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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살롱 Nov 01. 2019

청춘은 언제까지일까

정답, 죽기 전

이런 게 입뺀이구나.


할로윈 위크의 시작인 금요일 밤 이태원 클럽. 난생처음 소위 말하는 입뺀(입구뺀찌)를 당했다.


"몇 명이세요? 이쪽으로 들어오... 저희가 오늘은 할로윈 복장을 한 분들만 입장을 시키고 있어서요."

나는 이 계절의 유니폼인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고, 함께 있던 남자친구는 네이비색 나일론 점퍼 차림이었다. 물론 우리가 피 한 방울도 안 그린 날얼굴에 '이태원이 할로윈에 핫하다는데 구경이나 해볼까' 싶어 나온 이모삼촌 같긴 했다. 풀이 죽어 몇 번이고 "아마 나 때문에 그런 거 같아."라는 중년남성을 데리고, 이태원 원주민인 중년여성은 주눅든 기분을 업시켜줘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올랐다. "아냐. 우리가 너무 출근복장으로 왔어. 요 앞에서 분장이라도 할 걸 그랬나 봐."라며 인파에 떠밀리는 길 위에서 이모삼촌을 받아줄 핫플레이스를 레이더로 탐색했다. 바로 1분 만에 발견한 LP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no 분장 & no 코스튬의 손님들이 보이고 Queen의 We are the Champions가 나오자 어찌나 안도가 되던지!


누가 뭐래도 이태원의 최대 명절은 할로윈이다. 몇 주 전 이태원 지구촌 축제도 큰 명절이기는 하지만 그날이 유모차를 끌고 나오는 시민이 많은 가족 행사라면 할로윈은 철저히 20대의 축제다. 4년 차 이태원 동민으로서 평가하자면 올해는 코스프레가 좀 심심해졌는데 할로윈데이 뿐 아니라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주한 이후로는 뭐랄까 전반적으로 더 밋밋해졌달까? 갈수록 이태원이 심심한 곳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뭐, 주관적인 견해이지만.

람보르기니로 분장한 경운기가 도로를 달리는 20대의 깨방정 할로윈 축제에서 코스프레 안 한 중년들은 별 수 없는 조연이었다. 바에 들어와서도 본인 때문에 입뺀 당했다고 자책하는 중년남에게 "자 봐봐. 이 안에 OO 타고 온 남자 있을 거 같아? XX 뿐일걸?!"하고 기 충전 멘트 발사. 약발이 먹혔는지 바로 하이파이브! 를 했다. 자동차 브랜드 의미 따위 모르는 차알못이지만 남자에겐 위로가 되나 보군. 다행이다.



65세까지 아닐까? 일단 UN이 동의했다

신은 왜 청춘을 20대에다가 놓았을까? 늘 그게 의아하고 불만이었다. 이야기는 기-승-전-결, 계절은 봄-여름-가을-겨울. 삼라만상이 4단계 중 2, 3 구간이 가장 에너지가 높은 클라이맥스인데 어째서 청춘은 100세 시대를 바라보는 시점에도 고작 20~30% 왔을 때냐 이 말이다. 신이시여, 너무 앞이에요. 아직 어리석고 설익었을 때에요. 그게 좋은 건지도 모르고 헬렐레하다가 지나간단 말이에요! 얼마 전에는 이게 억울하단 식으로 "내가 바꿀 거야. 한 2/3쯤 되는 65세 정도까지로 청춘의 정의를 바꿀 거야."라고 대상 모를 떼를 쓴 적도 있다.

내 말이 아주 근거가 없는 게 아닌 것이, 2015년 UN에서는 늘어난 평균수명에 따라 새롭게 5단계 생애주기를 구분했다. 0세~17세 미성년자, 18세~65세 청년, 66세~79세 중년, 80세~99세 노년, 100세 이후를 장수노인으로. 봐라 전 세계 인류여, 65세까지 청년이다. 가만 보니 결국 안 아프고 혼자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때까지란 거잖아? 2016년 우리나라 건강수명이 남자 64.7세, 여자 65.2세니까. 결국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제 발로 걷고 자기관리할 수 있는 때까지는 누구나 청년이라는 이야기다.

영화 <위 아 영>이 생각난다. 이 영화는 배우 벤 스틸러의 중년이 된 본인의 고민이 녹아져 있는 영화다. 뉴욕의 저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인 조시와 아내 코넬리아는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다 힙스터 커플 제이미(아담 드라이버)와 다비(아만다 사이프리드)를 만나면서 다이내믹한 20대의 템포로 삶의 빠르기가 되돌아간다. 하지만 점차 그게 즐겁지가 않고 스텝이 꼬인다. 가랑이가 찢어진다. 그리고는 젊음이 현재진행 중이라고 증명하려는 것이 가치 없는 일임을 깨닫는다. 4년 전 이 영화를 봤을 때는 '지금이 더 행복해'라며 자위하는 중년의 신포도 같이 헛헛하고 씁쓸했다. 한데 이제는 메시지를 조금 알 것 같다. 아마도 지금은 영화 후반의 벤 스틸러 쪽에 가까와서이겠지.  

