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둔 의사가 마지막에 한 말

천재 의학자의 담백한 에세이, 《숨결이 바람 될 때》

by 수빈 Soobin
무엇이 삶을 의미 있게 하는가.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이 깊어진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있을까? 이 책을 덮으며 내가 결론지은 것은 '할 수 있다'이다. 단, 나는 우리가 죽음을 마주했을 때 비로소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인간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가? (...) 반성하지 않은 삶이 살 가치가 없다면, 제대로 살지 않은 삶은 뒤돌아볼 가치가 있을까?
-p.52~53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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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폴 칼라니티는 서른여섯 살의 젊은 나이로 삶을 마감한다. 그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것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그의 경력과 능력의 화려함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그는 최고의 의사로 손꼽히며 여러 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받았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그는 성공에 대한 야망을 접은 지 오래였다. 오히려 그는 죽는 날까지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에 맞서고자 했다. 자신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암 치료 중에 수술실로 복귀하기도 했고, 자신의 생명이 꺼져갈 때 또 다른 생명을 낳아 길러도 되는 가 하는 것들에 대해 끝없이 고민했다. 그는 치열하게 사색한 흔적을 글로 옮겨, 우리가 죽음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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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울었던 페이지를 아직도 기억한다. 반복되는 좌절과 희망 속에서 지칠 때쯤, 그는 문학의 힘을 빌려 다시 일어난다. 그에게 문학이 없었다면 그는 아픔을 어떻게 버텼을까. 그만큼 문학은 그에게 크나큰 존재 이유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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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나는 통증을 느끼며 깨어났고, 아침을 먹은 다음엔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에 대한 응답이 떠올랐다. 그건 내가 오래전 학부 시절 배웠던 사뮈엘 베케트의 구절이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 나는 침대에서 나와한 걸음 앞으로 내딛고는 그 구절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어, 그래도 계속 나아갈 거야(I can't go on, I'll go on). 내가 죽어가고 있더라도 실제로 죽기 전까지는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 p.179~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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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에세이 책은 잘 안 읽지만, 《숨결이 바람 될 때》는 에세이 책에 대한 편견을 '제대로' 깨준 책이다. 죽음을 이렇게도 생생하게, 자신만의 가치관과 철학을 기반으로 아름답게 말할 수 있다니. 그것을 멀리 떨어진 한국에서 활자로 읽을 수 있다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가슴 한쪽이 먹먹한 채 이 책을 덮었다. 특히 마지막 문단은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폴 칼라 티니, 그의 존재 이유 중 하나는 분명 케이디였다. 그의 따뜻한 목소리가 책 밖으로 들리는 것 같아 눈물이 절로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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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세상에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는지 설명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바라건대 네가 죽어가는 아빠의 나날을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줬음을 빼놓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아빠가 평생 느껴보지 못한 기쁨이었고, 그로 인해 아빠는 이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않고 만족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되었단다. 지금 이 순간, 그건 내게 정말로 엄청난 일이란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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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어떠한 확답을 주기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 자체가 미완성된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완성이기에 아름답다. 세상에 완벽한, 완성된 인생이 어디 있을까?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 우리가 그 아름다움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생과 사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인생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폴 칼라니티처럼.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그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 폴 칼라니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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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다룬 책들은 시중에 많이 나와 있다. 나 또한 죽음이라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예전에 자주 관련 도서를 찾아 읽어봤었다. 하지만 이 책은 의사이면서 환자인 모순적 상황을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한다. 어찌 보면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는 것이기에, 이 책은 저자의 용기가 낳은 최고의 연구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생생하면서도 아름다운 그의 문장과 깊은 정신세계는 독자인 나를 부끄럽게 하는 동시에 진지하게 자신을 고찰하도록 도와준다.


문학도에서 의학도로, 의사에서 환자로. 젊은 의사의 치열한 생애와 사색, 그리고 가슴 먹먹해지는 감동을 느껴보자. 삶과 죽음, 존재 의미에 대한 고찰을 원하는 분들께 강력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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