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날과 다름없이 카페에서 일을 하던 중 어떤 손님들이 가게에 들어왔다. 그들이 나와 조금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건 꽤 시간이 지나서였다. 손님들이 계산대 앞에 서 있는 걸 보고 뒤를 돌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그 손님들은 여전히 주문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수어를 쓰고 있었다. 그들은 농인이었다.
'그래, 지금이야. 여태껏 배운 너의 지식들을 활용해 안정적으로 주문을 받아보자! 해보는 거야!'라며 프로답게 주문을 받기는 개뿔.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 다행히 같이 일하는 동료가 침착하게 주문을 받아준 덕분에 나는 뒤로 물러나올 수 있었다. 부끄러움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나는 아무런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실전이 꽝인데 대체 나는 왜 자신만만해했던 걸까. 이러한 나의 착각에는 역시, 책이 한 몫했다. 여러 책을 통해 많은 정보를 습득했으니, 실전에서도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도록 잘 대처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농인들을 바로 앞에서 마주하게 되자, 나는 어쩔 줄 모르고 허둥지둥거렸다.
이처럼 나는 평소엔 허풍 가득 떨다가 정작 실전에서 아무것도 못 하는 무능한 상황을 종종 맞이한다. 나 스스로도 가장 어처구니 없는 것은, 내가 환경미디어를 운영하면서 정작 분리수거를 못 할 때다. 라면스프는 물로 헹궈서 버려야 한다는 거, 종이 컵라면은 키친타월로 오염물을 닦아내고 버려야 한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았다. 화장품 공병을 어떻게 버리는지는 오늘에서야 알게 됐다. (그럼 지금까지 어떻게 버렸냐고? 사실 안 버리고 내 방 한구석에 쌓아ㅆ,,읍읍)
내로남불 그 자체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는 크게 내면서 정작 내 행동은 안 바꾼다. 재수 없다. 내가 이렇게 재수 없는 사람이었구나. 엄마는 내가 환경 뉴스레터를 쓸 때마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부끄럽기 그지없다.
앞으로는 좀 더 많은 걸, 나 스스로 당연히 생각하고 경험하려는 자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로만 '쓰레기' 하지 말고 쓰레기 매립지를 가봐야지. 책을 통해서만 지식을 얻지 말고 직접 발로 뛰면서 몸으로 익혀봐야지. 그리고 세상에 대고 뭐라 하기 이전에 나부터 잘하자는 생각도.. 가져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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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기⭐️
✔️농인: 청각장애를 치료 대상으로 보지 않고, 문화적 측면에서 소수언어(수어)를 사용함.
✔️청각장애인: 병리학적 측면에서 청각장애를 치료해야 할 대상으로 봄.
✔️청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 비장애인.
✔️수어: 한국어, 영어 등과 같은 동일 선상의 언어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수화'라는 용어 대신 '수어'로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