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한 달간 단둘이 지낸 적이 있다. 사정이 생겨 잠시 할머니 댁에 머물러야 했다. 당시 부모님과 할머니의 관계는 그다지 좋지 못했고, 나와 할머니는 명절 때만 가끔 만났던 사이였다. 할머니도 꽤 막막하셨을 거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사이가 좋지 않은 며느리의 딸과 한집에 살아야 한다니 말이다. 무거운 가방을 이고 할머니 댁에 입성했던 날, 우린 데면 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나는 살가운 인사조차 건네지 못한 채 할머니가 소개해 준 방으로 얼른 들어가 짐부터 정리했다. 그렇게 할머니와의 짧은 동거가 시작됐다.
할머니는 삼시 세끼를 꼭 챙겨 드셨다. 식사 시간도 꽤 정확했는데, 오전 7시, 오후 1시, 저녁 6시 정도의 루틴을 오랜 시간 고수해 온 듯했다. 나는 아침 일찍 학원에 가야 했기에 밥은 알아서 먹겠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오랜 루틴을 감히 깨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애써 맞추고 싶지도 않았다. 대충 밖에서 한 끼를 때우거나 라면을 끓여 먹을 심산이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나의 오전 수업 시간에 맞추어 매일 아침 6시면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저녁 식사 역시 내가 늦은 시간까지 공부를 하고 돌아오면 그제야 함께 먹었다. 당신의 식사 시간을 오로지 나의 일상에 맞춘 것이다.
매일 두 번씩 함께 밥을 먹었지만 우리는 그리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변함없이 무뚝뚝한 손녀딸과 과묵한 할머니, 둘은 아주 작은 식탁에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 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틀어 놓은 채 수저질만 열심히 했다. 간혹 오늘은 몇 시에 올 거냐는 할머니의 물음에 답을 하면서 말이다. 아침을 건너뛰고 늦잠을 자고 싶을 때도 있었기에 할머니의 강력한 식사 제안이 때로는 귀찮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저 잠자코 밥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투정을 부리거나 잔소리를 하기에는 너무 어색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한 달이 훌쩍 지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와는 친해졌다기보다는 익숙해졌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고, 서로의 존재가 당연해졌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야 함께 지내게 된 만큼, 영화 <집으로>에 나오는 할머니와 손자의 관계처럼 반전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나는 후련함도, 아쉬움도 없이 고마운 마음만을 전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할머니 역시 그냥 잘 가라며 배웅해 주었다. 모든 일상이 이전으로 되돌아왔다.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난데없이 울고 있었다. 놀란 나는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는 곧장 아빠에게 알리려고 했다. 그때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너랑 같이 밥을 먹던 게 자꾸 생각이 나. 나도 모르게 식탁을 쳐다보고 있어.”
할머니는 울먹이며 나와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던 날들이 그립다고 하셨다. 내가 금방이라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다고, 할머니는 내가 떠난 후 나와 보낸 시간을 자주 떠올렸던 것이다. 무어라고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당황한 나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잘 지내고 있는지,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건조한 안부만 물었다. ‘저도 보고 싶어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건네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할머니의 눈물은 지금까지도 우리 둘만 아는 비밀이다. 부모님이나 친척들이 알면 할머니가 민망할 것 같았다. 그날 이후 할머니에게 종종 안부 전화를 한다. 여전히 애교 없는 손녀의 인사에도 할머니는 무척 반가워한다.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할머니와 꽤 친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 달간의 짧은 동거는 우리의 사이를 꽤 진하게 만들어 주었다.
월간 <삶의 온기> 5월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