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했지만 조금은 아쉬웠던 책,『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존 허스트가 쓴 책, 출판사는 위즈덤하우스. 알라딘에서 전자책으로 구매했고, 종이 책 정가는 16,000원이다.
이 책은 독서모임에서 '역사'를 주제로 입문서를 읽어보자는 의견이 나와서 선정한 책이다. 여러 채널에서 추천하기도 했어서 골랐다. 여담을 조금 보태자면, 본인은 수능을 세계사와 동아시아사로 선택했을 만큼 역사를 좋아한다. 수많은 사건사고들을 머리로 상상하면서 외우는 것을 즐겼던 역사 변태였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역사를 단순 암기라고 생각했지만, 역사는 정치, 경제, 사회문화, 윤리를 한꺼번에 배우기 아주 좋은 과목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본인이 역사 덕후였기에 나름 책을 꼼꼼하게 읽었다.
저자는 호주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교수로, 40년간 재직하며 학생들에게 호주의 역사와 그 근본을 이루고 있는 유럽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를 연구했다고 한다. 존 허스트는 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역사를 부담 없이 접하고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었기에,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간결한 역사서를 다수 출간했다. 이 책도 그중 하나다. 존 허스트의 40년 역사수업 노하우가 담겨 있어 단 3개의 키워드로 2000년의 유럽 역사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이 책은 포인트를 대놓고 얘기하는 편이다. 사실 우리가 학창 시절에 배운 세계사는 주입식 위주이기도 하고 교과서에 사건이 덜 적혀있어서 그 흐름을 이해하기 어렵다. '일단 외우자'는 식으로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사건 하나하나 동떨어진 느낌이고, 특정 세기의 특정 문화를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이 강조하는 3가지 키워드, 즉 [그리스와 로마의 지식/기독교/게르만 전사] 만 기억하면, 신기하게도 전체적인 흐름을 납득할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사건이나 문화가 딱딱 떨어지는 게 아니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여러분들도 이 키워드를 책 '표지'에 붙여놓고 계속 읽어나가면, 내용을 더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은 독서모임 선정 책 중 유일하게 전자책으로 샀는데, 엄청 후회 중이다. 부랴부랴 모임 전날 읽으면서 하이라이트로 표시한 부분이 싹 사라져서... 역시 전자책이랑은 안 맞나 보다. 인상 깊었던 부분이자 내가 충격을 받았던 부분은 그 유명한 '카노사의 굴욕'에 관한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고 학창 시절 내가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사건의 배경, 연도, 그리고 하인리히 4세라는 인물의 이름만 외웠을 뿐, 그 사건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카노사의 굴욕은 당시 교황의 힘이 무척 셌던 시기에 일어난 유명한 사건이다. 당시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주교를 임명하겠다 선언했지만 황제인 하인리히 4세가 말을 듣지 않아 교회에서 추방해버렸고, 당시 파문당했다는 것은 사람들이 더 이상 국왕을 국왕으로 복종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었기에 하인리히가 추운 겨울날 교회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선처를 받은 사건이다. 본인은 사실 그 이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아봤는데, 하인리히의 행동에 칭찬하는 저자의 그 이유가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마침내 교황은 마음을 풀었고 황제는 교황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했다. 교황은 파문을 철회했는데, 이것은 독일 제후들을 아주 곤란하게 만들었다. 물론 하인리히에게는 이 행위가 품위를 매우 떨어뜨리는 것이었지만 아주 영리한 술책이었다. 기독교 교황이 용서해 주는 것을 거부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황제가 자신의 입장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논쟁은 수년 동안 이어졌고 결국에는 타협이 이루어졌다. 황제는 주교를 선출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직책과 관복을 수여할 권한은 교황이 갖게 됐다." (p.158)
나는 '카노사의 굴욕'은 하인리히 4세가 멍청했고, 머리를 숙여 교황에게 선처를 받음으로써 굴욕적인 면모를 보였기에, 더 이상 왕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선처'는 결국 '교황'이 인정했다는 뜻이었기에, 제후들은 못마땅했지만 계속해서 국왕을 따라야 했다. 다음을 생각해보지 않았기에 영리한 술책이었다는 저자의 말이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번역과 뒷부분에서 부족함을 느꼈다. 일단 제목부터 틀렸다. 원제는 유럽의 역사인데, '세계사'로 번역했다. 처음에 당연히 세계사가 나올 줄 알았는데 2000년의 유럽 역사만 계속 나와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또한 뒤로 갈수록 책이 루즈한 느낌이 들고, 2부부터는 번역과 문체 부분에서 어려움이 많아서 아쉬웠다. 읽기에 막대한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지만, 1부에서 많이 감탄했기에 더더욱 2부 3부가 아쉬웠다. 조금 더 공을 들였다면 더욱 좋은 책이 될 거라 생각한다.
별점 : ★★★★★★☆☆☆☆(6/10)
한줄평 : 재미있는 세계사 교과서 느낌. 저자 말처럼 역사에 관심 있든 없든 누구나 가볍게 시작하기 좋다.
300페이지 남짓의 이 책이 유럽사를 전부 다룬다고 보기엔 매우 짧은 것처럼 느껴지지만, 저자가 주장하는 3가지 키워드, 그중에서 특히 '게르만적 특성'과 '견제와 균형' 이 2가지 요소를 고려하면 매우 짜임새 있는 책이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궁금증을 더욱 키우고, 세밀한 부분을 찾아 한 단계 더 나아가기에 무척 좋은 책이다. 하지만 아까 말했듯 1부에서 느낀 감탄을 2부 3부에서 계속 느끼기엔 문체나 번역 부분이 조금 미흡하다. 그 점 유의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