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호모코레아니쿠스'입니다.

진중권 _ 《호모 코레아니쿠스》 리뷰

by 수빈 Soobin

"호모 코레아니쿠스는 급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들의 자화상을 일컫는다. 이 낯선 자화상은 카리스마, 매스게임, 회사인, 짝퉁, 디지털, 상상력 등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콜라주 되어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갈 것인지를 냉정하게 묻고 있다. 인간 개조에서 토털 키치까지, 진중권이 배치해낸 다양한 이미지를 따라가다 보면 정주에서 유목으로, 전사에서 예술가로 진화하고 있는 우리들의 어제와 오늘, 내일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한국의 하비투스를 다양한 키워드로 설명한다. 한국의 하비투스란 한국 사회에서 살아온 우리들의 특징적인 무언가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특징을 '회사인', '디지털', '속도전' 등 다양한 키워드로 설명한다.


10년이 지난 책이지만 아직도 일부 키워드가 잔재하고 있다. 어떤 키워드는 '우리나라가 이 정도였어?'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어쩌면 나도 막연하게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애써 모른 척, 외면해오다 이 책을 접하면서 충격을 받은 척 한걸 지도 모르겠다.


"보수성은 이론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대부분 이론의 반성 없이 습관으로 존재한다.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는데도 그저 익숙하기 때문에 집요하게 존속하는 폭력들이 있다. 그것을 없애려면 우리 주위의 익숙한 모든 것들을 한 번쯤 낯설게 볼 필요가 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한국인의 신체는 고통받고 있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더 읽어보자. 우리는 고통에 익숙해졌기에, 적어도 한 번쯤 낯설게 보기를 통해 한국인의 신체가 어떤 고통을 당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자발적이면서도 강제적인 신체 만들기. 이는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현상이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제 몸을 기업의 요구에 맞게 뜯어고친다. 언뜻 자발적인 것으로 보이나, 이 '존재 미학'은 실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강요한 '생존 미학'일뿐이다." - p.41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해당 기업에 맞는 신체와 정신을 만든다. 우리는 면접을 볼 때 기업이 좋아하는 화법과 복장을 준비한다. 야근을 안 하면 불성실한 사람으로 간주되기에, 가끔 자발적으로 야근도 한다. 국가에서 시장으로 권력이 넘어가면서, 과거에 국가에 바치던 공적 충성의 의무가 고스란히 회사에 대한 사적 충성으로 이어진 것이다. "자본주의적 관계는 어디까지나 노동력을 시간 단위로 사고파는 계약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한국의 노동자는 사실상 '노동력'이 아니라 '전인격'을 팔고 있는 셈이다.(p.40)"


특히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습속 혹은 고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인 송상희 작가의 작품이 책에 실려 있었는데, 보는 사람이 다 아플 정도로 핵심을 정확히 꿰뚫는다. 어떠한 표정, 그리고 돋보이는 마우스피스. 우리의 자세를 바람직한 형태로, 즉 사회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형태로 만들기 위해 보정기라는 기계가 인간의 모범이 된다. 기계가 유도하는 자세에 완전히 적응할 때까지 우리는 수많은 반복 동작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마우스피스가 몇 시간 동안 내 입에 걸쳐있다고 생각해보면, 정말 고통스럽다. '이런 건 왜 만드는 걸까' 하고 탄식하는 찰나, 송상희 작가가 내 물음에 답한다.


"성공이라는 가상의 목표 아래 마음속의 진실, 본래의 생각들조차도 헬스 기구에서 몸을 다듬듯이 얼마든지 가꾸고 조작하여 규격화될 수 있다는 것을 전달하려 하였습니다. 웃음조차도 성공을 위해서는 정확하게,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웃어야 하기 때문에 '웃음 만들기 마우스피스'가 필요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입니다. 발전과 진보를 하고, 합리화되기 위해서는 역으로 심한 고문 - 야만 행위 - 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상식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이 된 것이지요." - p.51


성공하기 위해 헬스 기구를 통해 내 몸을 다듬는다. 더 좋은, 그러니까 더 바람직한 몸을 만들기 위해 고통스러운 과정을 반복한다. 그 사례 중 하나가 책에서 나온 마우스피스다. "나는 힘들지 않다. 성공하려면 이 정도는 기본 아닌가?" 저자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는 게 아닐까.. 여담이지만 가끔 나는 이런 문화의 시초가 언제였는 지 궁금하다. '이런 문화는 도대체 언제부터 생겨난 거야? 누가 먼저 시도한 거지?' 같은 궁금증이 든다.


한국인의 신체는 고통받고 있지만, 오늘의 한국을 만든 것은 바로 그 몸임을 알아야 한다. 또한 그 신체는 급조된 근대화에 따르는 부작용으로 고통받고 있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시점에도 아직도 과거의 타성에 사로잡혀 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간들은 자기 자신을 늘 새로 발명하도록, 새로 디자인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이자 가장 많이 공감했던 부분은 '속도전'이다.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빨리빨리'로 유명하다. 책에 따르면, 외국 이주노동자분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처음, 그리고 빨리 깨우치는 단어가 '빨리빨리'라고 한다. 그들의 굼뜬 동작은 한국인(한국인인지 한국인 '사장님'인지는 모르겠지만)에게 그저 '게으름'의 표현일 뿐. 성질 급한 한국인 사장님들은 이 굼뜬 인간을 어떻게든 빠른 기계로 만들기 위해 특정 '방법'을 쓴다. 그 방법이 동원되면 이주노동자는 이렇게 말한다. "때리지 마세요"


한국의 또 다른 '빨리빨리' 사례는 '버스'다. 한국의 성질 급한 버스 문화(?)는 어렸을 때부터 아주 잘 느꼈던 것이지만, 어느새 나 또한 그 속도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이 부분을 읽고 "아, 헐. 그렇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버스는 사람을 고려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이 버스의 편의를 배려한다. 빨리 달리고 싶어 하는 버스를 위해 인간의 몸은 신속히 승차하고, 신속히 하차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지체할 경우 운전석에 앉은 인화한 버스에게 종종 욕을 들어 먹는다. 이때 다른 승객들도 내심 버스 편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속도도 물론 중요하지만 '외연적 속도', 즉 신체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속도가 끝없이 일정할 순 없다. 그렇기에 '내포적 속도', 즉 발명, 발견, 개발, 디자인과 같은 창의성의 속도 또한 적극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위해 오로지 외연적 속도에만 집중해왔다. 속도의 두 종류를 구별하지 않고 오직 외연적 속도에 집착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지쳐버릴 것이다. 아니, 이미 우리는 지쳤다. "속도의 낡은 관념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결과적으로 빨리빨리 가고 싶은 욕망을 거스르는 문화지체현상을 만들고 있다."




특정 관점에 대해서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저자가 마냥 혹평만 한 것은 아니다. 서구의 천천한 근대화로 인한 합리성이 외려 한국의 인간미를 돋보여주기도 하니 말이다. 저자 또한 한국의 일부 하비투스에 관해서는 호감을 표하고, 그 하비투스에 이미 적응되어다고 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수백 년 동안 가져온 이 하비투스를 갑작스럽게 바꿀 순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최소한 각 하비투스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순 있다. 다양한 이들이 공존하는 세상인만큼, 각자의 문화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위해선 그 분별력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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