동안 못 받은 비타민을 한 번에 몰아주는 듯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었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해는 바다로 당장 달려가고 싶게 만들었다.
매일 일하고 집에 가고 반복하다 보니 나 대신 놀러 다니는 사람들의 사진과 영상을 보며 대리 만족했다.
이래서 유튜브를 보는구나 깨닫고 영상을 보는 재미에 빠졌다.
출근길에 뜨거운 해를 몇 번 만나보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찬 바람이 옷깃을 스쳐갔다.
마스크를 끼고 다녀서 맨 공기를 들이마신 지 오래되었다. 잠시 공원에서 걷다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마스크를 벗고 맨 공기를 힘껏 들이마셨다.
아. 가을 냄새가 난다.
여름은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가을이 와버렸다. 나뭇잎들이 어느덧 가을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다.
매년 가을은 사계절 중에서 유독 가장 짧게 느껴진다. 나뭇잎이 물들고 톡 떨어져 바닥에서 바스락 거리며 밟히는 소리가 들리면 어느새 겨울이 다가온다.
짧아서 더 애틋하고 그리운 느낌이 드는 걸까.
몰랐는데 난 가을을 좋아하고 있었다.
공기의 냄새, 물드는 나뭇잎, 은은한 햇살.
그리고 소중한 사람이 선물해준 스카프를 매는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