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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피 Dec 03. 2023

일 년 365일 온화한 '영원한 봄의 도시'

모렐로스의 테포스틀란에서

영원한 봄의 도시, 테포스틀란


테포스틀란은 멕시코 모렐로스 주의 마법의 마을로, 높은 산지에 둘러싸여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일 년 내내 온화한 날씨 덕분에 "영원한 봄의 도시(la ciudad de la eterna primavera)", "신이 내린 날씨(clima de dios)"라고 불린다는 곳. 듣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별명이 아닐 수 없다. 


테포스틀란에서의 첫날 아침이 밝았다. 잠에서 깨 스르르 눈을 뜨니 유리창 너머로 커다란 산자락이 우두커니 자리 잡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고요한 공기를 가르고 아침을 밝히는 새소리와 함께 정체를 알 수 없는 벌레 소리들이 창문을 조용히 두드리고, 아침을 일찍 시작한 사람들의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테라스를 향해 난 문을 활짝 열었다. 테라스 너머 병풍처럼 펼쳐진 산의 등줄기. 태양빛이 닿지 않는 곳을 따라 그늘이 드리워진 바위산의 풍경은 장엄했다. 거칠고 큰 바위가 깎여 만들어진 돌산이 파노라마처럼 좌우로 끝도 없이 이어졌고, 그 아래 커다란 산맥과 대비되는 소박한 마을이 똬리를 틀고 있다. 커다란 풍경을 담고 있는 이 작은 테라스가, 아마도 이 마을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될 것 같았다.


테라스에서 바라본 풍경 @숲피


어디선가 풍겨오는 고소한 빵냄새를 따라 거리를 나섰다. 지도는 보지 않은 채 발길이 닿는 대로 골목골목을 걷는 내내 산은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서있다. 시시각각 변하는 골목의 풍경 뒤로 변하지 않는 산의 모습. 너무나 아름답고 평화로운 순간들. 걷는 동안 자연스레 걸음이 늦춰지고 멈춰졌다. 그렇게 천천히 거리를 음미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마을의 하나뿐인 시장에 다다랐다.


마을을 품은 산등성이 @숲피


시장은 살아있다


어떤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시장이다. 시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넘치는 생명력과 활기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삶 그 자체다. 바쁘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하나의 또 다른 세상. 공간이 주는 힘일까? 시장은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시끌벅적하고 온갖 냄새가 섞여 공기가 쿰쿰하지만, 그렇기에 사람 살아가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 


간단히 요기나 할 참으로 시장에 들어서니 호객 행위를 하는 상인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지고, 즐비한 노점들 사이사이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눈이 돌아갈 만큼 복잡했지만 그만큼 없는 게 없어 보였다. 생선 가게와 정육점, 신선한 쥬스 가게와 문방구, 알록달록한 과일가게와 야채 가게, 견과류, 젤리류를 늘어놓고 파는 곳까지.


테포스틀란 시장 @숲피


우리는 돼지 머리가 내걸린 어느 정육점에서 한 손님이 치차론(Chicharrón; 튀긴 돼지 껍질)을 무게에 달아서 사는 걸 보고, 치차론을 처음으로 먹어보기로 했다. 10페소치, 한국 돈으로 하면 700원어치만 달라고 했는데 봉지에 든 양이 생각보다 많았다. 치차론은 바삭했고, 베이컨을 말린 과자 같은 짭조름한 맛이 났다.


치차론이 든 봉지를 손에 들고 다음은 무엇을 먹어볼까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검은 돌판에 토르티야를 굽는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토르티야를 먹어만 봤지, 만드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납작하게 굴린 토르티야 반죽을 불판에 올리면 반죽이 순식간에 풍선처럼 부풀었다 가라앉았다. 그 모습을 신기하게 구경하고 있으니 지나가던 아저씨가 갑자기 말을 걸어왔다. 


"젊은 친구들, 치차론을 토르티야에 싸서 먹으면 더 맛있어. 한 번 먹어 봐."


갑작스레 걸어온 대화에 당황해 우물쭈물하는 사이, 이미 상황은 벌어지고 있었다. 


"토르티야 두 장만 줘 봐."


토르티야 가게 사장님과 아는 사이였던 걸까. 아저씨는 사장님과 뭐라 대화를 주고받더니 흡족한 표정으로 우리를 돌아봤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아저씨는 우리의 치차론 봉지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상황에 무언가에 홀린 듯 들고 있던 치차론을 내밀었고, 사장님은 아저씨의 지휘 하에 금방 구운 토르티야에 치차론을 싸서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얼른 먹어 봐."


방금 구워 뜨끈한 또르띠야를 받아 들어 한 입 먹으니 이게 웬걸, 생각보다 너무 맛있는 게 아닌가! 토르티야의 고소함과 치차론의 짭짤함이 잘 어우러졌다. 우리의 반응을 살피던 아저씨는 우리가 척 내민 엄지를 보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자신의 임무는 끝났다는 듯 유유히 사라져 갔다.

 

테포스틀란 마을 전경 @숲피


멕시코 피라미드 하이킹


테포스틀란 마을의 산기슭엔 피라미드가 있다. 때문에 피라미드에 가기 위해서 하이킹은 당연히 수반되어야만 했다. 피라미드로 가는 길은 마을의 끝자락에 있었다. 수공예품 가게가 늘어선 입구를 지나고 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곳을 지나자 본격적인 등산을 알리는 계단이 나타났다.


피라미드 입구 가는 길 @숲피


가파른 돌계단을 밟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쿵쾅쿵쾅 심장소리가 귓가에 울리기 시작했다. 심장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숨은 가빠오고 다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후들거리기 시작했지만 햇빛이 들지 않는 그늘진 길이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렀지만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땀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마을에서 올려다본 피라미드 @숲피


어느덧 1시간이 경과하고 피라미드에 당도했음을 알리는 입간판이 보였다. 입장료를 안내하는 표지판이었다. 그걸 본 순간 우리는 마지막으로 힘차게 발을 굴러 마침내 꼭대기에 다다랐고, 드디어 피라미드를 마주할 수 있었다. 커다란 피라미드 아래로 사람들의 신발이 옹기종기 흔들리고 있는 게 보였다.


피라미드에 올라서니 탁 트인 전망이 펼쳐졌다. 끝없는 산맥을 뒤로하고 오른편으로는 암석을 품은 돌산이 우뚝 뿌리내리고 있었으며, 발아래는 테포스틀란 시내가 깨알같이 박혀있었다. 거미줄 같은 길을 따라 교회와 커뮤니티 센터, 광장과 시장이 보였다. 고개를 들면 파란 하늘에는 새들이 천천히 원을 그리며 비행하고 있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 가감 없이 드러난 기암괴석. 그야말로 절경 중의 절경이었다.


우린 하늘과 맞닿은 그곳에 누워 한참을 머물렀다. 불어오는 바람에 뜨거운 땀을 식히고, 고생한 두 다리에게 휴식을 선사하며. 핑크 빛으로 물들었던 하늘이 점차 어두워지고, 병풍 같던 산등성이가 검게 물들어 하나의 거대한 그림자처럼 보일 때까지······.


피라미드에서 바라본 전망 @숲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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