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시청각 1호> 리뷰
<컨템퍼러리 미술관의 기획 : 정형민과 김홍희, 그리고 그 이후>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이 책은 작은 소형 출판사 웹사이트에서 책 쇼핑을 하다가 발견했고, 전체적인 컨셉과 목차가 마음에 들어서 구매했는데 생각보다 내용이 좋아서 놀라고 있는 중. 몇몇 어휘를 제외하면 미술에 무지한 나 조차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다만 나는 '컨템퍼러리 아트'를 잘 몰랐는데, 책에 구체적인 설명이 나오진 않아서 스스로 검색했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예술을 잘 모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관심이 없는 편은 아닌데, 이 책은 미술을 잘 몰라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첫 글부터 밑줄 친 부분이 상당히 많았고, 마스킹 테이프로 표시한 페이지도 많았다. 그중 나는 정형민이 관장이었던 2012-2014년의 국립현대미술관과, 김홍희가 관장이었던 2012-2016의 서울시립미술관의 차이를 보여주는 내용이 가장 인상 깊었다. 관계자 분들껜 정말 죄송한 말이지만, 사실 나는 그동안 미술관들이 서로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관장의 사상, 성향, 전공에 따라 미술관 구성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예를 들면,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이었던 정형민은 미술사학자 출신으로서 미술관을 '역사 만들기의 장소'로 재편하는 데 주력했다. 반면에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이었던 김홍희는 큐레이터 출신으로서, 공통성과 대중성을 접합하는 동시에 미술관 전시의 새로운 형식을 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즉 정형민은 각기 다른 미술사적인 시대와 범주를 할당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술관을 구성했다면, 김홍희는 미술관의 '유효성'을 획득하기 위해 시민을 위한 서비스 공간으로서 미술관을 구성했다. 예전까지만 해도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은 내게 있어서 '공공 미술관'일뿐이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각 미술관마다 아이덴티티가 다르고 지향하는 바 또한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글의 말미에는 박이소 작가의 <당신의 밝은 미래> (2002)라는 작품이 언급된다. 궁금해서 검색해보았다. 무채색의 벽을 바라보는 8개의 램프들이 환한 빛을 내뿜으며 텅텅 빈 벽을 비추고 있는 작품이었다. 무채색의 벽은 램프의 조명을 받아 더욱 밝아 보였고, 그럴수록 벽은 공허해 보였다. 저자의 말처럼 세기 전환기 한국 현대 미술사의 책 표지로 어울릴 만하다.
한국 현대 미술을 역사화하기 위해서는 미술을 단지 보존하는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맥락과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단순히 지난 작품들을 나열하는 것에 그친다면, 21세기의 한국 현대미술을 20세기에서 이어지는 한국 현대미술사로 정리하기엔 어렵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