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질 들뢰즈의 책 제목인데 읽어본 적은 없다.
ㅊ과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연애를 시작했던 2016년도에 ㅊ의 가방에는 질 들뢰즈의 두꺼운 책 <차이와 반복>이 항상 있었다. 지하상가에서 파는 만 원짜리 백팩을 주로 산다는 그는, 끈이 조금씩 떨어져 나가는 백팩에 차이와 반복을 담아 늘 짊어지고 다녔다. 그는 버스보다 지하철을 선호한다고 했다. 지하철에선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이런 두꺼운 책을 일상에서 읽어 나가는 사람이 나의 연인이 되다니. 책의 내용에 대해서 물었다.
"누나가 공연을 올릴 때 매일 연습을 하잖아요. 같은 연습을 매일 하지만 조금씩 달라지잖아요. 그게 차이와 반복이에요."
708쪽에 달하는 책에 정말 그 한 줄의 내용이 다일까 싶지만, 자고로 똑똑한 자들은 한 문장을 708쪽으로 충분히 풀어서 말하니 그럴듯하다. ㅊ과의 시간은 올해로 9년 차에 접어든다. 그리고 난 그 시간 동안 이 책을 읽지는 않았다. 그가 추천하며 빌려줬던 <엘리건트 유니버스>도 9년 동안 완독하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책장에 있지.
2016년에 말해줬던 저 책에 내용은 여전히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지겨워하는 삶의 태도를 관통해버리고 마는 그 문장을 부정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혼자 치열하게 싸우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싸움의 시간만큼 ㅊ은 나의 반복되는 고민을 들어왔다. 고등학교 때 반복되는 그 다짐이 싫다고 쓴 일기장을 시작으로 나는 꾸준하게 그 감각을 반복하며 살아왔다. 특히, 노동의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아침에는 늘 나와의 싸움이다. 일어날 것인가 말 것인가, 이것을 해내기에 시간이 또 모자라지 않은가.
올겨울 가장 추운 날을 기록한 어제와 오늘(아마도), 병원을 가기 위해 해가 질 무렵에 나섰던 어제 아주 차가운 바람에 오히려 정신이 깼다. 아주 좋아하는 감각이다. 살이 베일 것 같지만 공기는 엄청 상쾌한 추운 날씨. 계속되는 염증의 고통으로 23만 원짜리 주사를 맞고 집에 돌아오면서도 내가 집을 나섰다는 사실에 큰 용기를 얻었다. 작은언니와도 저녁을 먹고 다시 마트를 들릴 겸 슬쩍 걷고 왔다. 약의 기운으로 깊은 수면에 들어 11시가 다 되어 일어난 오늘은 언니가 차려준 밥을 먹고 커피를 사 온다며 텀블러 두 개를 챙겨 카페를 다녀왔다. 집 앞의 언덕길을 내려가며 택배 상자를 들고 나를 지나쳐 올라가는 기사를 본다. 뚜벅뚜벅 카페까지 걸어가 커피를 주문한다. 사장님은 앞에 주문이 있으니 앉아서 기다려 달라고 한다. 핸드폰으로 이것저것 보며 시간을 때운다. 어제 봤던 엑스레이 사진 속 나의 척추뼈가 떠올라 복부에 힘을 주기 시작한다. 사장님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님의 자리로 가져다준다. 테이크아웃으로 시킨 그 커피를 받은 손님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여전히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다. 잠시 후 다른 손님들의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커피를 받자마자 그 손님이 커피를 쏟아버렸기에. 바닥에는 얼음과 커피가 얼룩져 흩어져 있고 언제부터 있는지 모르는 강아지의 짖는 소리, 손님들의 아이고, 어떡해 하는 소리가 섞여 들려온다. 손님은 당황하고 사장님도 당황한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사장님의 고민이 느껴졌는데, 바로 커피를 다시 만들어주겠다고 하신다. 손님은 아니라며 죄송하다고 했지만 사장님이 괜찮다고 바닥은 우리가 치울 테니 두라고 말한다. 아주 잠깐의 소동이 지나고 두 개의 텀블러에 담긴 커피가 나온다. 시린 손을 대비하며 장갑을 끼고 혹시라도 미끄러질까 텀블러를 야무지게 잡아낸다. 다시 뚜벅뚜벅 걸어서 집에 도착한다. 좁은 설거지통에 가득 쌓인 식기들을 재빠르게 처리한다.
우습게도 자존감이 올라간다.
일상을 잘 걷고, 잘 보고, 잘 듣는 것만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내가 힘겹게 싸워온 차이와 반복일까. 카페를 갈 때 머리에 불이 켜지듯 지금밖에 없다고. 지금이 과거가 되고, 미래가 지금일 뿐이라고.
요 며칠 몸이 좋지 않아 쉬고 있는 ㅊ에게 카톡을 보낸다. 쇼잉 업을 어서 보자고.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