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 선언』
* 저자&출판사, 정가, 구매처, 분야 및 장르
윈턴 마설리스, 제프리 C. 워드 / 16000원, 교보문고 오프라인 서점, 예술/대중문화 -> 음악 -> 재즈 분야
독서모임에서 음악 분야를 선정했다. 각자 좋아하는 장르가 다르다 보니 자유롭게 책을 가져오는 형식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재즈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즈 관련 도서를 찾았다. 하지만 교보문고에서 재즈에 관련된 책이 단 2권뿐이었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하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재즈 에세이였고, 하나는 윈턴 마설리스의 책이었다. 글을 잘 쓰는 소설가의 재즈 덕질 에세이냐, 아니면 재즈 마스터의 신념이 담긴 재즈 에세이냐. 고민 끝에 후자를 골랐다. 윈턴 마설리스는 재즈가 가장 번창했던 시절의 당사자이기도 했고, 재즈에 관해서라면 정통할 테니 기초 덕질을 튼튼히 하기에 좋겠다 싶었다.
저자를 잠깐 소개하자면, 윈턴 마설리스는 재즈 교사 아버지를 둔 트럼펫 연주가다. 아버지 덕에 일찍이 재즈에 입문했다. 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모두 연마해 양 부문에서 9개의 그래미상을 수상했으며, 1997년 재즈 오라토리오를 통해 재즈 음악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세계 최초의 재즈 전용 복합 공간인 재즈 앳 링컨 센터를 설립해 현재 예술 감독을 맡고 있다.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지만 재즈에 대해 강한 신념을 갖고 있는 분이다.
처음엔 이 책을 단순히 덕질의 연장선이라 생각했지만, 읽을수록 참 마음에 들었다. 그 이유는 이 책이 단지 재즈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즈 선언'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책에는 음악과 예술에 대한 본질, 그리고 인종에 의한 상처와 세상에 대한 편견을 넘어 성숙해가는 한 사람의 고뇌와 성장이 들어있다. 재즈에 대해 알아가고 싶어서 집은 책이었지만, 오히려 저자가 살아온 인생과 그 속에 담긴 여러 인문학적 배움들에 눈길이 갔다.
1장과 3장에서는 재즈에서 가장 중요한 두 요소인 스윙과 블루스에 대해 설명한다. 2장에서는 재즈의 기본 개념을 알려주고, 5장에서는 재즈라는 장르를 통한 '통합'을, 6장에서는 루이 암스트롱부터 마일스 데이비스까지 재즈 대가들의 특성을 알려주고 그들을 솔직하게 평가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자신이 재즈 하면 생각나는 것들을 간단하게 떠올려보자.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떠올렸던 선입견들을 새로운 영감과 인사이트로 바꿔나가자.
"인종주의가 낳은 또 다른 집착은 본질적으로 요점 없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끝없이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이 음악은 어느 인종의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어떤 피부색의 사람이 그 음악을 최고로 잘 연주하는 가를 결정해야 하는 쓸데없는 짓을 해야 한다. 자, 루이 암스트롱은 최고였으며 피부는 검었다. 그렇다면 재즈는 검은 피부의 흑인들의 영역이어야 한다. 하지만 루이 암스트롱만큼이나 연주를 잘하는, 피부가 검은 그다음 사람은 누구인가?
몇몇 백인 - 예를 들어 빅스 바이더벡 - 은 그 줄에서 흑인 트럼펫보다 앞서 있으면 안 되는 것인가? 좀 더 밝은 피부의 크리올이었던 시드니 베셰보다 뛰어난 흑인 소프라노 색소폰 주자는 누구인가? 실은 없었다. 흑인 중에서 연주자로서의 자격을 갖춘 사람은 몇 퍼센트였을까? 또 장로 라인하르트는 어떤가? 그는 벨기에 출시의 집시였다. 무엇이 한 사람을 진짜 재즈 음악인으로 만드는가? 그들은 흑인이어야 하고 노예의 후손이어야 하는가? NBA에서 유럽 출신 선수들은 미국의 백인 선수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낸다. 그것은 그들의 피부가 덜 하얗기 때문인가 아니면 흑인 선수들의 내재적인 우우 월성이 교육의 일부분이 아니란 점을 문화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재즈와 인종주의 간의 관계가 인상 깊었다. 재즈는 미국 흑인 노예들의 후손에서 탄생했지만, 그 배경 때문에 미국의 음악으로 온전히 인정받지 못한 채 소위 '왕따'를 당해왔다. 미국인에게 재즈를 가르치려면 그 이면의 역사를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이는 자신들의 부끄러운 민낯을 들추어내는 일이기에 현재까지도 재즈 교육이 제대로 행해지지 않고 있다고.
재즈라는 장르 자체 또한 무척 인상적이었고, 재즈와 민주주의가 연관되어있다는 주장 또한 신선했다. 재즈 연주자 개개인은 그 누구의 지배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자유롭게 표현한다. 그와 동시에 다른 연주자들과 협업 또는 견제를 하며 하나의 완성된 모습을 이룬다. '자기표현과 공동의 선' 사이에서 독특한 균형을 이루는 것은 '재즈'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센스와 재능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아쉬웠던 부분을 굳이 말하자면 책의 제목이다. 원제가 'Moving to higher ground? How jazz can change your life'였는데, '재즈가 어떻게 당신의 삶을 바꾸는 가' 이 부분이 사실 이 책의 핵심이었기에 잘 살려서 제목으로 했다면 더 좋았을 듯싶었다. 아무래도 제목 글자 수가 중요하기도 하고, 사실 재즈 선언이든 다른 제목이든 살 사람은 사고 안 살 사람은 안 사겠지만, 이 책은 단순히 재즈 연주법에 관한 책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더욱 안타까웠다. 『재즈 선언』은 평생에 걸쳐 자신의 분야에 매진해온 한 아티스트의 경험과 열정이 녹아든 결과물이자, 재즈 역사의 축약본이라는 것이다(!!!). 한 편의 재즈 에세이이자, 입문자들을 위한 교본, 더 넓게는 원제목의 부제처럼 삶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지침서이기도 하다.
별점은 10점 만점에 8점 드린다. 보다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싶어서 일부러 0.5점 더 올렸다.
한줄평은 <재즈 음악을 들으면서 오랫동안 곱씹어 읽고 싶은 책!!>이다.
책을 읽고 나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숨결이 바람 될 때』가 떠오르기도 한다. 상황은 각자 다르지만, 어떤 분야의 최정상에 있는 사람이 혼신을 다해 공부하고 노력했던 분야를 대중들에게 알려준다는 점이 비슷하게 느껴져서 그런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