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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 Soobin Oct 19. 2020

72시간의 법칙

후회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한 나만의 기준

종종 고민을 털어놓기 위해 내게 전화를 거는 친구가 있다. 비록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듣는 게 고통스럽긴 하지만, 평소 바빠서 전화를 잘 받지 못했던 나도 잘못이 있으니 잠자코 듣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는 대뜸 전화해서 나한테 몇 가지 부탁을 했다. 자신이 사정이 있어 후배를 만날 수 없으니, 그 후배와 친한 네가 나 대신 가서 얘기를 해달라는 거였다. 게다가 그는 내가 되도록 빨리 만났으면 한다며, 적어도 이틀 안으로는 결과를 듣고 싶다고 했다.


친구의 사정은 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런 부탁을 하면서 고마움을 한 번도 표현하지 않은 것에  나는 화가 났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에 인색한 친구라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네가 나한테 이래도 되는 건가 싶었다. 화가 나서 카톡을 읽지 않았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솔직히 내가 화났다는 걸 친구가 알았으면 했다. SNS를 켜서 불편한 마음을 토로하려던 찰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하러 기분 나쁜 일에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여? 일단은 내 할 일부터 하자.’


샤워를 했다. 스케줄러를 펼쳐 오늘 해야 할 일을 체크했다. 물 한 잔을 마시고 명상을 했다. 오늘 올라온 뉴스도 보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애니도 봤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났다. 3일이 지나니 읽지 않은 친구의 카톡방은 아래로 밀려나 있었다. 1이 사라지지 않은 카톡방을 들여다보며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의 내 마음을 살펴보니 그때의 분노는 어느새 사그라들어 있었고, 3일이 지나도 먼저 연락하지 않고 기다려준 네가 오히려 고마웠다. 카톡방을 눌러 답장을 보냈다.


“여어- 답장 못 보내서 미안.”

“아니야”

“그동안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그럴 수 있어”

혼자만의 시간이 좀 필요했어.”

“구럼구럼”

왠지 모르게 피식,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래, 이러니 내가 너를 미워할 수 없지.


이 날 이후 나는 ‘72시간의 법칙’이라는 나만의 기준을 만들었다. 순간 기분이 상하더라도 일단 참고 볼 것. SNS도 잠시 멈출 것. 그리고 3일 동안 내 할 일에 집중할 것. 그런 다음에 다시 그 일을 생각해볼 것. 3일이 지나면 생각이 달라질 때가 많다. 물론 ‘너가 나한테 이럴 권리는 없다’고 당당히 말할 수도 있지만, 막상 나는 상대방에게 속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면 나중에 꼭 후회를 하곤 했다. 그럴 바엔 차라리 후회하지 않도록 순간의 욱하는 감정을 참아보는 게 낫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실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들도 내게 욱할 때가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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