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독립은 태어날 때 이루어진다. 약 9개월 동안 탯줄로 연결되어 엄마와 한 몸이었다가 이 세상에 태어남과 동시에 독립을 한다. 탯줄이 잘리고 엄마와 나는 두 사람이 된다. 동떨어진 개체가 된다. 그 후 엄마의 품 안에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훈련하면서 완벽한 독립인으로 성장한다. 더 이상 엄마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는 혼자. 나만의 생각이 있고 나만 오롯이 느끼는 감정이 있으며 나만 할 수 있는 행동이 있다. 어느덧 태어난 지 29년 차다. 난 충분히 독립적인 사람이 되었다고 믿었다.
그런데 나는 왜 엄마가 힘들면 나도 힘이 들까. 엄마가 아프면 왜 나도 아픈 걸까. 엄마가 슬프면 나도 슬프다. 엄마가 지치면 나도 지친다. 엄마가 화나면 나도 화난다. 엄마의 감정을 그대로 공유한다. 마치 엄마와 내가 한 몸인 것처럼 엄마의 슬픔과 고통이 오롯이 느껴진다. 엄마가 괴로움에 엎드려 울고 있던 날 나는 마음이 부서지는 느낌이었다. 가슴이 저릿한 게 상처 난 부위에 굵은 소금이 뿌려지는 듯했다. 엄마가 슬픔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나도 따라 한없이 가라앉는다. 깊고 깊은 심연으로 마음이 내려앉는다. 엄마의 불행은 내 인생도 함께 불행하게 만들어버린다.
반대로 엄마가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어떤 음식이 맛있다고 말하면 나도 맛있게 느껴지고, 한 장소가 아름답다 말하면 내 눈에도 아름다워 보인다. 엄마가 재밌어하면 나도 재밌고 엄마가 감탄하면 나도 경이롭다. 엄마의 행불행이 가감 없이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친다. 엄마의 표정이 내 표정을 좌우한다. 내 감정은 엄마의 감정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계절을 탄다는 친구처럼, 날씨를 탄다는 선배처럼. 나는 엄마를 탄다.
사실 탯줄은 한 번도 잘린 적이 없었던 게 아닐까. 탯줄은 영양분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엄마의 기분까지 모두 전달하는 통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연결되어 있다. 자유로운 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우린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난 엄마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먹는 것이다. 그것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그래서 난 나를 위해 엄마의 안녕을 바란다. 엄마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하니까. 엄마가 근심 걱정 없어야 나도 마음 놓고 잠에 드니까. 엄마가 빈틈없이 행복하면 좋겠다. 단순하고 해맑고 마냥 즐겁기를 바란다. 내 안온한 일상을 위해 엄마의 여생이 평온하기를 소망한다.