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어른이 되어 다시 읽는 동화

《동화 속의 심리학》을 통해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와 마주 보기

by 수빈 Soobin

1.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을 때, 보통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오늘도 힘든(별 볼일 없는) 하루였어'라고 생각해본 적, 있으시죠? 그렇다면 '오늘도 가슴 뛰는 하루였어', '오늘도 의미 있는 하루를 보냈어'라고 생각한 적은요? 아마 대부분 후자보다는 전자의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언제서부턴가 우리는 좋아하는 것, 꿈꾸는 것에 멀어지고 지금 당장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많아서, 가끔은 좋아하는 것 · 꿈꾸는 것을 잊어버리기도 합니다. 가슴속에 늘 '이상'을 품고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꺼낼 일이 거의 없습니다. 직장을 다니는 분들 중 대다수는 '현실적으로 힘드니까 어쩔 수 없지'라는 생각으로 많은 것을 포기하곤 합니다.

왜 우리는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왜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갖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 들까요? 이 책은 어린 시절, 우리의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동화'를 바탕으로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습니다. 또한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것들을, 이솝 우화의 사례를 통해 제시하며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하죠. 그것이 저자의 의도이자 이 책의 역할입니다.


2.

우리는 해피엔딩을 좋아하지만, 현실은 해피엔딩이 아니라고들 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선'을 추구하지만, 물질이 지배하는 현실에서 해피엔딩을 볼 일은 잘 없다는 거죠. 현실을 알아갈수록 꿈꿔왔던 '낭만'은 사라지고, '현실'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세상을 편하게 살아가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는 것이 이제는 어느 정도 '현명해진' 시대입니다. 치열한 일상의 반복으로 인해, 기존의 이상주의는 과거의 유물이 됐고, 현실주의가 자리 잡게 됐죠.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도 치열한 '현실'을 부여합니다. '나는 도대체 잘하는 게 뭘까?',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있을까?'라며 내면의 전쟁을 치르곤 합니다.


이러한 현실주의를 입증하는 사례가 바로 디즈니/픽사 영화의 흥행입니다. 영화 업(2009), 인사이드 아웃(2015), 코코(2018)는 '어른들을 위한 영화'라며 많은 인기를 얻었죠.

이처럼 디즈니/픽사의 영화가 인기를 끈 이유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니즈를 잘 캐치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 속에도 꿋꿋이 제 길을 가는 주인공과, 현실에서 느끼지 못하는 해피엔딩을 디즈니의 영화를 통해 보면서, 잊고 있었던 자신의 '꿈', '이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왜 동화가 어른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받는 걸까요? 그것은 바로 동화가 인류의 기본적인 가치관을 잘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앞에서 말했던 질문들의 답은 이렇습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현실이라는 벽에 굴하지 않고, '이상'을 향해 달려갑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으니 주도권은 주인공이 갖고 있겠죠. 하지만 자기 삶의 주인공인 우리들은 현실에 벽에 순순히 이상을 내려놓고 현실을 쫓아갑니다. 주도권이 현실에게 있는 것이죠.



3.

이솝 우화 중 '여우와 포도' 이야기는 여전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좋은 우화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여우 한 마리가 길을 가다가 높은 가지에 매달린 포도를 보았습니다. “참 맛있겠다.”
여우는 포도를 먹고 싶어서 펄쩍 뛰었습니다. 하지만 포도가 너무 높이 달려 있어서 여우의 발에 닿지 않았죠. 여우는 다시 한번 힘껏 뛰어 보았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포도에 발이 닿지 않았습니다. 여러 차례 있는 힘을 다해 뛰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여우는 결국 포도를 따 먹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죠. 돌아가면서 여우가 말했습니다.
“어차피 저 포도는 너무 시어서 맛이 없을 거야.”
처음에 여우는 그 포도가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포도를 따 먹을 수 없게 되자 원래 가졌던 믿음을 버렸다.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포도를 따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대신, 신 포도라서 손에 넣을 가치가 없다는 핑계로 스스로를 속인 것이다.

