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떠나다
직장을 그만뒀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월급이 주는 행복감은 번번이 오래가지 못했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마음으로 살아가기엔 내 남은 생이 아까웠다. 막상 사표를 던지고 보니 막연히 기대했던 극적인 카타르시스는 없었고, 내 첫 직장 생활은 조용히 막을 내렸다.
퇴직원에 전자 서명을 하는 간단한 행위로 나는 회사로부터 부여받았던 모든 의무감과 책임감에서 벗어났으며, 동시에 매 달 꼬박꼬박 통장에 꽂히던 월급을 잃었다. 들어갈 때의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던 수많은 관문들에 비하면 나가는 것은 당황스러울만치 수월했다.
자유였다. 지난 시간 지독하리만치 익숙해져 있던 '출근-퇴근-잠'을 반복하던 생활에서 벗어났다. 억지로 맞췄던 알람을 끄고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도 되었고, 더 이상 출퇴근 길의 지옥철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었다.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받아오던 업무와 일로 얽힌 많은 인간관계에서 벗어나니 후련했다.
하지만 후련함과 동시에 나를 옥죄고 있던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니 막상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다. 방향을 잃은 기분이었다. 이제까지의 생활이 마치 망망대해 위에서 내가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튜브 하나에만 의지한 채 물살이 이끄는 대로 떠다니는 것 같았다면, 지금은 내가 흘러갈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잠깐 무인도에 기어올라온 것 같았다. 대책이 있기도, 대책이 없기도 했다.
어쩌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람은 자신을 붙잡아 주는 불편한 구속감이 있을 때 오히려 안정감을 느끼는 존재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럼에도 다시, 일상이다.
이제는 머릿속에 떠다니는 막연한 생각들을 도화지 위에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그릴 시간이었다.
가장 먼저, 근처 서점에 출근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의무감에서 벗어나자 나는 또 다른 의무감을 스스로에게 부여했다. 적게는 두어 시간, 많게는 한나절을 죽치고 앉아 읽고 싶은 책들을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어쩌다 생각지 못했던 곳에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는 법이니까, 나도 어쩌다 그러길 기대하면서.
그렇게 책을 읽기 시작한 지 몇 주가 지났을까. 서점에 도착해 손에 쥐는 서너 권의 책이 온통 여행 관련 책이라는 걸 어느 순간 알아챘다. 누군가 혼자 떠난 이야기, 누군가 함께 떠난 이야기. 20대에 떠난 이야기, 30대에 떠난 이야기. 다시 돌아온 이야기, 돌아오지 않은 이야기….
나는 어느새 그들을 동경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없는 용기가 부러웠다. 언젠가 나의 꿈은 세계여행이고 지구에 온통 내 발자국을 남겨놓고 죽을 거라 당당히 말했던 나와 무색하게 남의 용기를 읽고 부러워만 하는 지금의 내가 대비됐다.
떠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나이가 더 들고 지켜야 할 게 지금보다 많아져서 떠나야 할 이유보다 떠나지 못할 이유가 더 많아지기 전에.
누가 그랬다. '아, 이거 잘못하다간 인생 말아먹을 수도 있겠는걸?'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 안전장치나 제동장치가 있는 일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면 하기 싫은 일 대신 하고 싶은 일을 한 번쯤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가 될지 몰랐다. 지금을 놓쳐버리면 언제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을지 몰랐다. 단단히 마음먹되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머리가 무거울수록 움직임은 더뎌지기 마련이니까, 최대한 가벼운 머리로 열심히 팔다리를 휘저어야겠다고.
진심으로 내 마음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 결과 나는 떠나고 싶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고, 그래서 나는 떠났다.
떠남으로 무언가 대단한 것을 얻으리란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대도 그 자체로 큰 깨달음이기에.
마음이 시키는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