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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Oct 01. 2020

걷다 보니 봄이 보인다

호수가 하늘을 품은 것처럼

 새 지저귀는 소리가 더 가벼워진 것만 같다. 유모차를 끌고 가는 손을 스치는 바람이 한결 따스하다. 바람결에 날리는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도, 알지 못하는 벌레 우는 소리도, 다들 봄이 왔다고 내 귀에 속삭인다. 이렇게 소리로 냄새로 바람의 스치는 따스한 온도로 시드니의 봄을 느낀다.


앙상했던 나뭇가지가 이젠 더이상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둘째 아들을 재우러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똑같은 길이지만, 봄이 오니 길이 달라 보인다. 가지만 앙상했던 나무들이 어느새 꽃을 피우고 있다. 들꽃들도 더 많은 색들을 뽐내고 있고, 첫째 아들이 그렇게 찾았지만 숨어있던 작은 도마뱀도 이제 종종 길바닥에서 볼 수 있다.


우연히 발견한 꽃은 더욱 반갑다


항상 가던 산책 코스 중에 호숫가는 오리들이 있어서 애들이 더 좋아하는 장소이다. 그런데 오늘 호수에서 처음으로 오리 새끼를 보았다. 일 년 가까이 여길 걸어 다녀도 보지 못했던 새끼 오리들인데. 봄의 분위기에 취해 걷다가 이 오리 새끼들을 보니 괜스레 우연인 것 같지 않다. 봄이 주는 그 분위기, 새 생명이 깨어나는 느낌, 따스한 그 한낮의 온기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 날의 아기 오리들


지독한 겨울을 보냈다. 올해는 더 춥게 느껴졌고, 더 예민해졌고, 여러 이유의 고뇌에 쌓였었다. 그 시간들을 버티고 나니 드디어 봄이 왔다. 봄이 모든 걸 해결해 주는 건 아니지만  신기하게도 봄을 마주하니 딱딱했던 마음이 물렁해진다고 해야 하나.


브런치북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그동안 썼던 글들을 다시 편집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공모전에 당선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런 도전을 하는 것 자체가 주는 에너지가 꽤 긍정적이다. 여행하며 쓴 글의 내용 중에는 '결과보다 과정이 주는 소중함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부분이 있었다. 공모전의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 자체에도 의미를 충분히 부여하라고,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에게 속삭인다.


스쳐 지나가는 호숫가를 걷다가 오늘은 웬일인지 그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다 보니 호수에 비친 하늘이 보였다. 그 전에도 분명 그렇게 보였을 텐데, 신경 써서 보지 않아 제대로 보지 못했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하늘을 품은 호수가 내 눈에 들어온다. 마음을 달리 먹으니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는 걸까. 오리 새끼들을 보며, 내가 만들고 있는 브런치북을 생각해본다. 웃기지만 나에겐 이 둘이 연관관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품고 있는 이 글들이 세상에 나가 봄기운을 전달했으면. 호수가 품고 있던 하늘처럼, 내가 품고 있던 세상이 누군가에게 따스한 봄만큼의 위로가 되길.


길을 걷다 이 글의 영감을 받은 그 날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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