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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숲 May 31. 2024

북적이는 곳

 어딜 가도 사람들이다. 사람과 일을 하고,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사람들 사이를 헤쳐 걸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풍경을 본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속한 풍경을 인지한다. 그리고 그곳에 내가 서 있다고.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역에는 이동만을 위해 움직이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짐을 들고, 짐을 세워두고, 정확히 시선을 가고자 하는 곳에 두고 걷거나,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 올 때까지 하염없이 앉아 있거나. 시간을 때우며 핸드폰 충전을 위해 들린 카페는 아주 작았다. 안쪽 자리에는 8명 정도는 돼 보이는 일행이 모여 앉아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나는 창가에 1인 정도만이 앉을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처럼 기차 시간 전에 있을 곳이 필요해서 온 거 같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작은 카페 평수를 보며 걸음을 옮겼다. 이럴 때 한 명의 몸은 참 경제적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작고, 정신없는 공간에서 사장님들은 너무 친절했다. 친절이 뭐라고 짐이 무겁지만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나오게 해주는가.


 조금 여유 있게 역으로 향했고, 내 자리가 꽤 뒤 호차 인 것을 깨닫고 미리 오길 잘했다고 생각을 했다. 티켓이 없어 역방향으로 한자리를 얻었는데, 대체 역방향은 왜 있는 걸까 생각하며 그래도 뭐 좀 이색적으로 가보는 거지라며 생각한다. 그렇게 서울까지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는 계속 잠에 취해 있었다. 분명 푹 잠에 들었지만 더 잠들어야 할 것 같다고 감각하면서 잠 속에서 비몽사몽하며 서울까지 향했다. 중간에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규칙적인 숨소리와 그 숨소리에 따라 풍겨오는 입 냄새가 잠에 취해 있는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러다 나도 그러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셔츠로 입을 가려 숨을 내쉬곤 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은 피곤하기도 하지만 다행스러운 맘이 든다. 다들 무사히 살아내고 일상을 보내고 있군요, 다들 어딘가로 향할 곳이 있군요,라고. 죽은 친구를 떠올렸다. 죽은 또 다른 친구를 떠올렸다. 생각보다 직접적인 관계의 죽음은 상상보다 더 무덤덤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죽음을 오래 기억하게 된다, 혹은 될 것이다. 오래전에 죽은 친구는 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꿈에 나왔고, 최근에 죽은 친구는 바로 꿈에 나타났다. 오랜 시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냈지만 자연스럽게 서로의 삶을 응원하며 다시 만났을 때도 반가웠던 친구는 자신의 속마음을 가끔 툭 얘기해주곤 했다. 나는 그저 잘 들어주고, 잘 이해해주는 사람이라고 여겨졌을지도. 슬픔보다는 아쉬움. 그 죽음이 한 번씩 떠오를 때마다 여전히 살아있는 인스타그램 속 친구를 보러 간다. 친구의 마지막 부탁일지도 몰랐을, 그 연락을 무시했다면, 친구는 하루 더 살아있었을까. 손에 꼽히는 만남을 가졌지만 생각을 정리한다며 오래 걸을거라던 친구는 그 날도 계속 걸었던 것일까 하염없이.오래전에 죽은 친구도 최근에 죽은 친구도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면, 정말 그 마지막이 고통스럽지 않았기를.  깨지 못한 잠 속에서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계속 그 죽음을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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