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훈련과 실존을 통해 사랑을 배울 수 있다.
《사랑의 기술》. 제목만 봤을 때는 사랑에 관한 조언이나 특정한 기술을 알려주는 듯 하지만, 이 책은 연애의 기술을 다룬 가벼운 지침서가 아니다. '사랑'을 깊게 통찰하며 '나'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철학책이다. 정신분석학자가 쓴 고전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책 난이도가 상당히 높고 다소 시대착오적인 부분도 있다.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을 땐, 리뷰나 서평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심플한 목차를 보며 왠지 모를 섬찟함을 느꼈다. 내용도 목차처럼 간단하면 좋을 텐데.
1. 사랑은 기술인가?
2. 사랑의 이론
3. 현대 서양 사회에서 사랑의 붕괴
4. 사랑의 실천
1장에서는 사랑이 '감정'이 아닌 '기술'임을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랑은 누구나 겪는 '즐거운 감정'이 아니라, 지식과 노력이 필요한 '기술'이다. 우리가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실패하는 이유가, 사랑의 기술을 배우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 '하는' 법보다는, 사랑 '받는' 법에 대해서 생각해왔다.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지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는 권력을 장악하고, 돈을 모으고, 몸을 가꾸고, 치장을 하는 등, 사회가 지향하는 매력을 갖추려 노력한다. 하지만 '사랑받기'는 한계가 있다. 사랑을 받기만 하려는 사람은 상대방의 취향을 알아내고, 그에 맞추는 데 급급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못한다.
인간의 영혼의 비밀, 곧 '인간'의 가장 내면적인 핵심을 알아내는 또 하나의 방법 중엔 '사랑'이 있다. 하지만 지배하는 방법으로는 '당신'을 알고 모든 사람을 알 수 있지만,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내가 한 일은 그를 파괴한 것뿐. 그러나 사랑은 지식에 이르는 단 하나의 길이며, 사랑은 합일의 행위를 통해 나의 물음에 대답한다. 사랑하는, 곧 나 자신을 주는 행위에서, 다른 사람에게 침투하는 행위에서 나는 나 자신을 찾아내고 나 자신을 발견하고, 나는 우리 두 사람을 발견하고 인간을 발견한다. (p.50)
예를 들면, 가학성 음란증은 어느 한쪽을 '지배'해서 '사랑'을 얻기에 피지배자를 알 순 있다. 하지만 정작 상대방에게 자신을 주지 않기 때문에, 그는 '나'를 알지 못한다. 즉 어느 한쪽에 치우친 사랑은 미완된 개념이기에, '나' 자신을 알지 못한다는 한계를 갖는다. 결국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주고 싶은 노력'이다.
사랑의 기본은 '주는 것'이다. 모성애, 형제애, 부성애, 인류애 등 모두 같은 개념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소중한 것, 즉 자기 자신 속에 살아있는 것을 준다. 기쁨, 관심, 이해, 지식, 유머, 슬픔 등, 자신 속에 살아있는 모든 '표현'을 주는 것이다. 받으려고 주는 것이 아니다. 주는 이에게는 주는 것 자체가 절묘한 기쁨이다. 그것이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이다.
사랑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사랑하는 이에게 나 '자신'을 주기 위해서는, 결국 자기 자신을 이해해야 한다. '나'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자기가 어떤 것을 가장 아끼는 지를 알 수 있고, '주기'를 실천할 수 있다. 그래서 2장에서는 인간의 실존을 깊이 있게 다룬다.
나 자신의 자아에 대한 사랑은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다.
자신의 실존의 핵심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경험할 때 비로소 사랑은 가능하다.
3장에서는 '사회 구조'를 바탕으로 '사랑'을 분석한다. 즉 현대 문화에서의 사랑을 말하기 위해, 서양 문화의 사회 구조와 이로부터 발생한 정신이 사랑의 발달에 효과적인지를 확인한다.
저자는 자신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사랑을 뿌리 깊이 갈망하는 자들을 꾸짖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자기 자신을 상품으로 만들어야 하는 현대사회에서, 자아를 사랑할 여유가 과연 충분한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 '원칙'과 사랑의 '원칙'은 양립할 수 없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본 현대 사회는 복잡한 현상이다. 인정하더라도, '자본주의'는 그 자체가 상당한 불일치나 개인적 자유를 허용하는 복잡하고 끊임없이 변하는 구조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p.175)
드라마를 보면 현대 사회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주근깨 가득한 얼굴에 폭탄 머리였던 여주인공이, 화장을 하고 머리를 정돈한 상태로 등장하자 모두가 멍하니 쳐다본다. "요새 연애해?"라는 질문을 던진다거나, "꾸미니까 좀 좋아?"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그녀를 다른 부서에 떠넘기던 직장 상사는 주인공에게 나가지 말라며 애원한다. 남성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현대 사회는 우리 스스로를 상품으로 만들어야 함을 계속해서 강조한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외관은 상품의 구매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니까. 이렇듯 저자는 자본주의로 인해 발생한 정신이 오히려 불합리한 사랑의 형태를 만들 수 있음을 강조한다.
사랑의 본성을 분석하는 것은 오늘날 일반적으로 사랑이 결여되었다는 것을 밝혀내고, 이러한 결여 상태에 책임이 있는 사회적 조건을 비판하는 것이다. (p.177)
앞서 말했다시피, 사랑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연애에 관한 지침보다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정신을 집중하고, 이성·겸손·객관성을 발달시켜 자아도취(이기심이 아닌 자기애를 실천해야 한다)에 빠지지 않게 하고, 용기를 바탕으로 자신에 대한 신앙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책에 나와서 적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크게 와닿지 않았다.)
사랑을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보기보다는, 훈련과 인내, 습득이 필요한 하나의 '능력'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현대성'을 갖는다. 그의 사상과 이론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의 이론을 통해 '사랑', 더 나아가 '나'에 대해 생각할 계기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사랑을 했고, 사랑을 하고 있고, 사랑을 할 것이다. 사랑은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중요한 원동력이니까. 사랑은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끊임없는 훈련과 용기, 신념을 갖고 사랑의 기술을 익히고 실천한다면, 우리는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참된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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