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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한나 Sep 12. 2024

어떻게 우린 골드 코스트에 살게 되었나

우린 다시 또 머리가 아닌 마음의 소리를 따랐다

 밤바다를 천천히 걸었다. 한 여름에도 차가운 시드니의 바닷물과 달리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물은 꽤 따뜻했다. 시드니에서 살던 우리 신혼부부는 연말 여행으로 골드 코스트에 왔다. 결혼한 지 올해 14년 니까 오래전 이야기다. 그때 난 처음으로 골드 코스트라는 곳을 접하게 되었다. 겨울에도 그리 춥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따뜻한 바닷물에 반해, 평소에도 여름을 좋아하는 난 남편에게 은퇴하면 골드 코스트에서 사는  어떨까, 지나가는 말을 했다. 시간은 많이 고, 첫째 아들과 두 번의 장기 세계 여행, 둘째 아들과 함께 세계 여행을 한번 더 한 후 우린 원래 살던 시드니가 아니라 골드 코스트로 오기로 정했다.


첫 번째 세계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는 말레이시아였고,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호주 지역은 퍼스였다. 그래서 호주에 돌아와서도 퍼스, 포트 더글라스, 케언즈, 브리즈번, 선샤인 코스트를 거쳐 골드코스트를 여행했다. 골드 코스트에 오니, 예전에 농담 삼아했던 말이 떠올랐다. 호주 지역 중에서 따뜻한 지역이니, 골드코스트에서 은퇴하는 거 어떠냐는, 내가 했던 말이었다. 남편도 기억하고 있었다. 우린 굳이 왜 은퇴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라는 질문을 했다. 생각해 보니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남편이 회사에 출퇴근해야 하는 직업이 아니었고 여행하면서도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였으니, 골드 코스트에서 살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우린 1년 반 정도에 가까운 세계 여행 끝에 골드 코스트에서 6개월의 임시 정착 시즌을 보냈다. 그때는 골드 코스트의 집세가 시드니보다 더 나을 때라서, 비치를 걸어갈 수 있고, 가구가 포함된 숙소에 살 수 있었다. 2분만 걸어가면 아름다운 해변을 볼 수 있다는 것 만으로, 골드코스트의 매력은 충분했다. 한국으로 치면 제주도 같은 곳으로, 호주에서도 휴가지로 선택을 많이 하는 곳이 바로 골드코스트이다.


바다에서 선셋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하지만 우리의 여정이 끝나지 않음을 알았고, 더 늦기 전에 다시 여행을 떠나자는 결론을 내고 우린 다시 골드 코스트를 떠났다. 발리, 싱가폴, 한국, 일본을 여행한 우리 가족의 두 번째 도전은 둘째 임신이라는 계획에 없던 축복으로 인해 다시 시드니로 오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골드 코스트보다는 가족과 친구가 있고, 첫째가 태어난 시드니로 돌아가는 게 마음이 편했다.  싱가폴에서 있을 때 심한 입덧과 인플루엔자에 걸려 몸이 정말 부서지는 줄 알았다. 한번 크게 고생하고 아프고 나니, 내가 익숙한 곳으로 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둘째가 태어났고, 우리는 나름대로 시드니 생활에 적응하려고 했다.


하지만 설명할 수 없는 마음 한 구석에 허전함이 있었고, 뭔가 남아있는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시 또 "더 늦기 전에"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더 크면 하기 힘들 걸 알았기에, 우리 부부도 점점 나이 먹어가는 걸 하루가 다르게 체험하고 있었기에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다시 세계 장기 여행을 결심했다. 이번에는 처음 두 번의 장기여행과 다르게 둘째 아들까지 함께 하는 여행이니 힘들 걸 예상했지만 그래도 나중에 흰머리로 변한 할머니가 되어 그때 한번 더 해볼걸, 하며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힘들어도 고생하고, 후회는 없는 인생이 나에게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 첫째 아들은 초등학교 2학년이었기 때문에 시드니 공립학교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학교에 1년 등록해서 여행하며 공부를 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우린 미련 없이 가구를 팔았고, 차를 팔았고, 아이들 장난감과 옷가지를 정리했다. 이미 두 번 모든 짐을 없애 본 경험이 있어도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매번 미니멀리스트로 살려고 노력해도 아이 둘이 있으니 여기저기서 얻은 것들로 넘쳐났기 때문이다. 물건에 대한 집착이 없어진 난, 내 옷들을 주변의 친구들에게 나눠주었고, 그래도 남은 옷들은 기부를 했다. 모든 게 없어지니 가볍게 훨훨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난 아무것도 없을 때 제일 자유로웠다.