<위 아 영>이 젊음에 대한 웃픈 뉴욕식 코미디 영화라면 <세상의 모든 계절>은 젊음에 대한 무서운 공포영화였다. 런던에서 평온한 노후를 즐기는 지질학자 톰과 심리상담사 제리 부부, 그리고 그들이 늘 따뜻하게 감싸주는 가난하고 외로운 40대 후반 싱글 메리. 어느 날 부부의 파티에 아들이 약혼녀를 데려오자 이모뻘인 메리는 그동안 품어온 연정과 질투를 드러내고 부부는 메리가 떠난 뒤 '감히 내 아들에 그런 감정을 품어?!'라는 분노로 몸을 떤다. 이 날 이후로 직장동료 제리로부터 '한 달간 침묵'이라는 벌을 받은 메리는 어렵게 다시 파티에 초대되나 또다시 분수를 모르고 불행한 여인의 허세 섞인 타령을 떠들어댄다. 그리고 방 안에는 불편한 공기만 떠돈다.

감독의 시선은 차가웠다.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직시하지 않으면, 세상은 이렇게 차갑단다~' 하고 말투만 따뜻한 얼음송곳이었다. 세상의 냉정한 면도 다루고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것이 영화의 한 책무이기는 하나 이건 너무 셌다. 치렁치렁 나이답지 않은 액세서리에 가슴이 파인 옷을 입고 동료의 젊은 아들과 썸을 기대하는 메리의 안간힘. 인생을 낭비한 이웃을 불러 음식은 나눠줄 수 있지만 자신의 바운더리로 들여놓을 수는 없는 제리의 배타심. 너무나 현실적인 공포 영화였다.



안 죽으면 청춘, 지금이 노후

"청춘이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안 죽으면 청춘이다,라고 생각해요. 안 죽으면 나이 먹은 것 같지 않고 내가 지금 청춘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죽기 전까진 청춘이다! 살아있는 한 청춘은 계속된다! 아 이거 너무 멋있다." 


그러다 그저께 TV에서 청춘의 정답을 얻었다. 유재석, 조세호 씨가 거리를 다니며 시민들과 인터뷰를 하는 <유 퀴즈 온 더 블럭> 춘천 편에 나온 아흔 전후 할머님들에게서. 안 죽으면 청춘이다. 할로윈 불금에 잘 나가는 클럽에서 함께 입뺀을 당한 이의 입버릇 같은 "지금이 노후야."라는 말이 겹쳤다. 이렇게나 다른 말이 사실은 같은 뜻이다. 노후가 되면 즐겨야지? 이런 거 없다. 청춘과 노후가 다 하나다. 한정된 시간이 청춘과 노후가 아님을. 이 나이쯤 살아보니 '언젠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는다. 우리를 늙게도 젊게도 하는 건 나이가 아니라 인생에 대한 태도다. 일하는 것도 지금, 즐기는 것도 지금. 지금인 게 가장 좋다. '날 잡아서 언제 하루 해야지'하고 미룬 욕실 청소가 나중에 큰 짐이 되는 걸 깨닫고는 샤워할 때마다 틈틈이 하는 것처럼. 다음은 없다는 마음으로 할 때 조금 더 잘하려 하고, 놀 때 조금 더 재밌게 놀려고 한다.



이태원에서 놀면 귀가가 큰 숙제다. 할로윈 불금에 근처 호텔을 잡아두지 않았다면 삼각지까지 걸어가서 택시를 잡을 각오를 하거나 차를 갖고 온다면 주차가 전쟁인 곳이 또 이태원이다. 우리 입뺀남은 내 차지의 거주자 주차 자리에 차를 댔지만 다른 차가 막고 있어 새벽 1시에 차를 빼 달라는 통화를 해야만 했다. 놀러 온 외부인 차라고 오인한 상대의 불쾌한 대응에 나는 빠직 화가 났다. 내꺼 한 자린데! 하지만 그는 불필요한 분쟁을 만들지 말라는 눈짓을 보냈다. 앞 차 차주에겐 연실 죄송하다고 몸을 낮추며.

죽기 전까지 청춘이라면 죽기 전까지 배워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날 밤 새삼 좋은 걸 많이 배웠다. 이태원에 흔한 동남아 외국인 알바에게 친근하게 장난을 걸고, 능숙한 서비스직 직원에겐 외국처럼 팁으로 감사를 표시하고, 분쟁의 불티가 튀어도 둥글게 둥글게 해결하는, 시간에 숙성된 지혜와 매너를.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청춘의 관찰자가 아니라 청춘의 주체로 즐길 수 있었고 할로윈의 이태원 프리덤을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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