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선의는 의식조차 하지 않기에 내가 기억할 수 없다. 다만 딱 하나,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일이 있다. 뜻하지 않은 선의가 뜻하지 않은 선의로 돌아온 가슴 따뜻한 일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귀가하며 SNS를 보던 중, 친구의 글을 보았다. 사적으로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SNS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을 수는 있는, 얼굴과 이름만 기억한다면 됐다 싶은, 딱 그 정도의 친구였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의 소식에는 얼핏 먹구름이 끼인 것 같았다. 내가 아는 친구는 밝고 유쾌한 사람이었는데, 이런 무드도 있었구나 싶어 새삼 그가 새롭게 보였다. 한편으론 그동안 그를 내 멋대로 판단했구나 싶어 약간의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역시 사람은 한 면으로 보는 게 아니구나.
답장을 썼다. 시작은 분명 공감이었으나 다 적고 나니 내 얘기로 점철된 넋두리 같았다. 순간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둘까 싶었지만, 이런 넋두리마저 내 감정이고 생각이겠거니 싶어 홧김에 전송 버튼을 눌러버렸다. 어쩌면 그와 나 사이에 어느 정도의 거리가 있었기에 다행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그로부터 이틀 뒤, 내게 번아웃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찾아온 번아웃은 성가시게도 우울감과 함께 찾아왔다. 이번에는 얼마나 길고 질기려나. 번아웃이 익숙했던 나는 곧바로 휴식 모드로 전환했지만, 격주마다 뉴스레터와 라디오 등 고정 업무가 있었던 내게 완전한 휴식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번아웃 따위에 넘어가지 않으리라 아등바등했지만 결국 나는 금세 우울해졌다.
관종의 번아웃 치료제는 결국 사람에게 받는 위로이기에, 나는 "힘들어하는 나 좀 봐주소~" 하며 동네방네 글을 올렸다. 그런 내게 뜻하지 않은 선의를 베풀어 준 사람은 찐친도 가족도 아닌, 내가 며칠 전 위로 섞인 넋두리를 보냈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며칠 전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나름의 생각을 담은 글을 보냈다. 깔끔하고 따뜻한 글이었다. 그들도 나처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꽤 많은 시간을 들였을까? 적어도 내겐 그렇게 보였다.
뜻하지 않은 선의는 뜻하지 않은 선의로 돌아온다. 가끔은 재고 따지는 거 없이, 남은 남이고 나는 나라는 공식 없이 베푸는 것의 힘을 느낀다. 당사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선의가 누군가를 울리기도 한다는 걸, 거지 같은 세상이어도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는 걸, 친구의 답장을 보며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