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을 읽다.
허망은 죽음의 의식이며 동시에 그 거부다. (p.14)
이방인은 얼핏 평범한 사무원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에 불과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심오한 철학이 담겨있다. 그렇기에 이 책을 읽는 독자분들은 이야기 뒤에 숨겨진 사상에 주의를 기울이면 좋겠다.
주인공 뫼르소는 평범한 사무원이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의 사망 전보가 날아오고, 그는 무덤덤하게 장례를 치른다. 그는 그날 마리라는 여자와 관계를 맺고, 어느 건달의 친구가 된다. 그러다 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아랍인 한 명을 죽여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그의 삶은 '허무'의 연속이다.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가장 인간적인 감정마저 그에게 통하지 않을 정도다. 그는 사형 선고 직전까지 무미건조하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아랍인을 죽여 재판을 받게 되고, 희망과 좌절의 반복, 끝없는 현세의 유혹에 지친 그는 마침내 자신을 폭발시킨다. 죽음의 턱 앞에서 주체성을 드러낸다. 일상의 맹목적 자동성에서 벗어나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드러낸다.
그러자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내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렸다. 나는 목청껏 소리를 질러 대기 시작하면서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으며, 기도 같은 것은 하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기쁨과 분노가 뒤섞인 설렘으로 내 마음속을 전부 그에게 털어놓았다.
그의 신념이란 모두 여자의 머리카락 하나의 가치도 없다. 그는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확신조차 없다. 그러나 나는 빈손인 것처럼 보이나 확신이 있다. 나 자신에 대해서, 모든 것에 대해서, 내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다가올 죽음에 대해서 신부보다 더 확신이 있다. 그렇다, 내게는 이것밖에 없다. 그러나 어쨌든 이 진리가 나를 붙잡고 있는 한 나도 이 진리를 붙잡고 있다. 나는 옳았고, 지금도 또 옳다. 그리고 영원히 옳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죽음이나 어머니의 사랑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의 하나님, 사람들이 선택하는 생활, 사람들이 골라잡는 숙명, 이런 것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 도대체 그는 이해를 할까? 이 사형수를, 그리고 내 장래의 끝에서부터......
(p.147-149)
그러자 그는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리고 왜 자신의 어머니가 생의 끝에서 생을 다시 시작하는 놀이를 했는지 깨닫는다.
그렇게도 죽음에 가까이 있었으면서도 어머니는 거기에서 해방된 자신을 느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려는 준비를 했었던 게 틀림없다. 아무도, 그 아무도 어머니에 대해서 눈물을 흘릴 권리가 없는 것이다.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갈 용의가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
즉, 죽음은 속세에서의 종말 이기도하므로 두려운 것이지만, 어쩌면 권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유로워진다는 해방감이기도 한 것이다.
이 구절을 읽고 나니 '죽음'이라는 것이 부정적이기보다는, '해방', '자유'와 같은 어떤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속세에 맞지 않은 행위와 사상(?)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나라면 너무나도 억울해 상소했을 테지만, 뫼르소는 상소하지 않았다. 재판까지만 해도 그 또한 죽음이 두려워 잠시 '희망'이라는 유혹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참수형이 확정되고, 형무소 부속 사제가 방문하면서 그는 억눌러왔던 감정을 폭발시킨다. 그와 동시에 권태롭고 무거웠던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또 다른 세계로 출발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자살자의 반대는 사형수다." 서문에 나오는 말이다. 이 문장의 뜻이 무얼까 궁금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어렴풋이 알 거 같다. 자살자는 속세에 얽매여 죽음이 두려운 사람이다. 반면 사형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현세에 미련이 없고, 죽음 이후의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살자에게 있어서 죽음은 종말이고, 사형수에게 죽음은 해방, 즉 또 다른 시작이다.
마지막에 뫼르소는 고요한 밤을 느끼며 처음으로 이 세계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마음을 연다. 현세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그렇기에 뫼르소에게 그 어떤 속박을 주지 않는 자연에 마음을 연 것이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서 죽음은 나쁜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르트르가 '외관상 건조하면서도 잘 짜였다고 말한 이유를 알겠다. 이 작품은 대부분 화자의 생각으로 구성되어있다. 허무함과 무미건조한 주인공의 성격을 고려하면 분명 이 작품은 건조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 특유의 건조함이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진다. 말은 아끼고 주로 듣는 주인공의 성격이 가끔 심심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그에게 호감을 느끼고, 이후 재판에서 선뜻 도와주기까지 한다. 감정이 풍부하지 않아서 그런지 문장 하나하나가 숭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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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책들이 시중에 많이 있지만, 이 책은 허무 철학이 담겨 있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책들과는 다른 생각을 갖게 한다. 저번에 읽은 『숨결이 바람 될 때』라는 책은 내가 어떤 이유로 이 삶을 살아가는지, 죽음을 어떻게 해야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했는데,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관점을 보여줘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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