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간은 어디에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나의 중도를 찾아서

by 지혜로운 Soopg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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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철학에는 시간을 경험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


크로노스는 외적이고 양적인 시간이다.

하루, 일주일, 일 년처럼 물리적으로 흐르고, 예측 가능하고, 반복되는 시간.

우리는 대개 이 선형적인 시간 속에서 일정을 세우고, 계획을 짜고, 일을 한다.


반면 카이로스는 내면의, 질적인 시간이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처럼, 인식과 감정에 따라 길게도, 짧게도 흐른다.

이 시간은 삶의 통찰과 전환, 영감을 일으키는 ‘결정적 순간’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대부분 물리적인 크로노스의 흐름 속에 산다.

쳐내야 할 일들과 거기에 맞춘 계획.

그러니 삶의 성장과 변화를 위해서는 카이로스의 시간을 더욱 인식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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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크로노스보다 카이로스에 자주, 또 오래 머무는 사람이다.

그래서 끝도 없이 파고들고, 더 의미있는 것을 찾아 헤메다 시간이 늘어지는 경험이 많다.


Soopgil,을 만들면서도 그랬다.

브랜드 관련 책을 뒤적이고, 철학과 가치, 커뮤니케이션과 디자인 컨셉까지…

모든 것을 ‘의미’가 있도록 정리하려는 내가 있었다.


유튜브 명상 가이드를 만들면서도 그랬다.

처음엔 내가 다 촬영해야지 했다가, 힘들다는 걸 깨닫고 푸티지를 활용해 스토리라인을 만들기로 했지만,

기획안과 스토리보드, 앵글, 숏 사이즈까지 꼼꼼히 세우며

‘이렇게 해야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드러날거야'하며 애쓰는 마음이 가득했다.


이 얼마나 과하고 벅찬 애씀이었나.

처음 명상 가이드를 만들고, 촬영이나 편집에 초보인 나에게 말이다.


압도되는 어려움과 버거움 속에서 문득 떠올랐다.

“아, 지금 내가 또 집착하고 있구나.”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며 물었다.

“지금 나는 무엇에 집착하고 있지?

— 아, 내가 만든 스토리보드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에 묶여 있었구나”


“그런데 이 일을 왜 하려던 거였지?

내가 세운 계획을 지키기 위해서?

— 그게 아닌데”


“그럼 대체 뭐지?”



그 질문 끝에는 톡— 올라온 마음 하나.

사람들이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끼며

자신을 위로하고 들여다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마음 속 공간이 넓어지니 보였다.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건,
깊이를 더하는 카이로스가 아니라, 균형을 되찾는 크로노스임을.

보이지 않는 의미의 시간 속에만 갇혀
실행하지 못했던 지난 경험들이 그걸 알려주고 있었다.

어찌할줄 몰라 고통 속을 헤매던 그 순간을 알아차린 덕분에,
나에게 지금 무엇이 ‘중도’인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대학원 수업 시간, 서광스님이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명상은 중도를 수행하는 일입니다. 양극을 모르고서는 중도를 알 수 없어요.”


중도란 단순히 ‘가운데’라는 산술적 의미가 아니라 양극단의 성격과 결과를 몸으로 경험해야 무엇이 중도인지 명확히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이날의 경험처럼, 자신이 한쪽 끝으로 치달을 때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중도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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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간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크로노스적인 사람은 계획과 시간 관리 속에서 의미를 놓치기 쉽고,

카이로스적인 사람은 의미와 깊이에 빠져 실행을 미루기 쉽다.

우리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이 두 시간을 균형있게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삶이 균형을 만나 비로소 제대로 흘러갈테니까.



Soopgil,을 만들며 나를 한번 더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내가 얼마나 카이로스 쪽으로 치우쳐 있고, 크로노스는 거의 쳐다보지 않았는지.

그래서 의식적으로 크로노스 쪽으로 나의 초침을 옮겨보기로 했다.


Soft OPEN일과 Official OPEN일을 따로 두었다.

결과물이 더디게 나올수록 조급해지고 초조해지는 나를 알기에,
이번엔 일정을 일부러 넉넉히 잡고 버퍼를 두었다.

급하게 내기보다, 차근히 쌓아가며 숨 쉴 틈을 남겨두기로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도 내 초침은 중간을 자주 벗어났다.

혼자 볼 내부 문서인데도 불필요할 만큼 정성을 들이기도 하고,

가이드를 만들며 만족했다가도 ‘이러면 더 예쁠거야’하며 수정을 반복했다.

‘오늘은 그만’을 외치며 노트북을 닫았다가 자기 전 다시 켜서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의식적으로 들려주는 말.


이만하면 충분해.

이 애씀도 습관이니 내려놓자.

이 또한 나를 위한 일이니까,

나를 돌보며 한발씩 내딛자



Soopgil,의 여정은 누군가를 위하는 일이면서도

나를 돌보고 아끼는 일임을 기억하자고 매번 다짐한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떤 시간을 살고 있나요?

크로노스의 계획 속에 바쁘게 달리고 있나요,

아니면 카이로스의 의미 속에서 오래 머물고 있나요?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닌,

둘 다 필요하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한쪽으로 기울어질 때,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요.


잠시 멈춰서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나는 지금 어떤 시간 속에 있지?"
"어떻게 하면 부족한 시간을 채워 균형으로 갈 수 있을까?"



카이로스에 자주 갇히는 저는 ‘유튜브 업로드 100편’을 떠올리며 크로노스의 리듬으로 초침을 맞춰봅니다.

그렇다고 정해놓은 목표에만 집착하지는 않으려고요.

그저 이것이 나에게 중도로 향하는 하나의 나침반임을 기억하려 합니다.


오늘도 당신이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시간을 적절히 살아가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스스로에게 다정해질 수 있기를

Soopgil,에서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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