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다 보면 막막해질 때가 있다. 더 이상 쓸 글이 생각나지 않을 때! 물론 찾아보면 글감은 수없이 많겠지만, 무언가 내 글은 답답하다. 어딘가에 갇혀 있다고 해야 하나. 글 속에 온전히 나만 있는 것이 짐짓 쓸쓸해 보일 때가 있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어느 청소년 인권 활동가 분을 만나 인터뷰를 했는데, 그분이 이런 말을 했다. “알아차리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 마음이 어떤지 알아차리고, 또 서로 알아차려주고. 자기 돌봄을 시작으로 서로를 돌보는 게 가능한 거니까요.” 이 말을 듣자마자 머리를 세게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사실 글을 쓰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자기 검열을 한다. 다수의 사람들이 내 글을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 딥하거나 우울한 글은 안 쓰게 됐다. 그런데 사실 내게 글쓰기는 자기 해방과도 같다. 토해내듯이 글을 쓸 때가 더 많고, 그 글들이 대부분 굉장히 고통스러울 때 쓴 글들이었다. 하지만 그 글은 생산성도 없고, 교훈도 없고, 오로지 고통만 담겨 있어서 성장 중독자인 내게는 딱히 공개할 이유가 없는 글이었다. 그렇게 공개할만한 글만 쓰려다 보니 진짜 솔직한 글, 나를 위한 글은 점점 나에게조차 비공개가 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남들이 써 놓은 글과 콘텐츠를 가지고 마치 그것이 내 것인 양, 겉멋이 잔뜩 든 글들을 써왔던 거 같다. 소위 ‘생각의 외주화' 같은 글 말이다. 이걸 깨닫고 나니, 이제는 진짜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나치지 않으면서 나에게 솔직한 글 말이다.
활동가 분을 만나고 그분의 말을 듣고 나서, 어쩌면 내 성격과 내 글이 가진 한계를 ‘알아차리기’를 통해서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든 생각은 나만이 쓸 수 있으니까.
결국 나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란 아이러니하게도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필요로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앞으로는 나에게서 타인으로, 존재의 인식을 확장하고 경험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것이 내겐 글쓰기의 ‘쓸모’인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