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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빈 Soobin Jun 27. 2022

서울이 너무 좋고 서울이 너무 싫다

탈서울 지망생들을 위한 책 3권

1.

서울은 아니지만 수도권에서 나고 자랐다. 다른 지역에서 오래 살아볼 기회가 없었으니 내가 살아온 환경이 기본값인 줄 알았다. 심지어 서울에 사는 사람들에게 박탈감도 좀 느꼈다. 서울에 오고 가는 시간만 왕복 3-4시간. 지하철에서 버티는 시간이 아까워 팟캐스트도 들어보고 영어 단어도 보려고 했지만, 체력이 줄어든 이후로는 아무것도 못하겠더라. 불만은 있지만 그래도 소리 내어 불평한 적은 없었다. 다들 그러고 살지 않냐며 어느 정도 체념하고 살면 마음이 편했다.


사진 : JTBC


2.

그러다 작년 즈음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지역 차별을 알게 됐고, 춘천, 양양, 속초 등 여행을 다니면서 일종의 죄책감을 느꼈다. 기사를 통해 본 세상과 직접 현장에 가서 본 세상은 너무나도 달랐던 것이다. 작년 봄에 다녀온 춘천 여행에서는 춘천의 차이나타운 조성 이슈를 두고 동료와 이야기를 나눴다. 솔직히 이런 문제가 참 어렵다. 지역 격차 해소를 위해 인프라가 발달해야 하는 건 맞지만, 환경 문제를 고민하는 입장에서 산을 깎는다던지 서식지를 파괴하는 건 비판적인 입장이니까. 하지만 정작 나는 지방에서 보내주는 에너지에 의존해 살고 있지 않나. 잠깐 있다 갈 사람이 수도권에선 누릴 거 다 누려놓고, 춘천시에 환경을 파괴하지 말라고 말하는 건 너무 무책임하지 않나 싶었다.


에너지뿐만이 아니다. 우리가 먹는 고기나 과일, 야채의 대부분이 지역에서 생산해 수도권에 갖다 바치는 수준이다. 특히 육고기가 생산되는 방식, 즉 ‘공장식 축산’은 가히 충격적이라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구석진 곳에 꼭꼭 숨겨둔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공간적으로 구분되어 이뤄지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일례로 미국의 어린이들은 채소와 과일들이 마트에서 자고 나라는 줄 안다고. 작물이 자라는 과정을 쉽게 볼 수도 없고 체험해보는 건 더더욱 어려울 테니, 그럴 만하다.


그밖에도 지역 차별은 정말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교육의 불균형 문제, 기회의 불평등과도 연결되고 요즘 뉴스에서 자주 나오는 ‘식량위기’와도 직결된다. 농업에 대한 일자리 수요 감소와 농경지 부족으로 국내 공급량은 점점 줄어드는데 필요한 먹거리는 오히려 늘고 있으니 수입 의존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제 정세가 불안하면 당연히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3.

하지만 한국에서 탈서울을 한다는 건 여러모로 ‘손해’다. 질 좋은 교육과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전부 서울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 같은 프리랜서나 지식 노동자에겐 더더욱 서울이 중요하다. 네트워킹이 곧 자산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제도서전이 서울에 열리지 않는가!!! 엊그제는 서울역에서 열리는 '그림도시' 전시회도 갔다 왔다. 문화를 즐기고 트렌드를 소비할 권리와 기회가 서울에 몰려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탈서울을 한다고 해서 마냥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다. 어디든 결국 사람 사는 곳이기에 문제는 발생하고, 그로 인한 책임도 오롯이 내 몫이다. 또 서울을 떠나 지역으로 가는 이들 모두가 귀농을 하는 건 아닌데, 국가에서 지원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전부 귀농 쪽이다. 아니 당장 내 커리어를 제쳐두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겠냐고요..! 탈서울 지망생은 어디에나 있지만 선뜻 실천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서울이 아니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른다(+상상조차 해본 적 없다).


4.

사실 나는 바로 그 지점을 간과했다. 어디든 서울만 벗어나면 행복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와 낭만이 있었다. 사람으로 가득한 지하철과 공사 소리로 시끄러운, 화려하지만 사무치게 고통스러운 이 대도시에서 벗어나면 한결 삶이 편안해질 것이라는 착각 내지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이 책들을 읽으면서 나한테도 어쩔 수 없는 ‘서울중심주의’가 찌들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장 어디든 떠날 수 있다 한들 대형마트와 수많은 프랜차이즈 카페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아날로그의 불편함을 모르고 살아온 Z세대 아닌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불편함은 딱 그 정도였다. 너무 구석진 곳은 안 되고 인구는 8만에서 10만 명 정도. 서울이랑 KTX로 1시간 30분 정도 거리면서 역과 가까운 오피스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지역살이는 겨우 이 정도였다. 이대로라면 지역으로 가더라도 서울에 대한 미련은 버리지 못할 게 분명했다.



5.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와 <탈서울 지망생입니다>, 그리고 <어디에나 우리가>는 그런 의미에서 탈서울을 여러 시각에서 바라보고 고민하기에 좋은 책들이다. 첫 번째 책을 읽으면서는 서울을 떠나 ‘양양’에서 어떻게 밥벌이를 준비하고 자리 잡아가는지 그 과정을 엿볼 수 있었고, 두 번째 책은 내가 왜 탈서울을 하고 싶은지 ‘주거와 삶’에 대해서 돌아보게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찾는 답은 어쩌면 ‘어디’가 아닌 ‘어떻게’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우리가 원하는 건 나만의 안정된 보금자리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마지막으로 <어디에나 우리가>는 그럼에도 지역에서 살아야 할, 살고 싶은 이유를 25명의 이야기를 통해 들려준다. 어쨌거나 지역에서도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있고, 지역 불균형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니까.


6.

서울에 미련이 많을 것 같은 알량한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탈서울을 꿈꾸고 있다. 서울에서 사는 건 여러모로 이득이라는 당연함을 깨부수고 싶다(!!). 삶의 선택지가 훨씬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서다. 왜 서울을 떠나려고 해? 왜 취업을 안 해? 왜 고기를 안 먹어? 왜 논바이너리라고 말해? ‘굳이’라는 단어가 알게 모르게 들어가 있는 날 선 질문들을 그만 듣고 싶다. 탈서울을 비롯해 지역 차별에 관한 이야기를 더 많이 주고받다 보면, ‘왜 굳이?’라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많아지지 않을까.


7.

<어디에나 우리가> : 개인적으로 인터뷰집을 좋아하기도 하고 인터뷰가 좋아서 한 장 한 장 아끼며 읽었다.

<탈서울 지망생입니다> : 에세이와 인터뷰 둘 다 담겨 있음. 유용한 정보를 많이 얻었다.

<서울이 아니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 글이 맛깔나서 단숨에 읽었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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