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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Apr 21. 2020

그래도 익숙해지지 않는 텅 빈 선반

핸드워시 사는 게 이렇게 어렵다니

 지금 호주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자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 심지어 몇 주 전 한국 식품점에 장 보러 갔을 때, 다른 한국 마트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사람마다 1.5m 떨어져 있어야 한다)를 지키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 벌금을 몇백 불 내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얘기 듣자마자 나와 남편은 확 떨어졌다. 심지어 지금은 벌금이 천불 단위로 올랐다.


지난 2주일 동안 우리 가족 넷은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오롯이 집에서만 지내고 있다. 내가 혼자 하는 유일한 외출은 장보기이다. 남편이 점심시간 동안 아이 둘을 잠깐 봐줘서 장보기를 몇 번 했다. 그때가 나름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기에 기다려진다. 집 근처에 쇼핑센터를 걸어가는 시간은 5분 정도이다. 집에만 있다가 밖에 나와 햇빛을 받으며 그 누구의 재잘거림이나, 터지는 울음소리 없이 혼자 조용히 걷는 이 시간의 고요함이 좋았다.


세계 여행 중에도 아주 가끔씩 혼자 있었던 시간이 있었다                       이 사진은 하와이에서 혼자 재충전할 때


쇼핑센터에 가도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기 위해서 푸드 코드에 의자들은 앉지 못하도록 다 정리되어 있다. 이제 호주도 꽤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다. 대형 슈퍼마켓에서 화장실 휴지를 못 본건 벌써 몇 주째이고, 쌀도 원래 먹던 종류의 쌀은 사지 못하고 유일하게 살 수 있는 건 자스민 쌀 밖에 없어서 그걸 샀다. 그리고는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핸드워시를 사러 갔는데, 웬걸 한 병도 남아있지 않았다. 손소독제 (hand sanitiser)야 거의 몇 달 동안 보지 못해서 이제 포기했지만, 집에서 매일 쓰는 핸드 워시가 다 떨어져 텅텅 빈 슈퍼마켓 코너를 보니 막막하다. 그렇게 흔하고 종류도 가지가지였던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텅 빈 선반을 보는 게 익숙해질 만 한데 익숙해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모르고 있었던 사람들의 속마음을 알아채버린 거 같아서 씁쓸하다.

휴지는 아직까지도 찾기 힘들다


여러 가지로 많은 걸 생각하게 만드는 장보기를 끝내고 집으로 걸어왔다. 전에는 당연한 것들이 이제는 당연하지 않게 되고 보니, 평범했던 일상에 대한 감사가 절로 든다. 둘째를 임신했을 때, 짜장면이 먹고 싶어 만삭의 몸으로 혼자 전철을 타고 중국집에 가서 허겁지겁 짜장면을 먹었던 날들이 새삼 멀게만 느껴진다. 이제는 대중교통을 타는 것 자체가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진다. 첫째 아들이 데이케어에 간 사이, 둘째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동네 쇼핑센터에 나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부렸던 시간, 가족끼리 토요일에 비치를 갔던 날들이 괜스레 아주 오래전 이야기 같다.

외출 자제는 6월 말까지라고 한다. 그 기간은 연장될 수도 있다. 어쩌면 2020년의 반을 집에서만 지낸다고 생각하니 멍해진다. 예상하지 못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으니 저절로 당연했던 일상이 어쩌면 당연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시간을 보내고 그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오면, 당연한 게 아니었다고 참 고맙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언제 갈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그 때가 되면 이전과는 다르게 바라보게 될  풍경이다


( 이 글은 4월 초에 썼고, 다행히 핸드워시는 한 종류가 슈퍼마켓에 들어와서 살 수 있었다. 4월 중순이 되니 쇼핑센터에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상점들은 닫혀있고, 식당들도 여전히 포장만 가능하다. 장 보러 가는 시간은 여전히 내가 혼자 가질 수 있는 휴식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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