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의심' 품고 살아가기

누구나 자기 의심 속에 산다

by 지혜로운 Soop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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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 의심 속에서 산다.
의심이 사라지면 좋겠지만 사실 자기 의심은 우리를 돕기 위해 존재한다.
사람은 모두 다르고 모두 불완전하다.
바로 그 불완전함이 우리와 우리의 작품을 흥미롭게 만든다.
우리는 자신을 비춰주는 작품을 만든다.
불안감이 당신의 일부라면 결과적으로 작품에 더 큰 진실이 담길 것이다.”
— Rick Rubin



내가 Soopgil,을 만드는 마음


나는 내가 만들어 나가고 있는 Soopgil, 에도 나의 불완전성이 들어가 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게 나니까.


이 여정은 나를 감추고 완벽하게 보이려 애쓰는 ‘자기 부정의 여정’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는 여정’이니까.

그 진심이 Soopgil, 의 메시지에 담기고, 그 메시지가 나처럼 불완전함을 안고 살아가는 누군가에게 마법처럼 가 닿았으면 좋겠다. 그들에게 필요한 정확한 시점, 정확한 방식으로.

그 결과는 내가 통제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음을 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 계속 쓰고, 말하고, 담는 일. 그저 만드는 일이다.

내 안테나를 세우고, 라디오 방송국을 차려 내보내는 일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의 에너지와 목소리가 누군가에게 전해지고,

그 사람의 에너지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닿으며,
그렇게 아주 적당하고 적절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의 메시지가 어느새 우리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잊지 않기 위해 붙인 메모 한 장


그럼에도 불안은 여전히 내 안을 채우고 있다.
평생 결과를 예측하고 순위를 매기는 문화 속에 살아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


인스타그램에는 좋아요, 댓글, 공유, 저장이 있다. 이 모든 게 나를 평가하는 기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좋아요 100개, 댓글 10개, 즉각적인 반응이 ‘의미 있는 결과’라고 착각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이 생각은 진짜가 아냐.

이 숫자가 내 가치와 성장을 증명하는 기준도 아니야.’

파도가 일렁일 때마다 잊지 않으려, 작업 공간 옆에 메모를 붙여두었다.

나를 붙잡아주고, 중요한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도와주는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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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챙김, 사띠와의 연결


우리가 흔히 말하는 ‘마음챙김(Mindfulness)’ 의 뿌리인 사띠(sati) 는 팔리어로 ‘기억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억은 과거의 일을 되새김하는 게 아니라, 잊지 않으려는 의식적인 마음이다.


예를 들어

내 마음이 미래와 과거를 배회한다면,

호흡과 몸의 감각으로 지금으로 돌아올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


갑자기 불안이나 짜증이 확 몰려올 때,

멈추고 숨 쉬며, 잠시 멈출 수 있음을 기억하는 것.


필요하다면 그 자리를 잠시 피하는 것도
이로운 방법임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즉각적인 반응을 가라앉히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


“나는 무엇에 이토록 반응하고 있지?”
“그 생각이 정말 진실인가?”
“내가 믿는 것은 사실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만든 이야기인가?”



그렇게 ‘무엇이 중요한가’를 기억하는 것.


결국 내가 붙여둔 메모는 나만을 위한 사띠이고, 마음챙김이다.

외부의 반응에 휩쓸리지 않고, 다시 나의 중심으로 돌아오게 하는 작고 단단한 기억의 표시.



명상, 그리고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


그것이 우리가 관심 있어 하는 명상이다. 그리고 그러한 명상으로 우리는 삶의 고통을 줄이고 평안으로 갈 수 있다.


명상은 앉아서 하는 좌선만이 아니다.

걸을 때도, 차를 마실 때도, 버스 안에서도, 대화 속에서도, 일하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을 하나하나 안내하는 것이 바로 Soopgil, 이 하고자 하는 일이다.


이 여정에서 나 역시 흔들리고 휩쓸릴 때가 있겠지만,

그럴수록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 중심에 조금씩 더 오래 머물며,
굳건히 서 있는 내가 되고 싶다.

그 여정을 나누고 싶다.



“우리가 가진 모든 불안을 창의성을 이끄는 힘으로 새로이 해석할 수 있다.
불안은 우리가 우리 마음에 가장 가까운 것을
세상과 나누지 못하게 가로막을 때에만 방해물이 된다.”
— Rick Rubin



우리 모두의 자기 의심이
삶의 방해물이 아닌, 예술적 표현이 되기를.


그 과정에서,
당신이 스스로에게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기를

Soopgil,에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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