시드니에서 짐정리 후, 이 가방만 들고 일 년 장기여행을 다시 떠났다


그렇게 우린 다시 떠났다. 사실 그때 우리가 시드니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걸 알았다. 시드니가 더 이상 우리 집이라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여행 후 돌아왔을 때 적응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변했는데 시드니는 그대로였고, 동시에 시드니는 우리가 알던 그 시드니가 아니었다.


시드니를 떠나 발리, 싱가폴, 말레이시아, 태국, 한국, 일본,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일 년이 지났다. 베트남의 나트랑에 있었던 숙소 이름이 골드 코스트 아파트였다. 우연이라기보다 오히려 운명 같았다. 그렇게 마지막 여행을 마무리하고 골드 코스트에 오게 되었다. 지난번에 살았던 6개월은 연습에 불과했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적응하며 새롭게 정착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성적으로는 시드니에 돌아가는 게, 여러모로 쉬운 선택이었겠지만 말이다. 아들이 학교 전학할 필요도 없고, 가족과 오랜 친구들이 있으니 심적으로도 안정적일 테니까.


하지만 우린 다시 또 머리가 아닌 마음의 소리를 따랐다. 마음이 원했다. 새로운 곳을, 우리가 아는 사람은 없지만 도전할 수 있는 곳을 말이다. 은퇴한 뒤가 아니라 할 수 있을 때 지금해보는 거 말이다. 물론 처음 몇 개월은 많이 힘겨웠다. 외로움의 끝을 마주했고, 시드니에 갔다면 우리 가족은 더 수월하게 살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렇게 버텨야만 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 겨울을 동굴에서 지냈다. 마음을 닫은 채,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겨울이 지나 서서히 우리가 모른 채 봄이 오는 것처럼, 나에게도 따뜻한 봄 햇살이 비추기 시작했다.


골드 코스트에서 이사한 날. 트럭이 필요 없었다. 짐이라곤 이 가방들 뿐이었으니. 가구가 포함된 집을 찾아서 다행이었다.


비치를 걸어갈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차로 15분이면 비치에 갈 수 있다. 시드니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느 비치에 가나 1시간은 족히 걸리고, 막상 가도 주차 자리를 찾는 건 하늘의 별따기이니 말이다. 여기는 시드니에 비하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수월하게 주차를 찾을 수 있다. 바쁜 도시가 되어 버린 시드니에서는 느끼기 힘든 여유를 골드 코스트에서는 느낀다. 사람들이 더 자주 눈을 마주치고, 더 양보를 하고, 더 인사를 한다. 별거 아닌 그 조금의 여유가 좋다. 2014년 1월 말부터 살기 시작했으니 이제 7개월이 지났다. 이제야 조금씩 주변이 보인다. 아름다운 선셋이, 조용한 해변가가, 느리게 나의 속도에 맞혀 그렇게 적응해가고 있다.


골드 코스트의 적응기를 기록하고 싶어졌다. 동시에 골드코스트에 놀러 오는 여행객들에게 로컬들이 아는 정보를 나누고 싶었다. 뻔한 곳 말고, 로컬 사람들이 아는 찐정보를 알려서 제대로 골드 코스트를 즐기길 바라는 마음이다. 몇 달 전, 우연히 마주친 한국 관광객 어른들과 대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서퍼스 파라다이스 비치만 구경하고 가신다는 거다. 안타까운 마음에 이곳저곳을 추천했다. 그런 마음으로 기록한다. 겉핧기식 여행 말고 제대로 골드코스트의 매력에 빠지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이제 시작이다. 올 어바웃 골드코스트!


예전에 6개월 동안 살았던 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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