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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살롱 Jan 05. 2022

지속 가능한 내 인생을 위하여

내 인생의 지속가능전략 찾기

"똥 밟았네~ 또옹~"

하루가 지나니 그래도 이렇게 노래가 나온다.

새해 초부터 똥을 밟았다.

비즈니스 목적 100%로 생각한 만남이, 어라 상대방은 아니었네? 사심을 섞었네?

나이와 결혼 안 한 이유 같은 호구조사 토크 후 미팅 장소 옆 고궁 산책을 하고 "저희는 이제 전시를 볼 거예요."라며 미술관을 들어가려다 예약을 안 한 덕분(?)에 그냥 나왔다. 그러고는 그냥 타시라기에 조수석에 앉아 남산 드라이브 코스로 해서 집 앞까지 온 내가 등신이었다.

집에 오니 허리가 아팠고 기분이 찝찝했다.

데이트를 당한 거였다. 유부남에게.


미혼 동지 선배들과의 톡방에다 하소연했다.

"허수아비 남편이라도 하나 세워야겠어. 생리 전 허리통증으로 찜질하며 누워있는데 허리는 아프고 시발 짜증이 납니다."

"너무 싫다. 그냥 그게 한국 50대 남자 평균 같아 어디든."

"ㅇㅇ 똥 밟았는데 우리 사는 데가 똥밭이다~ 새해 액땜했다 쳐."

언니들이 같이 욕해주니 기분은 나아졌지만 '왜 바래다준다고 차까지 얼결에 탔을까, 뭐하러 상대 입맛대로 이른 미팅시간에 오케이 했을까' 스스로를 자책했다. 문제는 컨설팅받는 입장의 미팅이었던지라 내가 너무 저자세였던 거다. 8시 조찬 미팅도 그냥 워낙 바쁜 분이라 그려려니. 일단은 '그냥 이젠 유부남과의 일대일 대면 미팅은 안 해야지, 차만 마셔야지, 곧바로 일정을 만들어야지'로 솔루션을 찾았다.

그치만 이걸로 충분할까? 쭉 결혼 안 하고 살아가면 이런 똥을 더 밟을 수도 있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분해서 씩씩대다 혼자 삭힐 수는 없잖아. 이런 꼴 더 안 보고 살아야지!

'웃으면서 할 말 다하는 법' 연구를 몇 년 전부터 했는데 현실은 여전히 그 순간에 "뭐 데이트라고 하고 싶으신 거예요?"라고 받아치지 못하는 게 나다.

연구 결과 상용화 대실패.




지속 가능한 싱글의 삶이란 뭘까. 종종 이렇게 불편으로 작용하기에 성가신 미혼이라는 꼬리표. 느끼한 사람은 피하고 담백한 사람과만 서로 존중하며 관계 맺고 잘 사는 방법을 더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를 쉰 사이 나는 게을러서 원고 마감을 못 지켜 책 계약을 날렸고, 다르게 살겠다고 말만 하며 실천은 제대로 못한 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그대로 안고 있다. 나는 왜 이 모양인 거야. 입만 살았어. 글 쓰고 나면 다 해소되는 고작 그 정도의 분노야.라고 스스로를 욕하면서.

일적으로는 경제 콘텐츠 중심으로 방향이 잡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만들고 하다 보니 재미있어서 지난해엔 MBA에 들어가 ESG 트랙에서 본격적으로 지속가능경영을 공부하고 있다.

ESG라는 화두가 세상뿐 아니라 내게도 훅 들어온 것이다. 일과 공부 둘 다 세상과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해 파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속가능경영이 개인의 삶에도 통하는 이야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 내 인생의 성공 방정식으로 지속가능성, ESG를 대입해보면 어떨까?

그래, 내 인생의 지속가능경영 전략을 짜보는 거야.


기업은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한마디로 '존재하기 위해' 경제, 환경, 사회, 지배구조의 긍정적인 성과를 내고자 한다. 인생의 관점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어 가는 방법에 일부라도 안 통할 리 없다. 온전한 나로 계속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한데 이게 맵이 될 수 있겠다는 게 난생처음 경영학을 접하며 떠오른 생각이었다.

'지속 가능'이라는 단어는 현재의 유지에 목적을 두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지만 역설적이게도 어느 회사든 매일 1%라도 더 나아져야 비로소 지속 가능하다. 지속가능경영 중 경제 성과가 첫 번째로 이야기되는 이유는 본업을 잘하는 것이 나머지 모든 것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이 지속적으로 균형을 이루며 잘 굴러가려면 역시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


지난 한 해동안 지속가능경영, ESG에 미친 거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꽂혀 있었다. 자주 보는 후배네 집에 놀러갈 때면 애아빠가 미리 돌쟁이 아들에게 "이따 이모 오면 'ESG에 관심 없어요'라고 말해."라고 시켰다고. 미안해 정서방.

여하튼 어제 밟은 똥을 이렇게 글로 적어봄으로써 발에서 털어본다. 기분이 처음보다 더 나아졌다.

하나는 발견했네. 가장 효과적인 지속 가능한 위로법은 글쓰기라는 거.


(*덤으로 현금치료도 시행했다. 아이패드 구입. 못난이 자화상은 몇십 년 만에 아이패드로 처음 그려봤다. 이러면 미술치료까지 3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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