인지 부조화-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14살에 시작하는 처음 심리학, 2016. 10. 07., 북멘토)
photo by. 갓독_2015.05.20_http://goddog.tistory.com/m/17

자신이 우화 속 여우였던 적이 분명히 한번쯤은 있을 겁니다. 악기를 배워볼까? 싶어 연주할만한 악기를 한창 검색하다가도 며칠 뒤 까맣게 잊어버린다거나, 운동을 해볼까 싶어서 헬스장을 끊고 삼일 동안은 열심히 다니다가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귀찮아서 포기한다거나...


기말고사가 코 앞이니까 오늘은 반드시 SNS를 하지 않겠어!라고 자신 있게 외치다가도 몇 시간도 안돼서 핸드폰을 잡은 적, 있을 겁니다. 시험은 결국 망쳤고, "어차피 수강 신청하는 순간부터 학점은 정해져 있음", "야 난 어차피 공부했어도 이 점수야!"라며 애써 기분을 달래겠죠. 이솝은 '여우와 포도' 이야기를 통해, 높디높은 현실의 벽에 쉽게 포기해버리고 '이상'(포도)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을 비판합니다.


4.

이 책의 또 다른 흥미로운 부분 <걸리버 여행기>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었습니다.

거인국 왕 : 당신네 나라 국민들도 우리나라 국민처럼 건강합니까? 귀족이든 평민이든, 제대로 된 식사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습니까?

걸리버 : 음, 모든 국민들이 제대로 먹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국민들 중 가난에 처해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지금 실업률도 높은 수준이고..
...
거인국 왕 : 아니, 당신네 지도자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길래 그런 겁니까?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에게 어떤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소?
거인은 '인간의 원형', '진정으로 위대한 자', '책임감을 가지고 인류를 이끌 수 있는 리더'를 상징한다. 반면 오늘날에는 어느 분야에서든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거인'이라 부른다. 금융계의 황태자, 산업계의 거물, 심지어 졸부들마저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이런 사람들이 사회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고, 세상은 이들이 인류에게 필요한 진보를 가져다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 맨리 P. 홀 (1901-1990) -

저자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매우 솔직하고 건설적입니다. 좋은 지도자 · 좋은 국가란 무엇이며, 좋은 지도자를 선출하기 위한 교육 시스템은 어떻게 구축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솔하게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죠.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인 조나단 스위프트가 걸리버 여행기를 집필한 당시에는 정치에 대한 억압이 굉장히 많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조나단 스위프트는 걸리버 여행기를 통해 억압받는 자국의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을 비판하죠.

사회문제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해결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 사회 구성원들의 행동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어떤 문제도 해결될 수 없다
- 조나단 스위프트 (1667-1745) -

5.

우리 중 일부는 사회문제를 우리 스스로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정부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물론 국가를 운영한다는 책임을 지녔기에, 정부의 잘못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정부가 잘못하지 않도록 우리가 먼저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입니다.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좋은 국가·좋은 지도자를 선출하는 '이상'을 늘 염두해야 한다는 것이죠.


6.

어릴 적 즐겨 읽던 동화를 다시 읽어보면서, 무릎을 탁 치는 깨우침을 하게 해주는 이 책의 저자는 상당히 '이상'적 인물이기도 합니다. 저자 맨리 P. 홀 (1901-1990)은 27세인 젊은 시절부터 광범위한 지식의 집합체인 '모든 시대의 비밀 가르침'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고 합니다. 1934년에는 고대 철학, 종교, 과학을 집중 연구하는 철학 연구소를 세웠고, 1990년 89세의 나이로 사망하기까지 전 세계를 돌며 8000여 회 강연과 150여 권의 책을 집필하고 수많은 에세이와 기고문을 남겼습니다.

7.

이 책의 예상 독자는 현실주의에 중독되어버린 사람,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 이상을 꿈꾸지만 찌든 현실에 심신이 지쳐버린 사람 등등... 현실에 무뎌진 분들이 읽기에 좋은 책입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읽기에 좋은 책입니다. 단순히 지쳐버린 마음을 치유해줄 뿐만 아니라, 가슴속 깊은 곳에 간직해왔던 '이상'을 꺼내주기 때문이죠.


8.

동화는 남녀노소, 시대 구분 없이 사랑받아왔습니다. 어릴 적 재미있게 읽은 동화를 다시 읽다 보면, 그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의미와 메시지가 눈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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